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같은 동창생 최문식을 추모하며 쓴 최영철선생님의 글을 김보옥언니가 전달해 주어 방금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최문식선생님은 저랑 한 생산대대 사람으로서 저는 2대, 그는 3대에 살았습니다. 지난 70년대, 제대하여 돌아온 그는 홍신소학교 교원으로 있었는데 저의 막내 여동생의 담임이었습니다.
활달하고 다재다능한 최문식선생님은 무용, 노래, 악기 등 면에서도 조예가 깊어 당시 홍신대대문예선전대에도 많은 지도를 해 주었습니다.
1977 恢复高考第一年에 같이 시험을 쳤는데 저는 落榜했지만 그는 붙어서 연변대학에 간 겁니다.
졸업후,다시 아성 조선족중학교 교원으로 돌아왔는데 해박한 지식에다 입담까지 좋아 학생들속에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학생들은 심지어 최문식선생님의 비스듬히 눕혀 쓰는 글씨체마저 모방하여 한때는 전교 학생들의 글씨체가 모두 비스듬한 글씨체로 “통일”되었다는 설도...
1984년, 저는 연변대학 조선어학과 함수시험을 보기로 맘먹고 복습을 시작했는데요. 조선족학교를 4년도 못 채운 저한테 복습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과목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조선족중학교를 찾아갔는데 최문식선생님이 친절하게 맞아주며 조선어문법교재를 주면서 알아듣기 쉽게 지도 해 주었습니다. 연 며칠 그의 지도를 받고 보니 저도 신심이 생겼구요.
그해 봄, 최문식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저는 단번에 함수시험에 합격하여 5년간 연변대학 함수공부를 마치고 5년후, 저도 大学学历를 가졌답니다.
몇 년 후, 才华横溢한 최문식선생님은 조선족중학교 교장으로 발탁되고 후에는 또 아성 교육국 부국장으로~ 그리고 阿城市委宣传部로 간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연변대학 어느 연구소로 갔다고 하더군요.
지인의 말에 의하면 연변에 있는 최문식선생님의 집에 갔을 때 그의 집 한 칸은 온통 우리민족에 관한 연구 서재들로 방 한 칸을 꽉 채웠다고 합니다.
성과만큼 힘 든 맘고생도 많았을 거구요~~
저도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최문식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분이고 아까운 인재인데 야속하게도 운명을 달리 하셨다니... 슬펐습니다. 우리민족의 훌륭한 인재를 잃은 셈이죠.
최영철선생님의 글을 읽는 내내 최문식선생님의 일거일동이 눈앞에 선했습니다.
有血有肉有情有义한 진정한 남자-최문식선생님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민족의 문화와 번영을 위해 동분서주하시겠죠?
/이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