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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를 격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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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0-10-06 15:10 조회1,0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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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월1일, 나는 인천공항에서 제주도~가목사행,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8년 전, 큰 형수님이 간경화 복수진단을 받자 그날부터 큰형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지막 희망이랄까, 아니면 하루아침에 현대의학이 발전해 간경화를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을 발명하는 기적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바램 이라고 할까 4개월에 한번 씩 흑룡강에서 머나먼 상해종류병원을 오가면서 혼자서 형수님의 병수발을 들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간경화를 치료할 수 있는 현대의학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8년 사이 치료비에 몇 십 만원의 뭉칫돈을 썼지만 악머구리 같은 병마는 지난해 10월에 끝끝내 큰 형수님을 저 세상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금방 상처를 하고 마음의 상처도 채 아물지 않은 큰형이 고향에서 혼자서 돌아오는 설과 보름을 외롭게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무작정 고향 행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고향에 발을 들여놓는 날부터 무한으로부터 현대의학으로 예측 불가한 전대미문의 코로나19가 발생했고 이어서 유럽과 동남아지역에도 퍼지더니 재빨리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급기야 나라와 나라사이 국경이 폐쇄되고 하늘 길과 뱃길이 끊어졌다. 성과 성, 시와 시, 구와 구, 마을과 마을, 모든 것이 폐쇄되고 고립되었다.

 

설과 보름을 큰형과 같이 쇠고 인차 한국으로 돌아 갈 생각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웬 뚱딴지같은 코로나폐렴의 출현에 오도 가도 못하고 하루가 1년 맞잡이로 1개월, 9개월을 집에서 방콕족 생활을 하였다. 그 뒤 차츰 전국적으로 코로나폐렴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건강QR코드가 도입되면서 외성과의 출입이 자유로워지고 또 하늘길이 차츰 열렸지만 가목사~제주도 하늘길이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 던 중, 나는 요행으로 지난 9월 4일, 오전 10시 25분, 청도~인천행 티켓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9월 3일 가목사에서 850원을 주고 비행기를 타고 청도로 거쳐 다음날 한국 시간으로 12시 1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근 4시간에 걸쳐 검역직원이 내 핸드폰에 자가격리에 필요한 앱을 까는 절차를 포함한 모든 입국절차를 마치고 나서 무사히 인천공항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곧바로 수원행 리무진을 타고 1시간을 달려 내가 잡고 있는 집근처 버스역에 도착하였다. 버스역에는 벌써 영통구 보건소에서 파견한 차가 나를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차를 타고 5분도 안되어 곧바로 내가 세를 맞고 사는 집 문 앞에 내렸다. 그때 시간이 저녁 6시다. 보건소 일군은 나에게 지금 이 시각부터 14일 동안 자가격리가 시작되니 격리가 끝나기 전까지 절대로 문밖출입을 금지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이튿날이면 보건소일꾼이 자가격리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갑자기 심한 시장기를 느꼈다. 아침에 청도공항에서 빵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점심을 기내에서 주는 작은 컵라면으로 에떼웠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하다. 아니 그보다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고 집까지 왔으니 마음의 탕개가 갑자기 탁 풀려서 더 시장기를 느낀 것 같다.

 

마침 고향에 갈 때 먹다 남은 쌀과 소금, 간장, 미원, 콩기름 등 양념이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반찬거리를 아무리 뒤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나는 재빨리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짐을 풀어 한국에서의 14일간 자가격리를 대비해 집에서 채 썰어 말린 가지와 풋 고추를 꺼내 물에 20분 정도 담갔다. 다음 기름에 볶아 두 가지 반찬을 뚝딱해서 저녁을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먹었다. 역시나 굶주린 자에겐 음식에 꿀맛이 따르고 배부른 자에겐 식상(食伤)함이 오는 것이다.

 

이튿날 9시에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보건소에서 걸려온 전화인데 자가격리에 필요한 물건을 문밖에 두고 간다고 한다. 내가 문을 열어보니 자그마한 박스가 있다. 집에 들고 들어와 박스를 뜯어보니 체온계, 코로나안전수칙과 생활수칙과 100리터짜리 커다란 쓰레기봉투 2개가 들어있었다.

 

나는 집에 있을 때 매일 한국 TV를 시청하면서 자가격리를 위반하고 문밖에 나온 자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3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 벌금하고 1년 이상 형사처벌을 받고 외국인은 강제추방을 당하는 뉴스를 여러 번 보아온 터라 14일 동안 죽지 않으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철저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반찬이 없이 그냥 말린 가지와 말린 반찬을 먹으니 질려서 더는 먹을 수가 없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고기와 쏘시지를 연 며칠 먹이면 먹기 싫다고 끙끙 거리는 요즘 세월에 하물며 고급동물인 인간을 말해서 뭘하랴. 그래서 나와 30분 거리에 사는 둘째형한테 전화를 걸어 집에 있는 반찬을 가져다 주던가 없으면 시장에서 여러 가지 반찬거리를 사다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했더니 멀리 지방에서 일하는데 금년 여름, 끝없이 이어지는 장마로 인해 아파트신축공사가 처졌다고 현장에서 일군을 달달 볶는 바람에 바빠서 올 시간이 없다고 한다. 나는 할 수없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먹기 싫은 가지와 고추반찬을 죽지 못해 먹는 식으로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었다.

 

외부출입이 철저히 차단되고 철창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9평방미터밖에 안 되는 월세 집에서 혼자 고립당하다 보니 꼭 마치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기분이었고 그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지겨운지는 나이 60을 먹고 처음 느꼈다.

 

나는 매일 잠에서 깨면 눈이 아플 정도로 TV을 보고, 피곤하면 자다가 또 TV을 보면서 외롭고 고독한, 지루한 나날을 보냈다. 그 하루하루가 1년 맞잡이로 길게 느껴졌다.

 

자가격리를 시작 이튿날, 영통구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오전에 코로나19검사가 예정되었고 10시에 보건소차가 나를 데리러 온단다. 밖에 나오면 안 되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밖으로 나오란다. 정각 10시가 되니 핸드폰이 울린다. 보건소 차가 집 앞에 도착했으니 밖으로 나오란다.

 

나는 그 차를 타고 영통구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검사결과는 이튿날에 나온다고 한다. 나는 또 보건소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 이튿날 영통구 보건소에서 내 핸드폰에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검사결과 음성판정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불행 중 다행이라 한시름 덜게 되었다.

 

그 후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영통구 보건소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가격리장소를 이탈했는지 확인하는 확인전화가 이어지고, 매일 오전9시에서 10시 사이,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에 반드시 체온을 측정하고 기침과 발열, 호흡기증상 등 상세하게 체크해서 메시지로 영통구 보건소에 보내야 한다.

 

어떤 날에는 까먹고 제시간에 체크를 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때면 보건소에서 바로 독촉메시지나 전화가 걸려와 즉시 체크해서 보내야 한다. 말 그대로 그 무슨 큰 범죄를 지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기분이다. 그러나 별수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코로나의 전염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방역당국의 안전수칙과 생활수칙, 행동수칙을 지키는 것은 마땅한 도리다.

 

드디어 9월 18일 낮 12시까지 14일간의 자가격리가 끝났다.

 

TV에서 죄수들이 몇 년 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여 자유와 해방을 받은 것처럼 나는 14일간 아니, 몇 십 년을 내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바위돌이 없어진 것 같아 하늘을 날듯이 기쁘고 마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한달음에 내가 전에 자주 찾던 단골집인 족발집을 찾아가 족발 한 접시를 주문하고 그동안 그렇게도 마시고 싶었던 소주 2병을 게눈감추듯 먹어 치우고 재래시장에 들러 삼겹살과 여러가지 내가 즐겨 먹는 싱싱한 채소들을 한 아름 사들고 활개를 치며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나는 이번 자가격리를 겪으면서 사람은 절대로 죄를 짓지 말고 정직하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리를 체득하게 되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사회와 이웃에 유익한 일을 하다 살아도 너무나 짧은 인생인데 강간, 성폭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또는 탐오, 뇌물수수, 마약과 사이버범죄, 등등 여러가지 범죄를 저질러 몇 년 지어 몇 십 년을 차디찬 철창 속에 갇혀 젊으나 젊은 청춘과 인생을 모두 잃고 평생 검은 낙인이 찍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지나온 인생보다 더 열심히 충실하게 살면서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그 어떠한 범죄도 절대로 짓지 않고 정직하게 바르게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받아보니 지난해 내가 일하던 오야지(팀장)한테 걸려온 전화였는데 어느 날에 자가격리가 끝나는가 묻는다. 오늘 낮 12시에 자가격리가 끝났다고 하니 나보다 제 쪽에서 더 좋아하면서 내일이라도 당장 일하러 나오란다. 나는 ok 하고 흔쾌히 승낙하고 내일 일할 때 입을 작업복을 사러 다시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내일부터 구슬땀을 동이로 흘리면서 뼈마디가 와작와작 소리날정도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것이다.

 

시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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