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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빈곤촌의 모자를 벗긴 세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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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0-05-12 22:26 조회1,4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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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 위치해 있는 로묘촌은 이 지난날의 극빈 빈곤현에서 가장 편벽한 촌 가운데 하나였다. 촌의 청장년 노동력이 대다수 일하러 외지로 나가다보니 남은 로인들은 함께 합작사를 만들기도 힘들었다. “일부 빈곤호들은 몇 달 동안 수입이 없었다.” 김성휘는 갓 촌에 왔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촌의 면모를 개선하고 빈곤해탈부축산업을 기획했다… 하지만 세 조선족 젊은이 앞에 놓인 첫 번째 난제는 촌에서 통용되는 산동방언을 알아듣는 것 이였다. 촌민들은 토박이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졸업한지도 얼마 안 되는 그들을 ‘업신여겼는데’ “우리 집 애보다 어린데 촌에 와서 뭘 알겠는가?”라고 했다.

 

울퉁불퉁한 온돌에서 세 사람은 자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높은 학력으로 대도시에서 ‘잘 나갈 수’ 있었는데 빈곤촌에 와서 벽에 부딪칠 줄을 생각지 못한 것 이였다.

 

“제대로 빈곤해탈부축을 하려면 촌민들의 사상 사업을 잘해야 한다.” 대학생 3명은 빈곤호들을 위해 정원을 쓸어주고 장작을 패고 물건을 대신 구매해주면서 자신들을 촌의 집사로 만들었다. 촌의 빈곤해탈부축산업을 계획하면서 식용균항목을 발전시키기로 확정한 후 김명길은 여러 지역을 뛰어다니면서 농업기술일군을 데려다가 촌민들에게 재배지식을 보급했다.

 

“이보게, 빈곤호는 어떻게 의료비를 청구 받나?”, “이보게, 나와 함께 진에 가서 일을 처리해주게.” 세 사람은 점차 갓 촌에 왔을 때 존재감이 없던 데로부터 ‘친자식보다 더 쓸모 있게 됐다.’ 크고 작은 일에 부딪칠 때마다 촌민들을 그들을 찾아 도움을 청했다.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고 놀림 받던 김성휘는 절반 ‘토박이말 전문가’가 되였다.

 

2015년 말, 로묘촌의 빈곤발생률은 45.8%였는데 현재 서류카드작성 빈곤인구가 전부 빈곤에서 탈출했다. 정문걸이 촌 주재사업을 마친 다음 김성휘, 김명길은 중점 ‘관심’ 대상이 되였다. 올해 4월, 왕청현이 정식으로 모자를 벗은 후 촌민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축행사가 아니라 두 ‘김씨 젊은이’가 시내로 돌아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 이였다. 빈곤탈출가구 정학민은 그들을 찾아 “가지 마오. 내가 촌주임을 찾아 호적도 만들어주고 색시도 찾아주겠소.”라고 말했다.

 

평소에 김성휘는 촌 입구의 다리에 서서 동서 양쪽의 신촌과 로촌을 비교하기를 좋아했는데 이는 그들이 분투한 흔적 이였다. 로묘촌의 미래에 대해 그는 아직도 많은 계획이 있다고 하면서 식용균항목을 더 크게, 더 우수하게 만들고 고속도로휴게소가 설립된 후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였다… 김성휘는 “청춘의 땀방울을 이 땅에 흘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리강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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