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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전에 찾아오는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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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0-07-03 20:26 조회1,418회 댓글0건

본문


“똑똑 “

 

누군가 문을 노크한다.

 

작문선생이 문 열어보니 죄꼬만 동그란 얼굴이 나타났다. 미령이였다.

 

“아니. 너 몇시인데 벌써 왔니?”

 

작문선생의 말에는 불만이 서려있었다. 그도그럴 것이 오후 한시에 보는 작문수업인데 미령이는 오전 열시에 왔으니 말이다.

 

작문선생은 몇년전부터 주말이면 집에서 작문수업을 하고 있는데 두달전에 소학교 3학년에 다니는 미령이가 할아버지와 같이 찾아왔다.

 

“이 애가 네살 때 엄마 아버지가 리혼한 후로 원래는 엄마와 몇년간 살았는데 재작년에 애 엄마가 한국에 가게 되니까 농촌에서 살던 내가 지금 이 애를 돌보러 여기로 오게되였다우. 애 외할머니만 있어도 괜찮겠는데 사망한지도 몇년이 됩니다. 애가 마음이 좀 여린데 많이 부탁합니다.”

 

미령이 외할아버지는 등이 바나나처럼 휘여져 있었고 년세도 칠십이 넘어 돼 보였다.

 

미령이는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것이 많았고 작문도 쟁쟁하게 잘도 썼다. 그래서 옥실이는 미령이가 장래 작가감이라고 점찍고 있었다.

 

미령이는 키는 보통이였지만 몸은 약한 편이였다. 얼굴에 살점이 없어서 길어보이긴했지만 오돌차게 생겼다.

 

작문을 쓸 때면 이따금씩 멍하고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물쩍한 구상을 하고있는듯한 모습이였다. 그런데 어떤 때는 눈에 눈물이 핑 도는것을 몇번이나 보아온 옥실이였다. 타국에 있는 엄마가 그리워서인지 아니면 작문의 그 어떤 애잔하고 가슴허비는 구절에 빠져서인지 작문선생님은 정확히는 예측치 못했지만 그러나 또 구태여 묻고싶지 않았다.

 

매번 작문날이면 미령이가 제일 일찍 왔다. 그것은 좋은 표현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 오는것이 작문선생한테는 싫었다. 반시간 정도로 일찍 오는건 좋은데 때론 두시간 먼저 오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한번은 오후 한시에 보는 수업인데 오전 열한시에 오기까지 했다.

 

그날 작문선생은 그 시간에 시내로 가야 했는데 미령이 때문에 못 가게 되였다.

 

그런데 오늘은 더구나 일찍 왔다.

 

(애두 참. 시계나 보구 다니는지?)

 

작문선생은 조금은 못 마땅한 눈길로 미령이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였다. 이 시간에 작문선생은 원래 먼저 쇼핑하고 점심시간에 생일 쇠는 친구와 식사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작문선생의 불만이 조금 섞인 말과 눈에서 그것을 보아냈는지 미령이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는 모기소리로 대답했다.

 

“할아버지와 같이 있으면 재미없슴다.”

 

“할아버지와 재미없다고 여기로 오면 재미있니? 이렇게 일찍 오지 말고 집에서 독서하다가 시간되면 올거지”

 

“독서도 선생님집에서 해야 재미있슴다.”

 

작문선생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미령이의 그 거짓이 없는 말에 귀가 달콤해났고 선생님을 그토록 좋아하는 미령이의 순진한 마음을 몰라준 것이 후회되였다. 그래서 미령이를 책상에 앉게한 후 책을 주었다. 미령이는 책을 펼쳐들었다. 방안에 비쳐 들어온 해빛이 미령이의 웃음어린 얼굴에서 춤 추고 있었다.

 

“작문시간 아직도 세시간이 지나야 되는데 너 그때까지 꼬박 세시간동안 책 봐야하는데 얼마나 지루해?”

 

“괜찮슴다. 선생님 곁에서 책 보는게 더 재미있슴다.”

 

(어휴. 내가 막 지루해나는구나. 네가 오는 바람에 내 볼일 못 보게되였구나. 참 애두 자기 생각만하고 어쩜 내 생각은 안 하지?)

 

미령이한테 짜증을 낼 수 없는 작문선생은 속으로만 이렇게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리혼으로 너무 일찍 상처받은 탓인지 미령이는 눈물이 헤펐다. 다른 애들이 조금만 눈을 부릅뜨거나 소리치면 눈물을 흘려서 어떤 애들은 “울보”란 별명도 달아주었다.

 

어느 한번은 글씨가 좀 미워서 작문선생이 몇마디 꾸짖었다고 책상에 엎드려서 한참이나 울었던 것이다. 그후부터 작문선생은 아주 조심했다.

 

시계가 벌써 열한시를 가리켰다. 이 시간이면 친구들이 식당에서 자기를 기다릴 것이다.

 

“미령아. 나 지금 밖에 나갔다 올 일이 있는데 어쩔까?”

 

“선생님 어서 가세요. 제가 집을 지킬게요”

 

책에서 눈을 뗀 미령이의 얼굴에 해님이 머물었는지 웃음이 생글거렸다.

 

“그래 내 열두시반 전에 돌아올테니까 그동안 집 잘 지켜줘”

 

옷을 주어입은 작문선생이 부랴부랴 문을 나섰다. 아래 층까지 달아서 내려간 작문선생이 문득 발걸음이 굳어졌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솟구쳤다.

 

(미령이가 날 그렇게도 좋아하는데... 내 곁이 좋아서 찾아온 애를 빈 집에 혼자 두다니?)

 

작문선생이 되돌아 집에 들어갔다.

 

“선생님 뭐 두고 가셨어요?”

 

방안에 있던 미령이가 불쑥 나오며 물었다.

 

“미령아. 어서 나하고 같이 가자구나”

 

“어디에요?”

 

“식당은 왜서요?”

 

미령이의 눈길이 선생님의 얼굴에 멈추더니 움직일 줄 모른다.

 

그러건 말건 작문선생이 미령이의 손을 이끈다.

 

선생님을 따라나서서 걷는 미령이는 발 걸음이 어느 정도로 가벼운지 어느새 저만큼 앞에서 걷고 있었다.

 

조금후 식당에 도착하니 친구들 다 왔었다. 모두들 이상한 눈길로 미령이를 쳐다본다.

 

딸이라면 딸도 아니고 손녀라면 손녀도 아니란걸 친구들은 다 알고 있다.

 

“내 작문반에 양 딸이 생겼어. 꽤나 여무지게 생겼지?”

 

이어 향기가 몰몰 피여오르는 요리들이 상에 올랐다.

 

미령이는 벌써부터 군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눈에는 만풍년이였다.

 

식사가 시작되자 작문선생이 련속 부절이 집어주는 고기요리를 볼이 미여지게 먹는 미령이를 쳐다보는 작문선생의 눈에서 이슬이 자꾸만 반짝댔다.

 

평소에 례절이 꽤나 밝은 미령이는 간식을 보면 선생님 입에부터 넣어주는데 그날 미령이는 선생님이 먹지않고 자기만 지켜보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마디 권할 줄 모르고 제 입에만 넣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선생님은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한창 발육할 나이건만 늙은 외할아버지한테서 여지껏 이런 맛나는 요리를 못 먹어보았을 것이라는 짐작 갔다. 그러면서 어느 때 미령이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령이 외할아버지는 다른 요리를 할 줄 몰라서인지 매일마다 닭알요리만 만든단다. 그렇게도 먹기 싫었지만 그래도 먹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전번 달에 자기 생일날이 되자 외할아버지 보고 식당에 가자고 졸랐는데 외할아버지는 듣는 체도 않고 집에서 또 그 먹기싫은 닭알요리 하나만 했단다.

 

그날 밥상에 앉은 미령이의 눈앞에는 그토록 먹고 싶은 돼지고기 튀우개가 자꾸 얼른거려서 밥을 몇 숟가락만 먹고는 일어섰다. 다른 애들보다 좀 일찍이 헴이 든 미령이는 외할아버지의 고충을 알고 있는듯 했다. 외할아버지는 몇년전에 걸린 뇌혈전병으로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고 머리도 아파서 늘 약을 입에 달고 있다. 때론 이런 외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도 좋았다. 인제 외할아버지께서 드러누우시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친척들이 다 한국에 가서 있을 집이 없다. 그렇다고 전탁집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고 엄마가 알려주었다.

 

(호ㅡ외할머니만 살아 계셔도 얼마나 좋을까?)

 

그 쬐꼬만 입에서 이런 탄식이 흘러나온지 한 두번이 아니였다. 부모가 한국에 가고 할머니손에서 자라는 애들을 보면 부럽기도했다.

 

깨끗하고도 이쁜 옷을 입고 쩍하면 식당에 드나드는 또래 친구들을 보노라니 정말 할머니와 함께 사는것이 더 좋을것 같았다.

 

“미령아, 이제부터 작문 배우는 날에 맛나는 음식을 만들어놓을테니까 일찍이 오거라.”

 

자기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나지막히 말하시는 작문선생을 바라보며 맛있게 먹어대는 미령이의 얼굴에는 기쁨이 쉼없이 찰랑댔다.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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