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5일, 나는 10년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반년 남짓 기다림 끝에 비행기표를 쥐게 되어 귀국길에 올랐다. 비행 1시간 경과 후 오후 1시에 중국 연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근데 이왕과 달리 일행 200명쯤 되는 탑승객들은 제자리에서 대기하고 코로나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 두 명이 올라와 앞자리에서부터 10명씩 5-6분 간격으로 내리도록 지시를 했다. 20여분 후, 나도 남편과 같이 내려 입국 심사대로 갔다. 방호복으로 “전신무장”한 관계자들의 꼼꼼한 설문 조사,열 체크, 핵산검측, 해관검사 등등 모든 검증을 끝내는데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수하물을 찾은 후에도 맘대로 이동할 수 없고 대기하고 있다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전용버스에 올라 30분쯤 달려 “지선가일호텔”(智选假日酒店)이란 한 호텔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방호복을 입고 연막소독기를 둘러메고 대기하고 있던 대여섯 명의 관계자들이 탑승객들의 짐을 꺼내 일일이 소독하고 나서 버스 문을 열어 주었는데 내리는 사람마다 연막 소독기로 전신 소독을 한 후에야 다음 승객이 내릴수 있었다.
호텔 등록은 원칙상 1인1실로 돼 있어 나와 남편의 방도 각자 따로 정해져 있었는데 특수상황이란 조건으로 사정해서 다행히 한실에 들었다. 등록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을 때는 오후 5시가 되었다.
저녁 7시 반, 호텔 관계자가 저녁도시락을 문밖 복도의 의자위에 가져다 놓고 방문을 두드려 알렸다.
다시마 돼지고기 볶음, 청경나물 볶음과 양파 돼지고기볶음에 계란국과 배추김치까지 곁들인 도시락 반찬이었다.
아침 6시에 대충 요기를 하고나서 검사 외에는 마스크 한번 벗지 않은지라 지치고 허기진 상태라 호텔급식은 천하의 별미였다.
이튿날 아침 급식도 야자과육과 돼지고기를 소로 넣은 찐빵 두개에 탕수육, 셀러리 돼지고기 볶음과 차란(茶蛋, 홍차 혹은 녹차를 주재료로 삶은 계란), 깍두기김치에 좁쌀죽, 나의 입맛에 딱이었다.
점심은 줄당콩 돼지갈비찜(중국 특유의 요리), 토마토 가지볶음, 튀긴 닭다리에 짭조름한 무장아찌, 좁쌀죽, 흰밥에 사과와 귤 한 개씩이었다.
그 뒤로 나오는 급식도 거의 메인요리 세가지에 곁들인 장아찌, 그리고 우유 혹은 요구르트 외에도 사과, 귤, 바나나, 복숭아, 대추 등 다양한 과일이 끼니마다 나와서 남아 돌았다.
하루 급식비 90원(한화 15000원)에 비하면 아주 후하게 나온 편이다.
15층에 위치한 나의 방에는 침대 두개에 텔레비전, 와이파이, 온풍기, 샤워부스 등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전망도 좋아 창밖 1200미터쯤 먼 곳의 동해안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바다와 불과 500미터에 있는 내가 사는 동네 아파트도 바로 보였다.
수년간 비어있는 집을 지척에 두고도 반드시 호텔에서 14일간 격리생활을 해야 하는 코로나시기의 별난 일상이었다.
한국에서 매일같이 보던 유튜브와 카톡도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작동되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호텔에서는 매일 오전 오후 두 번씩 열 체크를 해서 보고하고 친구들이 보내준 위쳇 내용을 두루두루 열어 보며 건강체조도 대충 한 번씩 하는 외 나는 창턱에 기대어 바다와 내가 사는 동네 아파트를 훑어보며 호텔격리 초읽기를 하군 했다.
호텔 입소 사흘 날 핵산검사가 있었다. 그리고 12일째 되는 날 또 한번 검사를 받았는데 탑승 전 72시간 이내의 한국에서 받은 핵산검사 확인서와 중국에 착륙하자마자 하는 검사까지 합하면 이번 귀향길에 핵산검사만 4번 받았다.
14일간 호텔비용은 급식비를 포함해서 1인당 4900원(한화 82만원)인데 나는 남편과 한실을 썼기에 도합 5945원(한화 100만원 정도)을 지불했다(급식비는 주문한 만큼 계산).
호텔격리 14일째 되는 10월29일 오후 2시30분, 호텔격리가 끝나면 반드시 집까지 데려다 줘야하는 중국 당지 정책에 따라 내가 사는 동네 주민센터 직원이 우리를 데리러 호텔에 왔다. 이로써 나는 14일간 호텔격리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정상적인 생활을 맞이했다.
14일간 호텔격리는 본의 아닌 특별한 생활경험이었지만 오랜기간 이탈해 있던 중국생활 적응에 편리한 과도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전례없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정상적인 자유왕래가 조속히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