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삶을 한번 베껴 써봤다. 그게 시가 되였다. 내 삶의 전체를 구겨 넣어 봤다. 그것도 시가 되였다. 절경은 시가 되지만 슴슴하다. 사람 냄새가 배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세상을 보는게 시다. 상처가 조개속의 진주를 키우듯 삶의 손톱 자국, 어느 순간의 감동이 시가 된다. 시는 "지적 근육"을 키우는 수단으로도 될 것이다.
시란 전적으로 무의식 속에서 우연히 솟구쳐 나오는 산물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를 시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시를 쓰는 삶이 시를 읽지 않고 사는 삶 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다는 것이다.
시 쓰기를 통하여 직관력을 훈련하고 통찰력과 투시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지에서 깨여나는 기쁨을 주고 정신적인 수련을 통하여 자신을 보다 자유롭게 하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시 한편은 사물의 존재 핵심을 성찰하고 그 진실과 마주치는 고통과 인고의 순간을 미적 쾌감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안에는 나의 얼굴도 있고 나의 마음도 있다. 나란 존재가 무엇이며 어데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려 주는 것이 시다. 시를 통해 현재 내 삶을 스스로 들여다 본다. 이 순간도 시를 쓰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시를 쓰는 것은 마음과의 대화 일 것이다. 솔직한 고백을 하면서 마음에 묻은 때를 씻어 내고 싶다. 마음이 맑고 투명해지고 깨끗해 질 때 내가 쓰는 시는 리듬, 운률, 어조에 조화가 생기고 금방 피어나는 진달래처럼 향기를 풍기는 시어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시는 내란 나무에 가지가 생겨 솟아나고 잎도 나고 꽃도 피고 열매 맺는 좋은 일들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 가지도 부러지고 철 이르게 잎이 떨어지고 잘리고 생채기도 생기는 게 다반사다. 참고 견디며 갈고 닦으며 인고의 세월 속에 새로운 시의 꿈 나무를 키워내는 게 나의 소명일 것이다.
거짓되지 않고 허황되지 않은 내 삶의 자세를 이 시간 교정해 본다. 시를 쓴다는 것은 때 묻지 않고 얼룩과 오물들을 씻어내고 미세 먼지가 배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지게 할 것이다. 내 인생의 발자취 소리를 들으며 과연 내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를 들여다 보게 한다. 시를 쓰며 나를 본다는 얘기다.
시를 쓰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독자들과 소통이 없고 공감이 없는 글 쓰기는 자아만족일 뿐이다. 미사려구를 많이 엮어 글을 잘 썼다는 평판과 엄지 척을 받기보다 글에서 소박한 인생과 삶의 철학을 볼 수 있고 꽃과 풀 향기가 풍겨오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진정 독자들이 폐부로 느끼게 할 수 있는 감동의 글, ''바로 이거야''하며 무릎을 칠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나의 사명이고 숙명임을 다시 한번 가슴으로 느껴 본다.
글 쓰는 자의 허세로서 자신을 과시하려 하는 과시욕은 금물이다. 글은 반드시 독자들의 칭찬을 받아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즐겁고 진실을 표명하는 작업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자아를 안으로 크고도 깊이 성장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의 좋은 시는 파란 만장한 인생에서 얻어내는 깨달음의 열매이다.
글을 쓰면서 허황한 겉치레와 수식어는 피하고 싶다. 너무 과장된 것은 고무 풍선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얼굴 치장을 하지 않은 자연산 얼굴도 좋다는 얘기다. 나의 온갖 부끄러움 ,추함, 비겁함, 미움, 질투, 거짓, 교만 등등을 씻어 낼 수 있는 게 지금 이 시각 시를 쓰는 순간이다.
시 앞에선 나는 항시 겸손하고 참회하며 정직한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내일도 계속 쓸 것이다.
/김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