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개 : 박영옥
연변작가협회 회원.
1997년부터 아동소설, 수필, 동시, 동화, 우화, 가사 등을 발표.
백두아동문학상수상.
동시집 《꿈나무 사랑나무》 출판,
제13회 ‘동심컵’수상.
한국 KBS방송에서 대상, 특별상, 지도교원상 수상.
당금 소한절기를 맞는 날씨는 자기 매력을 과시하느라고 여간 춥지 않았다. 아침에 작문반에 들어서는 애들의 얼굴에는 다른 때와 달리 얼굴에 웃음이 찰랑대고 있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작문을 쓰지 않고 우리말 려행을 해서 그 골치 아픈 작문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새해맞이 선물을 사주신다고 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앞에는 이미 작문필기장이 두 줄로 놓여있었다.
선생님앞에 놓인 선물을 본 애들은 “와 ㅡ”하고 환성을 질러댔다. 집에 누군들 작문필기장이 없으련만 선생님이 주는 선물이라서인지 다들 얼굴이 한결 밝다. 어떤 애들은 작문필기장을 어루만져보았고 어떤 애들 몇 권인가하고 “하나, 둘”하면서 세여 보았고 또 어떤 애들은 너무 좋아서 자그마한 주먹을 쳐들고 한고패 돌기까지 했다. 애들의 마음은 꽃이 되고 별이 되였다.
다른 때는 작문반에 들어서는 어떤 애들은 들어서기 바쁘게 걸상에 풀썩 앉는다. 작문쓰기가 딱 힘드는데다 선생님이 건너주시는 책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혹간 핸드폰으로 유희를 놀려고하면 작문반의 감독위원인 혜진이한테 빼앗기고 만다. 선생님은 정말 감독위원을 잘도 뽑으셨다. 헤진이는 학교에서 “사무럽쟁이”로 소문나서 드센 남자애들도 조금은 무서워하는편이다.
이전에도 우리말 려행을 놀아본적 있는데 참 재미있었다. 뭐 퀴즈 맞추기, 성구 맞추기, 앞다투어 대답하기, 손시늉을 보고 단어 맞추기, 특히 “꼭꼭”이란 유희는 아주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공부는 ㅡ”, “용서는 ㅡ”, “숙제는 ㅡ”하고 입을 열면 애들이 “꼭꼭”하면 된다. 그런데 “싸움은 ㅡ”, “게으름은 ㅡ”할때 “꼭꼭”하고 웨치면 동물울음소리를 내야하거나 노래를 불러야하는 “벌”을 받는다. 때문에 매 구절마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일 년 내내 주말마다 작문반에 다니는 애들을 놓고 보면 대부분 애들이 처음에는 부모님의 핍박으로 갔다가 차츰 취미를 붙이게 되여 작문반으로 가기 좋아하지만 어떤 애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쯤 해서 들어선 애는 형식이였다. 꽤나 총명해보이고 작문도 괜찮게 써서 자주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다. 그런데 장난이 좀 많고 시간에 옆에 앉은 애들을 톡톡 건드리기를 좋아해서 때론 꾸지람을 듣는다. 오늘도 선생님앞에 놓인 선물을 보고 어루만지더니 이런 말을 했다.
“이까짓 2원짜리 선물이 난 마음에 안 들어요. 살 바엔 연필까지 달린 8원짜리를 살거지요”
곁에 있던 애련이가 제꺽 오돌찬 반박을 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이 자기 돈으로 우리한테 베푸시는데 그래 넌 정말 고마운 마음도 없니?”
선생님이 제꺽 애련이를 향해 손을 입에다 가져다 대시며 “쉿 ㅡ”했다.
조금 후 시간이 시작되자 선생님이 새별 같은 눈을 반짝이면서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의 10분 강의는 감사함에 관한 강의를 합니다. 먼저 한 가지 물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를 모르는 인간이다’라는 말은 누가 한 말일가요?”
“독일작가괴테입니다.”
애들의 작은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대답이다.
“와ㅡ다들 잘 알고 있군요. 그래요. 우리는 매일매일 감사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그런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여야 합니다. 그럼 오늘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사의 중요성을 배우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한 놀이감 회사에서 녀비서를 한명만 모집하는데 대우가 좋아서 적지않은 대학생들이 면접에 나섰습니다. 그날 면접은 다 잘 치러서 모두들 신심이 가득했답니다. 면접담당책임자는 사흘 후에 입사통지를 보내니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지요.
이튿날 이 회사에서는 50명되는 면접자에게 10짜리 놀이 감을 택배로 보내주면서 이런 쪽지까지 있었답니다.
"녀사님은 이번에 합격되지 못했는데 우리는 미안함을 표시하면서 이 자그마한 선물을 드립니다."
최모라고 하는 아가씨는 기분이 잡치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쓰지 않겠으면 말라지 이같이 눈에도 안 차는 10원짜리 놀이 감을 보낼건 뭐람?
최아가씨는 그 놀이 감을 쓰레기통에 던지려고 쳐들었다가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선물을 주는 회사는 처음 보았지요. 최아가씨는 인차 회답문자로 감사함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출근하라는 통지를 받았답니다. 나머지 49명은 감사를 느끼지 않아서 취업이 못 되였지요. 이 회사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모집했는데 감사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외모보다 학력보다 더 중히 여겼대요. 우리는 그 누가 나한테 베푼 것을 절대 돈으로 계산하지 말아야합니다. 아주 적은 성의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합니다. 알겠지요? 자 ㅡ인제부터 우리말 려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선생님을 쳐다보는 애들의 눈은 수시로 반짝대고 있었다. 대낮이지만 교실 안에는 별들이 가득 떴다.
애들은 인차 두 조로 나뉘여 선생님이 내주시는 문제를 앞다투어 대답했다.
“우리글 자모는 모두 몇개인가요?”
“40개입니다.”
“온 하루 집에 박혀 있는 것 을 네 글자 성구로 말하면요”
“두문불출입니다.”
......
애들의 대답소리는 어찌도 챙챙하고 우렁찬지 교실 안이 떠나갈듯 했다.
파아란 하늘은 더없이 예뻤건만, 창문가로 참새가 언뜰대며 애들의 마음을 훔치려고 시도했지만 애들의 시선은 오직 선생님의 얼굴에만 쏠리고 있었다.
이어서 손동작을 보고 단어맞추기를 했는데 각조에서 제일 앞에 선 친구가 단어를 보고 손동작으로 뒤에 선 친구한테 단어뜻을 암시해주면 그 친구가 또 뒤친구에게...이럴게 넘어가다가 제일 마지막에 선 친구가 정확하게 맞추면 된다.
처음에 1조에서는 두개 문제를 쉽게 맞추었는데 세 번째 만에 그만 “유리를 닦다”를 “흑판지우다”로 대답하는 바람에 웃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2조 차례였다. 2조에서는 이겨보자고 서로 작은 주먹들을 쳐들어보였다. 그런데 한문제만 맞추고는 “피아노를 치다”를 “타자하다”고 했고 “땀을 흘리다”를 “눈물 흘리다”로 대답해서 점수가 더는 상승선을 긋지 못했다.
웃음소리, 환호소리, 감탄소리, 아쉬움소리로 반죽된 애들의 소리로 꽉 메워진 교실은 꿈나무들로 가득 찬 꿈동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시간이 끝날 무렵이 되자 감독위원이 작문필기장을 매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오늘 사유로 세 학생이 오지 못한 바람에 세개 남았다.
선생님의 손에 들려있는 세 개의 필기장을 보는 애들의 눈길은 한결 같이 선생님의 얼굴에 쏠렸다. 선생님이 이 남은 선물을 누구한테 줄가는 의혹스런 그런 눈길이였다.
그때 선생님의 입이 열렸다.
“지금 남은 선물을 어떻게 처리 할가요?”
누구도 대답이 없다.
“선생님이 이전에도 늘 말했지요? 늘 베풀면서 살아야 된다구요. 오늘도 우리 베푸는 마음으로 나머지 선물을 이렇게 하는 것이 어때요?
우리 작문반에 한족친구가 있습니다. 한족이지만 우리글을 몹시 사랑하면서 작문도 열심히 쓰는 호림이한테 주고 또한 아빠는 조선족이고 엄마는 한족인 미령이와 준송이한테 주는게 어때요?”
다른 애들은 누구나 말이 없는데 유독 형식이만은 입이 한자나 나온 채로 불공평하다고 야단이였다.
“그럼 어떤 제안이 있어요?”
“...”
형식이는 그저 불만스런 표정을 지을뿐이였다.
입 빠른 감독위원이 어성을 좀 높였다.
“흥. 너 아까 뭐라했니? 마음에 안 든다고 하고선 무슨 욕심 부리는거야?”
“아까는 미안했어. 금방 감사함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많이 깨달았어. 하지만 난 선생님의 선물을 누구보다도 오래 쓰면서 선생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잘못을 느끼는 형식이의 그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워보였고 또 제법 의젓해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또 입을 열었다.
"들추어보면 누군들 실수 할때가 없고 누군들 잘못을 저지를 때가 없으랴! 잘못을 저지른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걸 깨닫지 못하고 고치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는 애들마다의 눈이 밝게 빛났다.
말씀을 마친 선생님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형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이때 저 쪽에 앉은 영미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선생님, 저한테 차례진 선물을 형식에게 주세요. 형식이한테 더 차례질 리유는 저 애가 여기에서 제일 어리니까요. 웃학년으로 아래학년 친구한테 베푸는건 응당합니다. 전 집에 이 필기장이 많이 있어요”
언제 봐도 조용한 어조다. 그러나 선생님은 영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아까 작문반에 들어섰을 때 “와 ㅡ좋아요. 그러잖아도 집에 작문필기장이 없어서 오늘 사려고 했는데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거짓말을!
순간 선생님의 머리속에는 몇 달 전에 영미가 “가야하문학상소학생조”에서 “아름다운 거짓말”이란 글을 써서 금상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아. 영미는 오늘도 아름다운 거짓말을 하는구나)
뿐만 아니라 작문반에 온 애들이 우리말을 멀리하고 한족말만 해서 안타깝게 생각한 선생님은 한족말을 하지 않는 학생한테는 깨사탕을 장려로 주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어느 한번 선생님이 애들에게 사탕을 나눠줄 때 영미는 대번에 이렇게 거절했다.
“선생님, 제가 오늘 한어말 두 번 했기 때문에 사탕을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쟁쟁한 리유를 내세우는지라 선생님은 그만 내미셨던 손을 움추리고 말았다. 바로 영미는 이렇게도 착한 애였다.
이어 옆에 앉았던 미령이도 일어섰다.
“선생님, 전 싫습니다. 하나면 되니까요. 더 수요되는 친구에게 주세요”
순간 선생님의 눈에 이슬이 달랑댔다. 욕심나지 않아서 내놓으려고 하는게 아니였다. 아까 선물을 받을때 그 애들도 눈이 반짝댔고 입을 다물지 못하지 않았던가!
영미와 미령이는 서로 자기 몫을 내 놓겠다고 우겨댔는데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형식이가 손을 들더니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제가 욕심 부려서 이렇게 되였는데 저는 처음의 제안에 무조건 찬동합니다. 오늘 두 누나의 행동에서 느낀 점을 집에 가서 멋진 작문을 쓰려고 합니다.”
형식이의 오돌찬 말에 감독위원이 엄지손을 척 내밀었다. 순간 교실 안에는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이 걸려있었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그런 마음들로 그려진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기에 도취되여 지나가던 해님도 어느새 교실 안에 홀랑 뛰여 들었고 달음질하던 바람도 창문가에 매달린 채로 떠날 념 하지 않았다.
“친구들! 이 작디작은 행동들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까? 우리 모두 박수 ㅡ”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게 바쁘게 모두들 박수를 쳤다. 호진이는 손바닥이 뻘겋게 되도록, 정우는 일어서기까지 하면서 요란하게 쳤다.
“짝짝짝 ㅡ”
“와그르 ㅡ짝”
그 박수소리는 교실 안에서 오래간 울리고 또 울리면서 웃층 또 웃층까지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