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공연한 오해를 할까봐 먼저 해명을 해야겠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해서 교수나 박사가 된 것도 아니고 돈을 억대로 벌어놓은 부자도 아니고 “장”자가 붙은 직위가 높은 영도도 아니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유명한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잡초와 같은 극히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
얼마 전 흑룡강성교육학원에서 조직하고 한국경기도교육청에서 담당하여 진행한 2박 3일의 심리건강연수에 참가하는 행운을 지니게 되였다.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는 수업 중에 담당선생님은 인쇄지 한 장씩 나누어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나름대로 연령단계에 따라 “생애 그라프”를 그리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나온 삶을 잠간 돌이켜보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연령을 단계로 행복감과 불행감을 절선도표로 인생그라프를 그려보기는 난생처음이다.
우리 모둠에 모두 6명이였는데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인생그라프를 그렸다. 그린 그라프는 어느 누구의 것이나 하나같이 굴곡이 심하고 낙차도 컸다.
한 5분간 그린 다음은 자신의 인생그라프를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모두 초면이지만 같은 교원이라는 동질감이 친근하게 다가와 누구나 자신의 지금까지 살아온 행복했던 이야기와 아프고 불행했던 이야기를 너무나 솔직하게 서슴없이 터놓았다. 사실 자신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꺼내 보이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둠의 성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아프고 불행했던 이야기를 옛 친구에게 속 풀이를 하듯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하나같이 눈굽을 훔쳤다. 나만 불행하고 내가 제일 불행했었다는 착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시간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척집을 떠돌며 갖은 마음 고생을 하며 동년을 보냈고 결혼을 한 후 설상가상으로 자식까지 앞세운 A선생님, 일찍 아버지를 잃고 힘든 동년을 보낸 B선생님, 부모님의 출국으로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조부모님의 슬하에서 그리움에 찌들고 하나뿐인 동생의 요절로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온 C선생님, 몇 년을 암과 사투를 벌이며 힘든 시간을 이겨온 D선생님… 그 누구하나 아프지 않았던 사람은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수차 죽음까지 떠올렸다가 죽을 용기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살붙이를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버텨온 죽기보다 힘들었던 그 세월의 아픔을 난 이젠 눈물 한 방울 없이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꺼내 보일 수 있었다. 아마 매 사람에게 닥치는 부동한 고난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생열차를 탑승하는 탑승권인 것 같다. 그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에게만 그 탑승권이 차례지고 탑승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열차에서 하차하게 되는 것이니까.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가 떠오른다. 버드나무 방천이 있는데 커다란 나무가 두 그루 나란히 서있었다. 한 농부가 소를 비끌어매기 위해 나무 한그루에 쇠줄을 칭칭 동여 놓았다. 소가 이리저리 오가며 풀을 뜯을 때마다 나무는 껍질이 벗겨지고 몸을 파고드는 아픔을 이를 악물고 감내해야 했다. 그때마다 그 옆에서 아무 고통 없이 하늘로 손을 뻗는 나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 잎이 노랗게 말라드는 전염병이 돌았다. 그 병으로 그렇게 무성하게 잘 자라던 나무들이 다 말라죽고 말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유독 쇠사슬을 감고 온갖 아픔에 시달리던 나무만은 무탈하게 잘 버텨냈다. 워낙 쇠사슬이 나무 살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그 나무는 많은 철분을 섭취하게 되였는데 그 철분이 나무의 저항력을 높여주어 전염병을 이겨낸 것 이였다. 쇠사슬이 파고드는 아픔이 없었더라면 이 나무의 운명도 다른 나무와 꼭 같았을 것이다.
가난한 시골 태생에 학교 문을 나서서 다시 학교 문으로 들어와 한평생 학교와 인연을 맺은 내 인생이다. 단지 학생으로부터 교원으로 배역이 바뀌었을 따름이다. 남들처럼 눈치가 빠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수완이 바삭한 것도 아니고 단지 구슬땀 흘려 노력하고 애쓰는 것만큼 성과가 나오고 세상 사람들이 긍정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살아왔다. 너무나 바보처럼 순진한 마음 때문에 이 세상에 놀라고 상처받을 때도 많았고 억울하고 어이없어 혼자서 펑펑 눈물을 쏟은 적도 많다. 그리고 개미처럼 작게 느껴지는 서글픔과 속수무책에 이 세상을 저주하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한탄하며 피고름 같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 앞에서 혼자서 흘린 눈물이 작은 개울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나면 그래도 다시 그 정열과 의욕으로 내가 해야 할일과 그 이상의 일들을 묵묵히 해왔다.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끈질긴 내 성품이 제일 마음에 든다.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이란 어떤 것을 가졌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가지기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과 시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나의 신조는 변함이 없다.
궁궐같이 호화스럽지는 않아도 비바람을 막을 수 있고 몸과 마음을 쉬여갈 수 있는 아담한 보금자리가 있고 산해진미는 아니더라도 배를 곯지 않고 매일 먹을 수 있는 소박한 음식이 있으며 매일 수정같이 맑은 눈동자와 마주하며 교감할 수 있고 가장 순수한 학생들의 사랑을 받으며 내 안의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스럽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도 지나 반백의 세월이 훌쩍 지났어도 아침을 여는 커피 향에 달콤한 미소가 일렁이고 파랗게 열린 하늘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해살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면 그것은 정녕 행복하다는 가장 진실한 표징일 것이다.
매일 개인 날일 수 없듯이 굴곡이 없고 아픔이 없는 인생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인생은 무상하다. 주어진 나의 삶은 아직도 36색으로 아롱질 것이다. 설사 내 앞길을 험난한 가시밭길이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슈퍼맨마냥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것이다. 시련과 고난으로 자신을 담금질하면서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로 오늘을 수놓아가고 싶다.
“참 잘했어!” 지금까지 오뚜기처럼 넘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며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나 자신에게 격려와 칭찬을 보낸다. 해님은 자신을 활활 태워가며 어둠을 밝히고 수탉은 “꼬끼오-”청아한 쏘프라노로 아침을 연다. 동산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살아있음은 참으로 아름다운것이라고 혼자 말을 한다.
그리고 오늘도 피눈물을 씹어 삼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목단강 한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