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지구촌을 곤경에 빠뜨린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가 신음하고 있을 때 나는 지금 중국 장춘 모 호텔에서 14일간의 집중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날마다 통제된 구역에서 하루 세끼 방역복을 입은 사무일군들이 문 앞 걸상에 놓고 간 밥을 가져다 먹고 빈 그릇을 걸상위에 도로 놓는다. 자유출입이 제한된 호텔방에서 나는 자유자재로 넓은 침대에 대자로 누워 핸드폰도 보고 텔레비도 보고 구수한 음악도 감상하고 때때로 책상에 마주 앉아 책도 보고 글도 쓴다. 그야말로 바삐 달려온 나의 삶에서 이렇게 한가한 날도 없었으리라. 지금 나는 이 행복한 고독을 향수하고 즐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온 하루 혼자서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마음은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행복이란 누구나 생각할 나름이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생활을 리드해간다면 순간순간 행복은 슬며시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작고 작은 행복이 쌓이다보면 하루가 행복해지고 인생이 즐거움으로 넘쳐날 것이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함이고, 타인의 건강을 위함이며 더 나아가 나라의 안전을 위함이라고 생각하니 이것 역시 나의 인생에서 겪어야할 하나의 에피소드이고 장래 한 폭의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철통같은 감옥 아닌 감옥 같은 격리 속에서 나는 구경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우선 우리나라의 적시적인 격리 조치에 탄복해야만 했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제일 많은 중국에서 빠른 시간 내에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당국의 올바른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最美逆行者”는 이번 코로나19 방역전쟁에서 우리나라의 영명한 결단성과 수많은 의료일군과 자원봉사자들의 용감한 자기희생 정신을 반영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나라와 인민의 생명 안전을 구하는 눈물겨운 사적을 반영한 생동한 영화이다. 그야말로 총소리 없는 간고한 전투에서 그들은 진정한 중화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는 영웅적인 본색을 보여주었다.
하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자신의 생명 안전을 굳건히 보호 할 수 있었고 나라의 경제는 혼란 속에서 올바른 위치를 찾아 승승장구로 발전하는 궤도에 서게 되였다.
온 지구촌이 중국을 주목하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때 나는 위대한 조국의 번영창성과 인민들의 행복한 모습을 눈앞에 그려본다.
그 다음으로 추석과 국경절이 겹치는 이때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와 동생을 몹시 그리게 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는 아버지가 내 인생의 최고였으며 아버지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등전문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잠 태질이 심한 딸이 2층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라 직접 학교에 와서 침대 옆에 널판자 하나를 더 껴 얹어 놓아주면서 밤에는 벽 쪽으로 꼭 붙어서 자라고 신신 당부하였다.
내가 2년 기숙사 생활하는 동안 아버지는 항상 엄마가 정성껏 해주는 맛 나는 음식을 가득 가지고 와서 침실 친구들과 나누어 먹게 하였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는 우리학교 초빙교학을 맡았는데 어찌도 차근차근 학생들에게 강의를 잘 했는지 지금도 친구들은 아버지의 강의에 극찬을 보내면서 자주 외우곤 한다. 덕분에 나도 어깨가 으쓱 올라 갔구.
아버지는 생활상에서 나의 든든한 지원자였으며 정신상에서는 나의 훌륭한 계몽선생이었으며 사업상에서는 깐깐하고 세심한 재무업계의 선배였다. 그야말로 아버지는 나의 성장과정에서 등대와 같은 존재로 앞길을 밝혀주고 인도해주는 고마운 분이였다. 지금 이 시각 나는 태산같이 믿어오던 아버지한테 못 다한 효도로 가슴은 찢어지고 아려난다.
매번 집에 갔다 올 때마다 동구 밖까지 나와 내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측은하여 가던 길 다시 되돌아와 아버지를 한번 꼭 안아보고서야 떠났던 그때가 무지무지하게 그립다!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이 순간, 나는 저 멀리 떠나가는 가을 구름을 잡아 타고 보고 싶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 그동안 잘 계셨죠? 제가 아버지께서 제일 반가워하는 소주와 오겹살 찜을 가져 왔어요. 불효의 두 눈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 너무 너무 보고 싶어 가슴이 시리고 목이 메여온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편안히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아버지, 동생도 함께 잘 있죠? 비록 동생이라지만 너무 빨리 셈이 들어 오빠처럼 느껴지던 사랑하는 남동생 역시 많이 보고 싶구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엄마가 동생한테 겨울 솜옷 한 벌 해주려면 항상 자기는 누나 입던 꽃 뿌리 겨울 옷을 고쳐 입고 누나 한테 새 옷을 지어 주란다. 그리고 집에서 더럽고 힘든 일 있으면 자기가 앞서서 하고 누나는 저만큼에서 하는 걸 그저 보란다. 내가 친구 담보를 잘못 서서 힘든 나날을 보낼 때 동생은 두말없이 함께 도와 나섰다.
어느 캄캄한 초가을 밤, 동생과 나는 그 친구를 찾아서 떠났는데 허허 벌판에서 그만 차가 길옆 도랑에 깊숙이 빠져 나오지 못했다. 나는 동생을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속상했지만 동생은 원망한마디 없이 저 멀리 깜빡깜빡 희미한 빛이 보이는 마을로 뛰어가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안간힘을 써서야 겨우 차를 빼고 집으로 돌아 왔다. 때는 이미 새벽 2시를 가리켰다. 이렇듯 동생은 항상 모든 일에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누나를 더 많이 사랑하고 배려해주는 아름다운 심성의 가졌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이었다.
오늘따라 사랑하는 네가 너무 보고 싶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싶단다.
고맙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혈육을 떠나 보낸 슬픔, 세월이 저 만큼 흘러간 오늘 나는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후회되지 않는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 번째로는 30여 년 동안 은행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떠올려 본다.
사회생활이란 인생의 큰 바다에서 잠간 스치고 지나간 인연이던 오래했던 깊은 인연이었던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었다.
함께 일하면서 자그마한 일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간 지금 그것 역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구나.
친구들아, 미안하다. 그때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이해심이 약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지금 너희들을 많이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있단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난 정말 잠들어 깨우지 못했던 인생을 고독 속에서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반짝반짝 눈부신 고운햇볕은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조각조각 흩어지는 별빛은 깊어가는 밤하늘 은하수로 성을 쌓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내 몫인 인생을 되새김질 한다.
나는 황금빛이 출렁이는 가을 향기를 느끼면서 고독과 함께 행복을 누린다. 이제 내 삶에 이런 철통같은 격리는 또 찾아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의 즐거운 격리생활에 슬기로운 도장을 찍으면서 생기가 넘칠 내일을 꿈꾼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하다!
/남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