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골짜기에 소문 없이 피였다가 하루 밤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
이 시구를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좋아한다.
소학시절 친구가 훔쳐온 친구언니의 일기장에서 읽었던 어느 시인의 시였다. 친구의 언니는 60년대 고등학교가 적었던 시절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만도 개천에서 용 나왔다고 수재 소리를 들었는데 그 고등학교에서도 1~2등을 했던 수재중의 수재였다.
그 언니는 나의 우상이였고 롤 모델이였다. 그런 언니의 일기장을 존경과 부러움으로 쫓기듯 훔쳐 보았는데 그 일기장에서 한수의 시를 읽었다. 시인의 이름도 시의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시중에 유독 이 시구만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수십년 동안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언니가 좋아서였는지 시가 좋아서 였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누구의 시 인지도 모르고 속절없이 지는 꽃이 무슨 꽃인지도 모른 채 오직 이 시구만 가슴에 품고 무지하게도 60대 중반까지 살아왔다.
그동안 하루 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꽃이 아니라 차가운 바람에도 고운향기 뽐내는 연보라 빛 가을국화 처럼 살겠다고 아둥바둥 세월을 흘리면서 그 시를 다시 읽고 싶은 소망을 안고 살아왔다. 개천의 두 번째 용은 못되더라도 시골의 봉황이 되겠다던 소시적 야무진 꿈은 펼치지도 못하고 전직은 간호사로 현직은 간병사로 소리 소문없이 평범한 시골촌닭의 삶을 허공에 날리고 있다.
허무한 인생 속에 나름 시의 원작과 시인을 찾아 헤맨 세월이 수십년이다. 헌데 우연이라 할까 인연이라 할까 아니면 행운이라 할 까? 수십년 동안 찾아 헤매던 그 시를 요즘 이옥희 선생님의 도움으로 시인도 원작도 찾았다. 날듯이 기쁘고 행복하다. 그토록 갈망하던 시의 원작을 찾았으니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시구는 박팔양 시인의 “봄의 선구자'진달래'를 노래함”의 일부분이였다.
아쉽게도 내가 기억하고 있던 하루 밤 비바람이 아니고 하루아침 비 바람이였고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은 내가 상상하던 이름 없는 풀꽃이 아니라 그토록 친숙한 진달래 꽃이라는게 마음아프다. 그 가냘픈 꽃이 진달래 꽃이란다.
박팔양 시인은 일제강점시기 우리민족의 암울한 넋을 하루아침 모진 비바람에 떨어지는 가여운 꽃으로 표출시켰다. 나는 진달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고향의 상징인줄만 알았지 봄의 선구자로서의 슬픔의 꽃, 희생의 꽃인 줄은 몰랐다. 요즘 나는 계절에 앞서 피였다가 아프게 지는 진달래의 삶을 이해하려고 박팔양 시인의 “봄의 선구자....”를 읽고 또 읽는다...
이 시를 만나게 해주신 이옥희 선생님이 고맙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옥희 선생님을 사랑하고 존경해왔다. 이 글을 빌어 이옥희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선생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김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