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은 정녕 신비의 힘을 가졌다.
무색채 수목화의 상태로 긴-긴 잠을 자고 있는 겨울을 찬란한 생명의 꽃등으로 부활시키는 요술을 지녔다.
아직도 쌀쌀한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몸에 닭살이 돋지만 자연은 벌써 봄으로 바야흐로 무르익고 있다. 온갖 생명들이 양지에 푸름을 색칠하자 음지의 생명들도 뒤질 세라 푸름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엄동의 혹한에 죽은 것 같은 나무 가지는 앙증맞게 부지런히 수액을 올리기에 사력을 다 한다.
봄은 크고 높은 산봉우리에서부터 바위틈에 붙어사는 이끼, 양지와 음달에 까지 대지의 모든 생명들에게 푸름과 꿈과 사랑으로, 저마다의 생명에 정성을 다해 소생하게 부추기고 힘주고 그리고 성취시켜주는 기적의 힘을 준다.
내 어렸을 적의 봄은 10리길까지 뻗친 봄 아지랑이가 나를 손짓으로 불러냈다.
봄 길을 따라가며 푸른 머리 빗겨 날리는 보리밭 길을 달리거나, 혹은 처녀들의 긴 머리채처럼 출렁이는 시내가 수양버들을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숨이 차오르고 얼굴에, 목덜미에 느껴지는 봄의 감촉, 그것은 절대로 숨결, 또는 그 무엇이라고 느껴졌다.
그것은 신의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계절이 바로 봄이라고, 긴긴 겨울의 죽음에서 또는 깊은 잠에서 침묵하고 있는 모든 만물에 새로운 생명을 주입시켜주고 소생하게 하고 부활시켜 살아나게 하는 것은 다른 계절이 아니고 오직 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고 신비일 것이다.
그래서 봄에는 산이 자란다. 언덕은 자라서 작은 산이 되고 작은 산은 큰 뫼산으로 자란다. 큰 나무는 더 크려고 자라고 작은 나무는 큰 나무를 따라잡으려고 발버둥 치며 자란다. 구부러진 나무는 구부러진 대로, 양지쪽의 나무는 양지쪽에서, 음지쪽의 나무는 그냥 음지쪽에서 환경과 지형과 기후와 무관하게 저마다 기력과 사력을 다해 하늘을 찌를 듯한 당당한 기세로 자란다.
봄이면 강이 자란다. 조리졸 조리졸 미약한 도레미 소리를 내는 시내물이 강물이 되고 강물은 자라느라고 바다로 달려가고 있다. 시내물이 자라지 않으면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메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강물도 자라지 않으면 여름 가뭄에 강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닥이 드러날 것이고 강이 품고 있었던 물고기를 비롯한 모든 생명들도 사라질 것이다.
봄이면 들이 자란다. 하늘이 끌어주고 땅이 밀어주어 모든 생명이 새싹을 내밀고 그 싹이 조금씩 자라 어느 날엔 숲을 만들어 간다. 천만가지 꽃들이 앞 다투어 피고 저마다 자기의 자색을 뽐내고 향기를 발산하면 꿀벌들이 날아와 붕붕 노래를 부르면 나비들이 찾아와 춤을 추어 들을 더 멋진 극락의 연회장으로 만들고 달빛이 쏟아지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면 푸른 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그렇다. 봄이면 산이 자라고 강이 자라고 들이 자란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들도 산처럼 강처럼 들처럼 자라야 한다. 늘 오늘도 어제의 나, 내일에도 오늘의 나인 낡은 관념의 삶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산이 자라고 강이 자라고 들이 자라듯 새로운 마음과 사유, 올바른 생활 습관과 행동으로 거듭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산과 강과 들 앞에서 너무도 작은 자기를 발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먼지처럼 쌓여가는 허상과 허욕이란 삶의 찌꺼기를 시시때때로 걸러내어 불평과 불만에서 만족과 감사로, 실망과 좌절에서 새로운 꿈과 희망으로, 이웃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 보다 항상 내 마음과 사랑을 이웃에 먼저 베푸는 데서 무한한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인성 있는 삶을 살면서 갈수록 각박해지고 메말라 가는 우리의 삶에 한겨울에도 끊임없이 하얀 모래알을 일구며 퐁퐁 솟아나는 샘물과도 같은 삶, 오늘의 나가 어제의 나가 아닌 진정으로 나다운 삶 , '오늘 하루가 내 생의 최후'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이 봄부터 산이 자라 뫼산이 되고 강이 자라 바다가 되고 들이 자라 숲을 이루듯 자라게 하자.
/수원시 허 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