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이 며칠간 산월이는 ‘유머남자’를 만나야했다. ‘유머남자’의 의도를 더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전화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별 수 없이 그녀가 먼저 전화를 걸어서 만났다.
“웬 일이게? 산월이 요새 몹시 수척해졌군그래”
‘유머남자’의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산월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들먹였다.
“ 난 어째야 하나요? 흑…흑흑 “
“아니 왜서 이러는 거야?”
“글쎄 제가 전번에 두 번이나 밤늦게 들어갔다고 남편이 뭐라는지 아세요? 글쎄 제가 오입질한다고 자꾸 생트집을 잡아서…제가 억울해서 대들었더니 손찌검까지 하더군요. 그리고는 또 이혼하겠다 해요.”
“하. 그 양반이 왜서 그렇게 못나게 놀아? 그런 의심병은 못 고친다니까. 이 같은 아름다운 부인도 제대로 호강을 못 누리게 하면서도 제 쪽에서 큰 소리야? 차라리 갈라지라구. 그런 남자한테 일생을 낭비하는 게 아쉽거든”
미사여구에 양념 질하는 ‘유머남자’의 말이 조금은 역겨워났다
“전 그래도 아이를 봐선 그런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이 기어코 갈라지려하니 정말 별수 없어요. 이만한 나이 먹고 좋은데 재가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요? 다 자식이 있겠으니 …”
그녀는 계속 쿨쩍 거렸다.
“아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뭐가 겁나? 여사가 꺼리지 않는다면 나의 애인으로 되어주게”
“어마나 그건 무슨 말씀이죠?”
그녀가 성난 듯이 발끈했다.
“어참 여사님의 눈이 언녕 부터 나한테 신호를 보냈거든. 나한테 호감이 있다는 걸”
“제가 여태껏 제일 반대하는게 바로 이 애인이란 딱지에요. 사는게 아무리 지치더라도 애인이란 배우는 담당하기 싫거든요.”
“내가 나이가 많지만 않다면, 인제 로친이 돌아간 후 아내로 맞겠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서…참 나이가 원쑤지. 후ㅡ”
“진정 마음에 들면 나이야 무슨 상관이에요? .”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다면 후에 내 아내로 되어주겠나? 몰론 먼저 애인으로 되다가 후에…과도한 내 욕심인지는 몰라도”
‘유머남자’가 한술 뜨자 산월이는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지혜가 지금 바야흐로 익어가고 있다.
그날 저녁 그녀는 남편인 만길이를 졸랐다.
“여보 빨리 하자요”
남편의 눈이 데꾼해졌다.
“정말 제가 너무 급했군요. 이혼수속을 빨리 합시다. 그 남자를 이미 푹 삶아놓았어요 “
“인제 먼저 웃다가 나중에 울려고 그러오? 너무 머리를 뜨겁게 굴지 말고 좀 진정하오. 과거의 교훈이 잊어지지 않았겠지? 괜히 늙은 늑대의 오락물이 되지 말고 우리 이런대로 살아가기요. 차차 좋아질 거요”
남편의 말에 그녀는 흠칫했다.
아 저주롭던 그 일. 그 일을 구중천에 날려 보내려했으나 언제나 찰떡처럼 착 붙어있어 가슴을 허빌 때가 많다. 예로부터 여자의 아름다움은 재부라 했지만 또 화근이기도 했다.
그녀가 마흔세 살 되던 해의 일이다. 자그마한 도시에서 돈 많이 버는 일감이 없어서 남편이 광주로 일하러 갔다. 그때 그녀의 친구의 오빠인 명호가 그녀의 외로운 신변을 돌기 시작했다. 남편이 있는 처지라 남들의 눈이 무서워 조심하느라했지만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그만 명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처럼 마음을 모질게 먹었지만, 끝없는 명호의 공격도 이길 수 없는 것도 있겠지만 고독이 더 무서웠다. 딱 한 번의 정사로만 그치려했는데 명호는 그런 태세가 아니라는 듯 자꾸 찾아왔다.
“다시 오지마세요. 소문이 나는 날에는 어째요? 더구나 집에 암펌이 아는 날엔 하늘이 낮다고 길길이 뛸 텐데”
“근심 마오. 이후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소. 산월이의 명성을 위해 내가 강간했다고 할게. 기껏해야 몇 년간의 감옥살이 하면 되겠지. 산월이를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소”
“그러나 정작 일이 생기면 발뺌할거요”
그녀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이렇게 말하자 명호는 제꺽 식지를 입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내 손가락으로 혈서를 쓰겠소”.
“아니 그만 두세요”
그날 명호의 용감하고 진실한 감정은 그녀를 깊이 감동시켰다. 명호의 남아다운 기개는 그녀의 굶주린 욕망과 여윈 가슴을 살찌게 했다.
어느 날 그녀가 명호와 여행 삼아 w시에 가서 쇼핑하고 어느 식당에 금방 들어섰는데 웬 여인이 씽-하고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게사니 같은 목소리로 고아댔다.
“너희들이 이럴 줄 진작 알고 오늘 여기까지 따라나섰어. 어서 말해봐 누가 먼저 꼬드겼는가를”
너무나도 불의의 습격인지라 그녀는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그녀는 구원의 눈길을 명호한테 돌렸다. 그러자 명호가 머리를 수그리고 이렇게 말할 줄이야.
“여보 고아대지 마오. 사실은 저 여자가 나에게 돈까지 주면서 자꾸 감겨드는 바람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오. 이 적삼도 저 여자가 사준거요…”
그녀의 머리 우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니, 내가 언제 옷을 사준 일이 있단 말인가?)
“그럼 그렇겠지. 당신이야 원래 정직한 걸 누가 몰라요? 어서 집으로 가자요. 후부터는 저런 오입쟁이와 멀리해요”
그녀는 언제 성을 냈던가싶게 해시시 웃으며 명호의 팔을 잡아끌며 떡함지 같은 궁둥이를 휘저으며 나갔다. 손가락 깨물 상하며 맹세하던 명호는 뒤도 감히 돌아보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날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지만 그러나 주변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구경했다. 그녀는 창피한 나머지 그길로 외지에 있는 언니 집에 가서 한동안 마음을 정리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광주에 갔던 남편이 위염에 걸려 돌아왔다. 남편이 자기의 추문을 알까봐 그녀는 매일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일은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남편의 얼굴이 무섭게 이그러져 있었다.
“웬 일이세요?”
그녀가 조심히 물었다.
“난 소문을 들었소.”
“무슨 소문을요?.”
그녀의 가슴에서 콩알이 볶아졌다. 현훈증까지 났다.
“불 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소?”
“사실은 명호가 먼저…”
그녀는 죄진 아이처럼 고개를 수그렸다.
“누구 탓이든 난 아무튼 분개했소. 그러나 이해가 갔소. 당신도 부처가 아닌 이상 어찌…그러나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오”
이렇게 말하는 남편 앞에서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성을 내지 않는 남편, 눈등에 주먹이라도 날아 올려니 생각했었는데…그녀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차라리 남편한테 매나 맞았으면 더 좋으련만…
*2부 끝*
박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