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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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5-05-14 22:00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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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 않아 곧 어버이 날이 다가온다. 이 때가 되면 나에게는 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형언할 수 없는 사색감에 심취된다.
나의 어머니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났다. 어머니께서는 가정주부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육아에 신경을 써야 했다.
부모님들은 대약진을 겪었기에 량식고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하루는 어린 자식이 초롱초롱한 두 눈을 부릅뜨고 엄마를 마주앉더니 “엄마는 왜 배추만 먹어?”라고 했단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는 배추가 맛있어서 먹는단다.”라고 하면서 어린 자식 앞에서 량식이 모자라서 먹는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또 하루는 옆집 영자할머니의 실수로 집에 큰 불이 붙었는데 보금자리를 잃은 부모님들은 학교숙소로 대피하는 수 밖에 없었다. 엎치는데 덮치는 격으로 집짓기에 나서야 겠는데 둘째가 설사 때문에 앓고 세 살 난 막둥이는 잔등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엉, 엉 울어댔으니 어머니께서는 어린것을 업고 사다리에 오르내리면서 집짓기에 여력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님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당시 피난 장소는 학교숙소여서 여섯 식구 살기에는 방이 작고 비좁아 도무지 말이 아니였다. 사람위에 사람이 누울 정도로 비좁은데다가 철부지 자식들까지 졸라댔으니 조바심과 안타까움에 마음은 재가 되였을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의 부모님들은 생활의 좌절속에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보금자리 마련에 고군분투해왔으며 마침내 새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했던 것이다.
몇 년 후 나의 아버지는 막내이지만 부모님 모시러 고향으로 가야만 했다. 아버지의 변변치못한 월급에 매달려 중풍으로 앓고 계시는 시부모님과 네 자녀를 먹여 살리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시부모님들이 병환에 계시던 나날에도 빨래를 강변에 가서 빨아야 만 했다. 차디찬 물에 퉁퉁 부어 오른 손을 가마 목에 녹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렇게 어머니는 수십 년 세월을 추호의 원망도 없이 묵묵히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것이다.
글을 좀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림원춘의 소설 “몽당치마”를 읽어보았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조양천 댁마냥 궂은 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집안을 위하여 헌신해야 하는 부녀처럼 시부모님한테는 무던한 며느리였고 남편한테는 현숙한 아내였으며 자식한테는 훌륭한 어머니셨다.
개혁개방을 하면서 한국으로 오셨는데 간병일하다가 허리를 상하여 시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나의 어머니는 이렇게 가정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해왔다.
머지 않아 어버이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이 젖어 듬을 억제 하는 수가 없다. 어머니, 이 자식은 어머니를 그리고 또 그립니다.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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