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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사, 전송금 간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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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1-13 04:38 조회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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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는 아직도 살기를 두르고 온 세상을 휩쓸고 있다. 백신이라는 방어벽이 둘러져야 하는데 어쩜 장성 쌓기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요양병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전담병상 부족으로 확진자를 이송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병원 내 확산으로 모두가 불안 속에 떨고 있으며 병원은 대혼란에 빠져 몸살을 앓고 있다.

 

요양병원에 몸담고 있는 간병인들의 삶이 살얼음판인데 그 속에서 촛불같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간병인생을 빛내는 동포들도 있다. 코로나 최일선에서 몸과 마음, 영혼을 불사르며 불철주야 고생하는 애심간병총회의 전송금 간병팀장이 그중의 한 사람이다.

 

2012년부터 간병 일을 시작한 그의 모든 삶은 환자를 위하는 일이였다. 간병팀장 직을 맡으면서 그는 더 억척스레 일했다. 병원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자 현장이탈을 원하는 간병인들을 다 보내주고 그들의 빈자리까지 돌보고 있다. 혼자서 두 사람, 세 사람 몫의 일을 척척 해가는 그를 보고 주변 동료들이 “철인”이라고 부른다.

 

흔들림 없는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생사를 가리는 싸움 현장에서 열과 성을 다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어느 날 간호사가 방호복을 주면서 담당 병실에 확진자 2명이 나왔다고 했다. 순간 그는 퍽~,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였다. 늘 해오던 일인데도 뭘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며 불안했다. 허둥지둥 기저귀 갈아드리고 도망치듯 방을 나가려는데 “여사님 나 좀 살려줘”하는 확진자 할아버지의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공포에 젖은 떨림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병실 문을 나설 수가 없었다.

 

환자는 식사도 못하고 기침, 가래가 끓었고 열도 나기 시작했다. 안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2년반 돌봐온 환자인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는 간호사들의 만류에도 셕선 팁을 입안에 삽입해서 가래를 뽑아내고 침대를 올려 식사를 도와 드리고 물도 충분히 마시게 했다. 대야에 온수를 받아서 고열로 힘들어 하는 환자의 몸을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우선 물리적 방법으로 열을 빨리 내리게 해야 했다. 반대편으로 체위를 변경시키고 등과 팔 다리도 닦아주면서 “걱정하지마세요. 곧 나아질 거예요.” 하고 말하면서 안심시켰다.

 

깨끗한 환의를 갈아 입힌 후 아이스 팩도 겨드랑에 끼워주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였다. 두려울 틈도, 고민하고 선택할 여지도 없었지만 많이 걱정스러웠다. 방호복 입고 페이스 실드(얼굴 가림막)와 마스크도 썼지만 보호막은 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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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전송금 팀장은 확진자의 간병인이 되었다. 남의 일이라고 가볍게 안타까운 마음만 가졌던 일이 내 일이 되었다. 간호사들은 퇴근시간이 되면 부랴부랴 하던 일을 마치고는 휙 나가고 환자들의 약도 휙 던져주고는 가버린다. 위험물 취급받는 느낌이 들어 서글픈 생각에 소외당한 기분이였다.

 

이틀이 지났다. "전송금님 양성입니다." 보건소의 알림이다. 예상은 했어도 놀랍고 불안하다.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았고 온몸의 근육세포가 죄다 이완상태로 들어간 듯 종아리가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공포의 한숨과 함께 긴장이 심장을 조여 오고 공포가 전류를 타고 온몸에 스며들었다. 강심장인 그도 코로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서럽고 외로워 밤새도록 고민하고  울었다.

 

“어떻게 하지? 왜 하필이면 나일까?”

그렇게 확잔자의 간병인으로부터 확잔자가 되었다. 보건소에서 생활치료센터 배정 확인서도 보내왔다. 생활치료센터에 가서 침대와 한 몸으로 휴식 아닌 휴식이라도 할 것인가? 아니면 남아 있을 것인가? 갈등이였다. 그는 애써 담담하려고 했지만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빨리 심리적 안정을 찾아야만 했다.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을 찾지 못하면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확잔자는 전담병원으로 이송하고 그는 치료센터에 가서 치료받기로 마음잡았다. 헌데 돌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담병원으로 가야할 환자가 전원을 거부하고 “여사님 따라 중국에라도 가겠다”고, “제발 전원 시키지 말아 달라”고 떠듬떠듬 사정한다. 보호자들이 창밖에서 울면서 수화하듯 손짓으로 부탁한다고, 고맙다고, 아버지 지켜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환자의 손도, 보호자의 마음도 뿌리칠 수 없었다. 쉽게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자기의 복잡한 감정에 휘말려 그도, 환자도 보호자와 함께 펑펑 울었다.

 

지금 이 상황에 간병인의 도움이 전례 없이 절박하고 간절하며 그 존재가 소중하다. 가슴이 먹먹해서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남기로 결심했다. 코로나의 현장에서 확진자를 돌보기로 마음 다졌다.

 

“그래, 잘  해내야지. 꼭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전송금 팀장이 자신에게 한 다짐이었다. 살면서 진심으로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리고 지금 누구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간병인인 내가 아닐까? 환자상태를 익숙히 알고 있는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한 그였다. 환자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환자 돌봄에 사투를 걸게 하였다.

 

“그까짓, 코로나 어디 한번 해보자. 올 테면 오라고 해.” 하는 배짱으로 오뚜기 처럼 일어섰다. 대단한 용기와 배짱이다.

 

엄마의 결심을 변호사인 아들한테 전했다.

 

“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어머니의 생각대로 하세요. 대신 꼭 건강하셔야 해요.”

용감한 엄마에, 지혜로운 아들이다. 아들이 어머니 결정을 지지하겠다는 말에 눈물이 쏟아질 번했다. 아들한테 걱정 안겨 준거 미안하고 괜스레 후회되기도 했다. 소식을 들은 친구와 동료들이 극구 반대한다. 전화로 메시지로 채팅으로 종일 시끌벅적 “빨리 현장을 이탈하라”는 충고들이다. 그는 아예 전화기를 꺼버렸다.

 

당년의 “연변 백산호텔의 당나귀”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한번 마음먹은 일을 번복해 본적이 없었다. 연변의 으뜸으로 꼽히는 백산호텔 음식부 책임자로 일하면서 그의 이런 불굴의 성격이 무한한 성과를 이루게 했으며 그를 음식업계의 최상으로 만들었다. 등소평 주석과 호요방 주석이 연변 시찰시 그는 손수 만든 요리를 나라 주석에게 대접할 수 있는 영광도 가졌었다. 당년의 그 “당나귀 고집”이 그를 백산호텔 나이트클럽 책임자로 수년간 맹활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나귀” 팀장은 환자를 모시고 아예 코로나 전담 병실로 옮겨갔다. 전담 병원처럼 교대근무도 휴식공간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코로나 환자의 간병인이자 보호자가 되여 현장에서의 일상을 시작하였다. 종일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얼굴 가림막)를 쓰고 방호복을 입고 병실 안에서만 분주히 오고간다.

 

방호복은 통풍이 안 되고 착용이 불편하고 답답하다. 9명의 환자를 돌보는 일은 정신없이 바쁘고 당황스러웠다. 업무량으로는 2명의 간병인의 해야 할 일인데 지금 상황에 사람구할 수도 없고 또 위험부담이 많은지라 희생자를 최소화 하려는 일념으로 혼자서 두 사람 일을 깜냥하기로 하였다.

 

인간과 바이러스와의 싸움 현장은 치열하다. 코로나 환자가 기침하고 가래 끓으면 셕션도 해야 한다. 그 기침과 가래에 섞여 있을 바이러스를 상상하면서도 간호사가 아닌 전송금 간병팀장이 가래를 뽑아내고 환자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치매증상이 있는 요양병원의 환자들이기에 콧 줄을 빼고 소변 줄 당기고 기저귀 쥐여 뜯기도 한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중환자가 구토하고 설사한다. 구토한 이물질이 호흡기에 역류 되어 질식하거나 페렴에 걸리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 환자를 옆으로 돌려 눕히고 구토감이 감소되게 등도 톡톡 두드려 주었다. 구토 물을 닦아내고 식염수 거즈로 입안 청결까지 깨끗이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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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40도까지 치달은 환자를 돌보느라 뜬눈으로 새벽의 여명을 맞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환자들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밥이 넘어 가지 않아 먹지 못하는 일도 과반수다. 밖은 한겨울 추위건만 전송금 팀장의 방호복속에서는 땀이 여름철 장맛비처럼 흐르고 있다. 한 순간의 틈도 안주는 2개 병실의 9명 환자를 돌보느라 “철인”이라는 별명도 무색할 정도로 가진 맥진해 쓰러진다.

 

후회도 하고 약해지려할 때 애심간병총회 김철수 회장의 위로의 전화와 관리팀 형제자매들의 응원의 메시지가 활력을 주었다. 동료가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식사를 걸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피로하지 않게 짬짬이 휴식을 잘 하고 잠도 잘 자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한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뜨거운 것이 몸속으로 흘러든다. 정신적 타격을 뒤로 하고 몸 관리 일상관리가 중요한 시간인 것 같다.

 

아침마다 누운 자리에서 내 몸을 이리저리 느껴보니 아픈 데가 없다. 열감도 없고 쑤시는데도 없고 목도 칼칼하지 않고 기침도 없다. 참 다행이다. 백신 부스터 샷이 고맙고 몸속에 들어온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워주는 항체가 고맙다. 계속 무증상으로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봄이 필요한 저 9명의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내 육신아 힘내다오, 오늘도 파이팅 하는 거야!”스스로 위로하면서 사투의 하루를 시작한다.

 

눈섭이 휘날리게 몸을 혹사 시켜가면서 버틴 14일이 지나자 9명의 환자들이 전부 호전되었다. 중증으로 심각해졌던 환자도 호흡기 떼고 자가 호흡할 수 있게 되였다. 15일째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전부였지만 나중에 후회하고 미안하기 싫어 이 순간에도 그는 아낌없이 돌보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환자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완치되어 격리해제를 기다리는 중이고 팀장도 무증상으로 고비를 잘 넘겼다. 어제는 보건소의 음성 메시지를 받고 만세를 목청껏 외치기도 했다. 아마도 한 치의 후회도 없을 만큼 평생의 자랑으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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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들이 창 너머에서 허리 굽혀 사례하고 눈물로 고마움을 전한다. 병원장님 간호과장님 원무과장님이 찾아와 허리 굽혀 깍듯이 인사 올리고 손잡아 주고 어깨를 다독여 준다. 병원직원들이 단체로 몰려와 문밖에서 머리위에 하트를 올려 인사하는 예의도 갖추었다. 서열문화가 지독한 한국사회에서 병원장님이 일개 간병인에게 이런 예의를 갖춘 사례는 보도 듣도 못했던 일이다.

 

코로나는 절대 의료진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그 어느 언론사에서 보도하지도 않는 간병인의 노고를 우리는 전송금 간병팀장의 희생을 통해서 알게 되였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람들이 동포간병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지고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코로나의 최전방에서 누구보다 환자 곁에 오래 머물고 있는 간병인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 씁쓸하다. 간병인이 환자와 가장 오래 동안 함께 하고 가까이 지내며 고생하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수호천사들이 코로나의 역경에서 내 부모 내 친인이 아닌 환자들을 지켜주고 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의료진이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수호천사라면 간병인은 환자를 지키는 수호천사이다. 먼 훗날 한국역사에 코로나 사태가 기록될 때 코로나 전장에서 의료진만 땀 흘리며 싸우는 게 아니라 동포간병인도 피와 땀을 흘렸다는 노고가 기록되길 희망한다. 전송금 간병팀장이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기를 기대한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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