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6세인 손희수는 왕청현 쌍하소학교의 퇴직교원이다.
퇴직 후 그는 엄중한 위병으로 고생하면서도 30여 년 동안 드높은 열정으로 자신의 모든 심혈을 후대관심 사업에 몰 부어왔다.
대흥구진에는 30여개 촌이 있는데 왕청현에서 중소학교가 제일 많은 향진이다. 손희수는 자전거를 타고 경상적으로 학교와 촌에 심입해 학생들의 사상도덕정황을 요해하고 빈곤가정 자녀들의 학습가운데서 부딪친 문제를 제때에 해결해주었다.
대흥구진제1소학교의 안봉화 학생은 두 눈이 실명된 어머니와 함께 살다보니 생활이 어려워 실학에 직면하게 되였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손희수는 안봉화학생의 모든 학습비용을 담당해 나섰다. 그리고 봉화가 그림그리기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그림 그리는 참고서와 도화지, 색연필을 사다주었다.
또 대흥구진제2소학교 1학년의 김대웅 학생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가출하고 지력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다보니 먹는 것마저 큰 문제였다. 어린 대웅이는 매일 배고파 쓰레기무지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대웅이에게 양호한 생활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손희수는 대웅이를 자기 집에 데려다 의식주문제를 해결해주었고 학습지도까지 해주었다. 김대웅의 안타까운 사정은 신문매체를 통해 연길시후대관심사업위원회의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지지와 협조 하에 대웅이는 다행스럽게 연길시 ‘사랑의 집’에서 학습하고 생활하게 되였다. 손희수는 주동적으로 대웅이의 대리부모로 나서서 경상적으로 연길시 《사랑의 집》과 대웅이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에 찾아가 그의 학습과 생활을 관심하고 있다. 그제 날에 오갈 곳 없어 거리에서 헤매던 대웅이가 지금은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생활하는 것을 보는 손희수의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다.
이렇게 30여년이 지났다. 그는 그 동안 빈곤학생을 얼마나 도와주었는지 그 자신도 헤아리기 어려울정도이다. 손희수의 사적이 신문에 보도되자 그의 도움을 바라고 찾아오는 빈곤학생들의 학부모가 많아졌다. 대흥구진은 물론 다른 향, 진에서 그를 찾아와도 그는 한 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다. 손희수와 아내의 생활래원은 그의 로임뿐이지만 매달 병치료에 쓰고 남는 돈으로 빈곤학생을 돕는 일만은 중단하지 않았다.
손희수는 미성년들을 생활상에서만 돌본 것이 아니라 사상도덕교양에도 큰 중시를 돌렸다. 그는 주동적으로 각 중소학교의 법제부교장을 맡고 왕청현정법후대관심사업 상무부주임 최룡섭을 모시고 법률지식강좌, 법률지식경연, 자녀교양경험교류회 등 형식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법제교양을 진행하였다. 그는 또 경상적으로 pc방 업주들을 찾아가 미성년보호법에 대한 법률법규를 선전함으로써 미성년들이 이런 장소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한데서 손희수가 후대관심사업을 맡은 30여 년간 대흥구진에서는 미성년범죄사건이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3년전에 손희수는 이미 자녀들을 따라 왕청으로 이사해왔지만 그는 매일 30리나 되는 대흥구와 왕청을 오가면서 대흥구진후대관심협회의 사업을 왕청현은 물론 연변주와 전국의 전형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손희수는 ‘신체가 허락될 때까지 자신의 모든 사랑을 후대관심사업에 이바지하겠다.’며 오늘도 신세대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리강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