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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달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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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5-16 22:11 조회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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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고추달리개 하나만 있어도 순천김씨 대를 이어나가겠건만, 쯔쯔.”

 

할머니께서는 슬하에 3남3녀를 두셨다. 그런데 손군들대에 와서 가들가들 순천김씨 성을 탄 씨종자는 셋뿐이고 그 외 손군들이 열아홉이나 되였다. 그러니 남존여비사상이 꽉 찬 할머니로 놓고 말하면 “고추달리개”타령이 나올 만도 했다.

 

어린 기억에 할머니 아들딸들이, 큰 손군들이 “이걸 소비돈(용돈) 하세요.” 하고 드린 돈들을 할머니께서는 속옷주머니에 꽁꽁 감추었다가는 늘 막내삼촌네 맏아들에게 가만히 쥐어주는 것을 목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원인은 큰 아버지네 두 아들이 장가들었는데 아기를 낳은 것이 둘 다 딸이었으니 이제 희망을 걸 데라고는 막내삼촌에 큰아들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어릴 때 오죽했으면 나의 꿈이 남자가 되는 것이었을까! 그러면 나한테도 돈이 생겨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개눈깔사탕이랑 신바닥과자랑 사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몸이 특별히 약해 엄마가 닭곰이랑 해주고 달걀이랑 가만히 삶아주고 기관이 약해서 늘 기침이 멎지 않기에 천지꽃꿀이랑 해주면 그것들을 먹을 때마다 나는 얼마나 할머니눈치가 보였는지 모른다.

 

“가시나, 애비도 모르고 제 입에만 쓸어 넣어? 쯔쯔, 지애비하나 가들가들, 보기만 해도 속쓰러워서 원.”

 

나 때문에 엄마까지 함께 욕 본거다.

 

그 “고추달리개”타령에 아들 하나 못 둔 엄마는 또 얼마나 눈물동이를 쏟았는지 모른다. 그때는 남존여비사상이 통을 치고 있는 때고 할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딸들만 낳았다고 눈치를 주고 있는 판이었고 여자아이를 낳은 건 여자의 문제라고만 여겼던 때라 엄마는 눈물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고태라 언니를 낳았을 땐 첫아이여서 반가웠는데 나를 낳을 땐 제발 남자애를 낳아달라고 밖으로 난 굴뚝 모서리에 물 한 사발 떠놓고 그렇게 빌더란다. 셋째는 엄마배속에서 남자애처럼 세게 놀기에 무조건 남자애려니 했는데 역시 여자애여서 그리두 실망하더란다. 막내를 낳을 땐 이번에만은 제발 고추달리개를 낳아서 순천김씨 대를 이어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고 빌었는데 낳은 것을 보니 또 여자애인거다.

 

“쯔쯔, 또 가시나."

 

할머니는 옷섶으로 눈굽을 꾹꾹 찍으며 갓 태어난 막내를 빤히 들여다보더니만 “애가 눈썹과 귀밑머리가 붙었구만. 이런 애는 남의 집에 줘야 어시나 애한테 좋다오. 그 아래로 낳으면 아들이구.”하고 말해서 금방 해산하고 가뜩이나 힘든 엄마의 속을 얼마나 박박 긁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 쳐도 속에서 떨어진 귀여운 자식을 어떻게 남에게 주는가며 절대 안 될 일이라며 할머니생각을 끊어놓는 건 단칼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할머니는 자기생각을 동네에까지 들고 나간거다. 어느 날 문득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중매꾼을 붙여 우리 집에 탐문 온 것이다.

 

“소문 듣고 왔습니다. 애를 기를 집이 나졌는데 애를 정말 줄 생각이세요?”

 

손군 욕심에 할머니가 하는 넉두리로만 넘겨버리고 말았던 일이 이 지경까지 벌어지니 엄마는 더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열불을 토하고 말았다.

 

누구 이렇게 터무니없는 뜬소문을 퍼뜨려서 남의 가정에 화불을 놓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 티끌만치도 해본 적 없으니 어서 빨리 손 싹 씻고 이집에서 나가달라고 축객령을 내렸다. 아빠도 할머니를 힐끔 한눈 무섭게 보고는 그런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으니 그 사람을 단념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중매꾼을 돌려보냈다.

 

할머니도 얼마나 손자비위가 났으면 그랬을까!

 

그런데 그 유일한 희망이었던 막내아들네 맏이가 장가를 들고 애를 낳은 것도 또 딸 인거다. 할머니의 "고추달리개"꿈은 이렇게 되여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후에 손녀신랑들이 들락날락하며 가정에 새로운 분위기를 부여하면서 할머니 입에서 그 “가시나”소리도 종적을 감추었고 “고추달리개”타령도 드물어갔다.

 

고추달리개면 어떻고 딸이면 또 어떤가. 할머니도 “죽어도 맏아들네 집에서 죽겠다.”던 고집을 꺾고 결국 둘째아들인 우리 아빠 집에서 눈을 감으신 것 아닌가.

 

우리 딸들이 엄마, 아빠를 호강시켜 가보고 싶은 곳 다 돌아보게 하고 드시고 싶은 것을 다 드셔보게 하고 다리가 아파하시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층집에서 사시게 하고 70진갑 버젓이 차려드리고 결혼 50주년기념일 깜짝이벤트를 장만해 드리고 신식유행 따르게 해주어 노년생활을 충실히 보내고 계시는 우리 엄마, 아빠를 하늘에 계시는 할머니께서 굽어보신다면 할머니도 더는 “고추달리개”타령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리라 믿는다.

 

딸들도 든든한 기둥이라면 기둥이고 따뜻한 솜옷이라면 솜옷이잖는가!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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