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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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0-05-15 20:22 조회1,578회 댓글0건본문
요즘 한국에선 마스크 땜에 참 난리다. 마스크 공장이 폴 가동에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주간5부제 판매를 실시한단다.
참 기막힌 것은 어제 아침 TV 보도에서 한 괴한이 낫을 들고 약방까지 쳐들어가 마스크 내 놓으라고 난리 피우는 사건까지 일어났다고 나왔다.
마스크가 아무리 귀하기로 심지어 선물용으로 까지 쓸 수 있단다. 운동을 하다하다 인제는 마스크 양보 운동까지 나왔다. 오늘 아침에는 마스크 전쟁이라고 까지 보도 되는걸 봤다.
참 가관이다. 마스크 때문에 온 지구가 들끓고 있을 줄 누가 생각이나 해 봤을까,
홀연, 어릴 적 생각이 나면서 아버지의 누런 마스크가 떠올랐다.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지만 우리 집 벽에 못으로 된 옷걸이 한쪽에는 늘 색이 바랜 누런 마스크가 장식품처럼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실 때면 잊을세라 꼭 마스크를 하고 나가시 군 했었다. 가끔 아버지의 가래가 섞인 기침 소리는 듣기는 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었다. 늦잠을 자는 나를 깨우는 헛기침 소리로일 뿐이었다. 내가 뭘 잘못할 때마다 경고성 귀띔으로 들리는 헛기침 소리로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학교에 지각 할까봐 독촉하는 벨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말없이 무뚝뚝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당신의 건재를 알리는 신호로 착각하고 지내온 것 이였다.
내가 아버지가 많이 아프신걸 알게 된 때는 중학교 다니던 시절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을 떠나가신 뒤였다.
빛바랜 나의 기억의 창고속의 아버지의 모습은 늘 누런 마스크를 끼고 마당 빗자루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누어 주시던 광경이다. 비 오는 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 올 때면 빼놓지 않고 비닐을 들고 나를 찾아오신 누런 마스크를 끼고 계신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참, 말수가 적은 분이셨다. 간혹 가다 내가 뭘 잘못해도 언제 한번 큰 소리 치시거나 질책하는걸 보지 못했었다. 아버지 기침 소리만 날이 갈수록 거칠어 갔었지만 동네에 누구네가 이영하는 날이면 지붕위에 색이바랜 누런 마스크 끼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늘 보이군 했었다.
어느 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 왔는데 누런 마스크 쓰신 아버지 모습이 안 보였다.엄마에게 들어서야 아버지는 꿀벌 몇 통 가지고 우리 동네 피파 골로 양봉을 떠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거의 한 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해쓱해지고 무척 야윈 아버지 얼굴을 보는 나의 어린 마음에도 참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 후 거의 5년 동안 시름시름 아프시던 아버지는 끝내는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셨다. 폐결핵으로 아프셨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때에야 알았다. 그 큰 300호나 되는 마을에 유독 아버지만 마스크를 끼고 사셨던 이유를. 그때는 마스크 낀 사람을 보자면 병원 같은데 수술 의사들이나 꼈을 정도로 드물 때였으니까 말이다.
참, 지금 세월 같았으면 얼마든지 치료를 받아 나을 수 있는 병이었는데 그때는 우리 집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을 걸로 지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간혹 가다가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몸보신 시킨다며 닭곰을 해서 대접했는데 그때마다 닭다리 하나를 떼어서 내 앞에 놓아 주시던 아버지의 그때 모습이 떠오르면서 참 가슴이 먹먹해 난다.
내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꼽으라면 누런 마스크 끼시고 나를 데리고 강변에 목욕하러 갔을 때 얇아질 대로 얇아진 아버지의 등목을 밀어 드릴 그때였을 것이다.
내 평생 지금도 생각하면 내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누런 마스크 끼신 아버지의 폐를 파먹는 기침 소리였을 것이다.
내 평생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일 후회 되는 것이 아버지한테 효도 한번 못해 드리고 너무 일찍 아버지를 잃은 슬픔일 것이다. 마스크 한 장도 새것으로 사드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불효의 극치였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계실까? 새 마스크로 바꾸셨을까? 생각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스크 한 꾸러미 사들고 아버지 계신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아버지의 누런 마스크를 바꿔 드려야지.
/김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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