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한국인인 아빠와 결혼해서 낳은 애다. 그런데 내가 네 살 되던 해에 아빠의 불찰로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 한다. 홀로 나를 키우면서 회사에 다니는 엄마를 돕기 위해 외할머니께서 한국에 가시여 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손군을 무척 고와하시는 할머니는 내가 불쌍하다고 더구나 모든 사랑을 나한테 몰 부으셨다.
나는 매일 외할머니 손에서 곱게 자라면서 밝은 소녀로 커가고 있었다.
내가 7살 되던 해에 외할머니께서 엄마보고 말씀했다.
“나도 인제는 중국에 가야하는데 지은이를 누구 돌보지? 지은이도 인제는 학교 갈 나이인데 차라리 내가 중국으로 데려다가 공부시키는 게 어때?’
엄마가 나보고 외할머니 따라 중국으로 가라고 할 때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외할머니께서 아무리 날 고와하고 사랑해도 엄마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그동안 금이야옥이야 하며 날 키워주신 외할머니와도 갈라지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엉엉 울면서 외할머니보고 중국에 가지 말고 그냥 한국에서 엄마랑 함께 살자고 했다.
나의 슬픈 울음에 외할머니도 엄마도 다 눈 굽을 찍으셨다. 조금 후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생각 같아서는 너를 다 키워놓고 중국에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난 가야해. 지은아. 나 따라 중국에 가서 살자”
외할머니께서 어떤 좋은 말을 하셔도 난 엄마와 갈라지기 싫어서 떼를 써 봤지만 나중에는 중국에 오는 선택을 하게 되였다. 그 선택이 너무 힘들었고 너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창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려야 할 나이에 나는 엄마를 떠나 산 설고 물 선 안도란 땅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 나는 밤마다 이불속에서 엄마 생각을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금방 와서 애들 사이에 오가는 유창한 중국말에 나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눈치살이만 했다. 그리고 중국어시험점수는 늘 낮았다. 그렇다고 중국어를 잘하는 애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내가 이 지구상의 그 어디로 가나 가장 잘 배워야 하는 것은 그래도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급에서 난 어문과 수학은 아주 잘하지만 중국어수준이 제일 낮아 총 점수를 따지면 앞자리에 들지 못한다.
“지은아. 네가 중국어공부에 더 노력해봐. 그러면 반급에서 일등이야”
친구들이 이렇게 말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중국말만 하기 좋아하는 애들보다 우리말을 잘하는 내가 스스로도 대단하게 느껴지면서 마음이 늘 뿌듯해난다. 중국어는 내 의사를 전달만 할 수 있으면 되지만 우리말 우리글은 막힘이 없어야 한다는 그런 이념이 마음속에 자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지나자 나의 중국말 수준이 올라갔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조선족 애들이 그냥 중국말만 하는걸 보면 밉더라. 네가 나하고 중국말만 하면 밤늦게까지 못 자게 할 테야.”
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늦잠이 무섭다.
할머니께서 이렇게 우리말을 중시하셨기에 나는 다른 애들처럼 입만 열면 중국어가 쏟아져 나오는 애가 되지 않았다.
작문 반에 가면 많은 애들이 중국어로 대화를 해서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또한 작문을 쓸 때도 우리말을 몰라서 자주 묻군 하는데 나한테는 그런 일들이 없다. 우리말 공부에서 난 애들의 “선생”이 될 때도 있었다. 중국어에 능란한 애들은 우리말 작문을 쓸 때면 많은 명사나 구절을 중국어는 아는데 우리말로 할 줄 몰라서 나한테 묻군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척척 대답해준다.
나는 학교에서 중국어시간에만 한어 말을 할뿐 그 어떤 장소에 가든 우리말을 한다. 중국어도 아주 세련되게 할 수 있지만 우리말은 마디마디마다 아름답고 빛난다. 부드럽고 표현이 다분한 우리글을 읽을 때면 세종대왕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우리글 잘 쓴다고 담임선생님은 늘 우리글 경색이 있으면 날 보내주시는데 그러면 난 척척 잘도 입상하여 늘 개선장군이 된다.
내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은 할머니한테 감사를 드려야할 것 같다.
독서를 무척 즐기는 외할머니는 다른 데는 돈을 몹시 아끼지만 책 사는 데는 돈을 안 아끼신다. 그래서 시내에 나가시면 책을 사가지고 들어오실 때가 많다. 때론 불룩한 가방을 들고 오시는데 열고 보면 책들뿐이다.
“아이구,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새우깡이랑 안 사셨군요.”
내가 실망하는 걸 본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책만 손에 쥐여봐라. 그까짓 새우깡이겠다. 책안에 세상이 쓰여 있단다.”
처음에 나는 책 보기 싫었지만 외할머니가 먼저 책을 드시면서 나한테 눈치주시는 터에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곤 했다. 그것이 이젠 습관이 되여 하루라도 책 안 보면 무엇을 잃은듯하다.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한국에 가신다. 그러면 나는 아빠를 만난다. 처음엔 아빠는 내가 중국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줄 아셨다가 나의 유창한 우리말에 미소를 지으셨다.
아빠와 만나는 날은 즐거웠다. 아빠는 그동안 나에게 못 다 해준 사랑을 주시느라고 무등 애를 쓰셨다. 내가 좋아하는 책도 사주시고 내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해주시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그럴 때 마다 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짐을 느낀다.
때론 내가 아빠의 빈자리로 해서 우울해하는 표정을 지으면 외할머니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기라도 하듯 나의 손을 꼭 잡고는 이렇게 위안해 주곤 하셨다.
“지은아, 넌 그 어떤 불행이 닥쳐도 눈물 흘리지 말아. 넌 자신을 행복하다고 생각해라.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있고 비록 너의 곁에는 없지만 그러나 아빠도 널 얼마나 사랑한다구 그래? 외로울 때나 속상할 때면 책을 손에 들어봐. 모든 번뇌가 사라진단다.”. "
지금 나는 밝은 아이로, 꿈 많은 아이로 성장했고 홀로서기도 배우게 되여 수확이 아주 크다. 여기에는 외할머니의 고심한 노력이 깃들어있다.
그래서 오늘도 외친다.
외할머니 최고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