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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만경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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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2-12 03:17 조회2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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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수 고향마을에서 서남쪽으로 한참 걸으면 만경대다. 여기는 비옥한 땅 신비로운 벌판이다. 

 

나는 상상의 준마를 타고 세월을 거슬러 멀리멀리 달린다. 아마도 몇 천 년, 아니 몇 만 년 전의 밤이리라.

 

 폭풍이 거세차게 몰아치더니 천지를 진동하며 조선반도 북쪽켠의 하늘높이 치솟은 산마루에 불기둥이 솟구쳐 만리 밤하늘을 불태웠다. 

 

오래오래 타오르던 불길은 꺼지고 그 자리에 넓고넓은 웅덩이가 남겨졌다. 하늘에서 쏟아졌나 신기하게 그 웅덩이에 점차 맑은 물이 차 오르더니 노을 진 어느 날 아침, 웅덩이 한 모퉁이를 헤가르고 흐르다가 천길 땅 아래로 바위를 쳐부수며 내리 쏟아졌다 . 

 

그리고는 흰 양떼 같은 물살로 변하여 세 갈래로 흩어졌다. 한 갈래는 서북쪽 소나무밭으로 흘러 송화강이라 이름 가졌고 한 갈래는 서남쪽 깊은 골짜기로 검푸른 오리깃털 색갈로 깊이 흘렀다. 압록강이란다. 

 

마지막 한 갈래는 돌 바위 밑으로 자취를 감추었는가 했더니 멀리 동북쪽에서 다시 나타났다. 도망쳤다가 왔다하여 도망강이라 불렀다가 다시 두만강이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바로 이 두만강이 오랜 세월 흘러 흘러 모래를 쌓고 쌓아 량수천자 남켠에 망경대란 비옥한 벌판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쌓은 땅에 발길이 막혀 남쪽 산 밑으로 길을 바꾸었다고 한다. 하여 이 곳 중조변계는 두만강이 아니라 모래밭 버들 숲이다. 

 

푸른 물가 나루터는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노래를 남기고 사라진지 오래듯 아마 이곳에도 망경대라고 이름을 남긴 높은 루대가 있었으리라. 

 

이 벌판 동남부분 넓은 땅의 주인이 바로 우리 생산대이다. 이 땅은 장마가 없다. 소낙비 내려도 한 시간 못되어 죄다 스며버린다. 이 땅은 가물을 모른다. 한 달 비가 없어도 땅 깊은 곳에서 물기가 올라온다. 강이 쌓은 점토라 넓고 넓은 그 땅에 돌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콩3천 옥수수 5천이란다. 콩은 하루갈이에서 3천근 거둘 수 있고 옥수수는 5천근 난다는 말인데 이 땅에선 해마다 그보다 더 난다. 우리 생산대 잡곡 열 마대라면 이 땅에서 일곱 마대 거두었다. 만경대는 어머니 땅, 이 땅의 양분으로 우리 마을 어린이들 자라서 어른이 되였다고 할만하다. 

 

벌판 북쪽에는 하서늪이라 부르는 호수가 있다. 물 깊이는 키를 넘는 곳이 많다. 

 

호수에 들어 서서 칡덩굴 같은 넌출을 당기면 그 넌출에 소처럼 뿔을 가진 동전크기만한 새까만 열매가 가득 달려 나온다. 말배라고 부른다. 칼로 쪼개면 흰 눈처럼 새하얀 속살이 보이는데 생것채로 파먹는다. 개암처럼 잣처럼 고소하다. 

 

호수에 들어서면 땅땅한 것이 자주 밟히는데 돌이 아니다. 이 곳엔 돌이 없다 조개가 박혀있다. 조개는 잡는다고 하지 않고 뽑는다고 한다. 한번 들어서면 2, 30개는 쉽사리 뽑을 수 있다. 만두 같은 조개를 힘주어 벌리면 안에는 귤색 속살이 한웅큼 들어있다. 아주 맛 좋은 료리감이다. 

 

이 늪에는 물고기가 억수로 많다. 버들개랑 붕어랑 납지랑 패래재랑. 고기잡이 철이면 낚시꾼이 줄지어 앉아있다. 펄떡거리는 고기를 연거푸 낚아 올린다. 투망으로 잡는 사람도 여럿이다. 

 

나의 친구 봉춘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로교원인데 투망을 잘 던진다. 퇴근해서는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김없이 던지러 온다. 한 번씩만 당겨내곤 그대로 가시는데 그 모습 가관이다. 

 

붉은 노을 속에서 하늘높이 날리면 그물은 공작새 깃을 펴듯 쫙 펴진다. 연돌은 빗방울 떨어지듯 좌르르 소리 내며 물속에 숨는다. 끝까지 가라앉길 기다려 슬슬 당겨 땅 우로 슬쩍 낚아 챈다. 잡혀 나온 고기는 그물주머니에 은구슬 담은 것처럼 저녁 어둠속에 반짝반짝  빛난다. 

 

우선생님은 료리도 잘한다. 그 생선을 깨끗이 씻어 솥에 담아 먼불(약한불)에 밤새 올려 놓아 두는데 이튿날 아침이면 뼈까지 고루 익어 두부같이 만문하고 향긋하다. 인품 좋아 늘 아래 웃집에 맛 보여 줬다. 

 

하서늪은 보물고 그냥 잡아내고 잡아내도 끝없는 물고기 어디에서 오는걸가? 

 

대학 다닐 때 고향자랑 하다가 담임선생 김동식 교수한테 행여나 하고 물어보았다. (이 교수는 박식한데다가 유화도 잘 그리셨다. 그 당시 학교 대청에 건 "자네가 처사하면 난 시름 놓겠네"란 제목의 화국봉이 모주석을 뵈는 유화를 그렸었다)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고기 알은 몇 백 년 땅속에 묻혀 있어도 죽지 않고  물을 만나면 다시 까날 수 있다고 한다. 강물에 의해 퇴적된 땅이라면 한 줌의 흙에도 그런 고기 알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만경대 벌 아무데나 땅을 파서 물을 가둬 놓으면 고기떼가 생겨 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만경대의 한줌 한줌의 흙이 그대로 금값이라고 할만하다. 

 

바로 이런 땅을 되찾기 위하여 목숨 바쳐 싸운 지하 항일 조직이 만경대벌 북쪽 하서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선배들이 피 흘려 지켜 온 천혜의 땅을 두고 주인 된 우리 마을 우리 생산대 어느 누군들 이 땅에 자신의 피땀을 아꼈으랴! 지금도 그 모습들 아름다운 풍경화로 력력히 눈앞에 떠 오른다.

 

 봄이면 씨 뿌리고 여름에는 김매고 가을이면 산더미 같은 수확 싣고 노을 속에 돌아오던 그 모습 새삼스레 그리워 또다시 보고 싶다. 

 

그대들이 땀 흘러흘러 이 땅에 슴베여 이 봄날에도 아지랑이로 하늘하늘 피어오르려니 내 오늘 삼가 그대들의 그리운 이름 적어본다. (생각히는 대로 순서 없음을 량해 하시라) 김주광, 박맹길, 박두영, 방해룡, 김금옥, 송인진, 박송학, 박태순, 박재순, 박순금, 김길현, 최상걸, 방두석, 김영금, 김금자, 김정숙, 박금자, 박경록, 박경인, 김분선, 송신옥, 송봉수, 방경자, 윤금녀, 최학렬, 김의숙, 신희도, 장채련, 최길준, 김옥선, 김복선, 리기선, 김송태, 박인석...  이 가운데 많은 분들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가셨다. 

 

이 땅에 자취 남기시고 아쉬워 하며 떠나신 분들, 고이 잠드소서. 만경대는 그대들을 오래오래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들의 이름 영원히 만경대의 푸른 땅우에 새겨져 있습니다. 

  

다시 하많은 회억 속에서 김매던 날 골라 보고 싶다

 

저마다 호미 들고 맨발로 들어선다. 기나긴 사래에 돌 하나 없다. 발목까지 묻히는 시원한 흙은 어릴 때 발을 씻어주던 어머니의 손길마냥 부드럽다.

 

신옥의 어머니 그냥 제일 앞에서 나간다. 그담으로 잘 매는 사람도 꽤 많다. 문학의 엄마랑 오복의 엄마랑. 그리고 꽃나이의 신옥이, 정숙이, 경희, 분선이도 인석이, 길현이, 상걸이도 빠른 축이다. 

 

정숙의 아버지 김 솜씨 볼만하다. 호미를 당길 때마다 풀이 흙속에 끌려 들어가 그 많던 풀이 삽시간에 사라진다. 흙을 깎는 소리 절주 좋게 싹싹 소가 풀을 새김질하는 소리를 방불하게 하여 두 볼이 찡하니 군침이 돈다. 

 

더 그리운 건 하서늪가 아름드리 수양버들 아래 시원한 샘물이다. 벤또 들고 샘물가에 이르면 고달프던 일 다 잊어진다. 기음 맨 후 찌는 듯한 더위에도 그 샘물에 밥 먹으면 발끝까지 시원해 난다. 

 

그 다음 널찍한 나무그늘에 여기저기 누워 잠자며 휴식한다. 그런데 한참 자다가는 너무 추워 잠을 깨고 덜덜 떨며 뙤약볕을 다시 찾는다. 하서늪가 그 나무 그늘은 겨울날씨처럼 차갑다. 

 

옛날 두보란 시인이 태산을 남쪽은 아침이고 북쪽은 저녁이라 산이 밤낮을 가로타고 있다고 읊었대도 대단한 것 없다. 이 늪으로 와 보라. 하서늪 나무 그늘은 삼복지간에도 겨울 추위이니 이 보다 신기하랴. 

 

아, 신비로운 땅 만경대 기름진 들아, 너 잘 있느냐?  땀 흘리며 고달프던 일 다 잊어지고

그 시절 사랑스런 얼굴들 사무치게 그립구나!

 

하서늪 수양버들 정든 그 샘물, 오늘도 그대로 있을가?! 이 봄에도 그제처럼 꽃수건 친 녀자애들이 달래 캐고 있을가? 

  

언제면 그제 날 그 샘물에 손목 잠그고 그리움에 울어볼까. 감격에 울어 볼가! 

/손홍범

             21년 2월 26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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