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10일에 나는 관절염으로 다리치료 받으려 한국에 왔다. 두 달동안 의사의 세심하고 정성어린 치료 끝에 많은 호전을 가져왔다. 원래 일 욕심이 많은 나는 지난해에 한국에 왔을 때 요양보호사 자격증공부를 하면서 배운 지식을 한번 실천해볼 겸, 돈도 벌 겸 일에 착수해 보기로 결심했다.
행운이랄까 <조선족 간명총회>를 통하여 뇌졸중으로 오른쪽편마비환자의 간병을 맡게 되였다.
내가 병실에 도착한날 그 환자는 금방 중환자실에서 10여 일 동안 생사의 고비에서 고생하시다가 일반병실로 옮겨진 상태였다.
코에는 산소 줄, 발에는 수액 3통, 왼쪽손목은 전동침대에 묶여 있었으며 언어 상실 이였다. 연세에 비하여 엄청 건강해 보이는 그 환자의 얼굴에는 근심과 수심이 가득 쌓인 채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드님과 따님의 말에 의하면 회사에서 물건배송을 하다가 갑작스레 쓰러지셨단다. 아직 가장으로서 해야 할일이 너무나도 많으신데 이렇게 반신불신으로 침상에 누워서 한마디 말도 정확히 번지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하겠는가를 상상할 수 있었다.
때론 엉엉 황소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줄 끊어진 구슬마냥 두 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볼 때면 나도 함께 운다.
함께 안타깝고 함께 마음이 시리다. 왜냐하면 그의 발이 그가 살아온 경력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게 부지런히 뛰어다녔으면 발바닥이 소발바닥처럼 굳은살이 두툼히 꽉 박혔을까?
세대주란 큰 짐을 두 어깨에 억척스레 짊어지고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몸은 돌볼 시간 없어 온갖 심혈을 살아가신 그의 몸에서 풍기는 땀 냄새와 발에서 역력히 보아낼 수 있었다. 진정 세대주 무게는 얼마만큼 무거울까?
사실 이 세상에서 어머니를 노래하는 글은 많지만 아버지를 노래하는 글은 적은 것 같다. 나는 오늘 그 환자의 장알 박힌 딱딱하고도 굳은 발을 씻어드리면서 아버님의 로고를 찬양하고 싶다.
아저씨,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어머님의 사랑이 시내물이라면 아버님의 사랑은 산이랍니다.
오늘도 나는 그 환자의 발을 닦아드리면서 온갖 고생으로 살아온 인생에 조금이라도 희망이 비치며 다시 용감히 일어나서 그 세대주의 삶을 새로운 인생역사를 주름 잡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