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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작에 맞는 새로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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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연합회 작성일25-08-30 01:10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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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는 시대에 한참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들은 모두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나는 여전히 손바닥만 한 핸드폰 자판을 두드린다.


글자를 입력하는 손가락은 저리고, 작은 화면에 눈은 쉽게 피로해진다. 그럼에도 매일 그 작은 화면 속에서 한 글자, 한 문장씩 내 삶의 조각들을 붙잡는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나는 마작판과 술자리에 나를 맡긴 채 살아왔었다.


“세상 돌아가는 건 젊은 사람들 몫이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현실과 타협했을 뿐이다.


AI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말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컴퓨터 전원도 켜본 적 없고, 한글 프로그램이 뭔지도 몰랐다. TV 리모컨 하나면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고향에서 20년 넘게 글을 써온 사람이었다. 밤을 지새우며 원고지에 소설, 수필, 통신보도까지 써서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다. 한 달에 몇 번씩 들어오는 원고료로 술도 사고 담배도 사면서, 세상과 조용히 싸우던 시절이었다.


문학상도 몇 차례 받았고, 내 이름 석 자가 실린 지면을 손에 쥐었을 때의 벅찬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절 나는 ‘신문학’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기에, 동료나 동창들도 내가 쓴 글인지 몰랐다.


어느 달에는 원고료가 월급보다 많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삶은 글만 쓰며 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현실은 빠르게 나를 압박했고, 나는 결국 ‘글’이 아닌 ‘돈’을 좇아 한국행을 선택했다. 15년 동안 공장과 식당을 전전했고, 퇴근 후에는 습관처럼 마작과 술에 기대었다. 마작에는 제법 능했지만, 결국 돈은 늘 게임장 사장의 손에 들어갔다.


남은 건 허탈함뿐이었다.

문득 생각한다.


만약 그 10년 동안 마작 대신 컴퓨터와 친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 한 권쯤은 세상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책장에 꽂아두고 손자에게 자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7년 전, 며느리가 백만 원짜리 컴퓨터를 사주며 말했다. “아버님, 옛날에 글도 쓰셨잖아요. 컴퓨터로 다시 써보시면 어때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순 넘은 나이에 무슨 컴퓨터야. 그런 건 젊은 사람들 거지.”
그렇게 받은 컴퓨터는 책상 위에서 먼지만 뒤집어썼다.

결국 2년 전, 손자에게 그 컴퓨터를 넘겨주었다.


손자는 금세 능숙하게 다루며 게임도 하고 과제도 척척 해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지만, 마음 한켠은 쓰리고 아렸다.

요즘 문우들 모임에서도 말이 줄었다.


“나는 아직도 핸드폰으로 글을 씁니다.”
그 한마디가 부끄러워 차마 입을 열지 못할 때가 많다.
다들 컴퓨터로 매끄럽게 글을 쓰고, 이메일로 투고하며, 교정도 자유롭다. 그 속에서 나는 낯설고, 때로는 외롭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마작도 내려놓고, 술도 줄였다.
그 빈자리를 다시 ‘글’로 채운다.


비록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장부호에서 서툴고, 작은 자판을 더듬으며 글을 쓰지만,
나는 글과 다시 친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때 컴퓨터를 배웠더라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 어쩌면 가장 빠른 시작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여전히 내 곁에 있다.


한때 내가 외면했던 그 기계가, 마치 묵묵히 기다려준 친구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으련다.


늦은 시작, 새로운 친구.
그것이 지금 내 인생 후반전의 새로운 선택이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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