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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0-05-04 02:41 조회1,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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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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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생글대던 햇님이 지쳤는지 서산에서 서성대다가 산 뒤로 살짝 숨어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둘 토월산 기슭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닦아놓은 강변유보도로 나섰다.

 

날이 점점 저물어감에 따라 사람 수도 점점 늘어난다. 서로 간에 시간 약속은 없었건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맘때면 어김없이 나선다. 친구들끼리 걷는가하면 혼자서 콧노래 부르며 걷는 사람도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는데 매일 만나도 그렇게 반가운 모양이다. 낮이면 자기가 할일에 최선을 다하고는 지친 머리를 쉬우러, 여유롭고 평화로운 공간을 이 길에서만이 향수할 수 있는 게 아닐가!

 

저쪽에서 두 사람이 잠간 서서 이야기 주고받는다. 그동안 안 보여서 혹시 편치 않았는지 하고 근심을 했다고 하니 대방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저 스쳐가는 말인데도 그처럼 감동하는 것 이였다.

 

내 앞에서 걷는 한 아줌마가 여덟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를 데리고 나왔다.

 

엉? 그 아줌마는 2년 전에 아들애가 대학에 갔고 3년 전에는 남편이 한국에 갔는데 웬 애를 저렇게? 호기심으로 내가 바짝 따라잡아서 물었더니 시누이 아들이라 한다. 시누이네 부부가 장사를 하다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애를 그 아줌마한테 맡기고는 한국에 갔단다. 엄마처럼 졸졸 따르며 앞에서 깡충 재롱을 부리는 그 애는 행복해보였다. 애의 손을 꼭 쥐고 노을이 깔린 산책길을 걷는 그 아줌마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요즘 세월에 애를 하나만 키워도 힘들다면서 둘을 낳기 싫어하는데 그 아줌마는 하나뿐인 자식이 대학에 갔고 남편도 한국에서 돈 벌고 있으니 인제는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사회의 이런저런 모임에도 갈수 있을 거고 살림이 넉넉한지라 다니고 싶은 곳도 가고하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겠건만 어깨에 다시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아직 철들지 않는 애, 제 자식이면 몰라도 친척집 애를 돌본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아줌마를 보면서 남편과 단 둘이 아무 부담도 없이 살아도 힘들다고 아우성치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오늘도 이렇게 만났네요”

 

누군가 뒤에서 이렇게 말을 걸기에 뒤돌아보니 한 아파트단지에서 사는 최 아줌마다. 중풍에 걸린 남편을 밀차에 앉히고 나왔는데 아직 육십 전이건만 2년 전에 남편이 병에 걸린 그날부터 갖은 노력을 다해서 치료시켰지만 남편은 일어서지 못했다. 안팎일을 혼자서 감당해야하면서도 남편의 시중까지 한다는게 또 얼마나 힘든가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얼굴은 언제 봐도 환하다. 인제는 그 남편이 정해진 운명인데도 그 어느 땐가는 기적이 생겨서 남편이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아무튼 필요할 때 다가서고 필요치 않을 때는 물러서는 그런 부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인지 부부 정이 백지처럼 엷어져서 쩍하면 이혼이요 하는 요즘 세월에 이같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치 않는 그 아줌마를 쳐다보노라니 내 가슴에 저도 몰래 잔잔한 감동의 파문이 이는 것이였다.

 

저쪽 켠에서 걷던 친구가 손을 들어 알은체한다. 한 달 만에 본 얼굴이다. 그동안 뭘 했길래 오늘에야 얼굴 보이느냐하고 물었더니 소주에 있는 딸집에 놀러 갔단다. 그런데 그처럼 큰 도시이고 풍경 또한 이름날 정도로 아름다운데도 자꾸 고향생각이 나서 겨우 참으면서 보내다가 돌아 온지 이틀이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비록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그러나 산이 가깝고 강도 여러 갈래인 이 명월진이란 도시가 참 좋아 보인다. 도시 안에 산이 불쑥 들어온 도시는 아주 희기 할 것이다. 물이 맑고 공기 청신하고 인품 좋은 고장에서 사는 것이 무척 행복스럽게 느껴진다.

문득 초저녁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참 고맙기가 말이 아니다. 온 하루 컴 앞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갑갑했던 마음도, 사업 때문에 지쳤던 머리도 시원하게 해준다. 바람은 언제 봐도 편견이 없다. 미운 사람도 고운 사람도 가리지 않고 부드럽게 애무해준다. 머리가 시원하다 못해 마음도 시원해나는 산책길은 그야말로 즐거움뿐이다.

 

이윽하여 산책길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가로등이 눈을 번쩍 뜬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깨운다. 늦게 퇴근했는지 아니면 무슨 다른 사연이 있었는지 뒤늦게야 산책길에 나선 사람도 보인다. 낮에 일이 힘들었어도 이 산책길을 걷고픈 마음을 눅작일 수 없어 나온 것이다.

그렇다, 이 산책길에서 여유를 찾고 즐거움 그리고 평화를 찾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내일도 이 산책길에서 낯익은 얼굴들과 낯 설은 얼굴들의 만남이 이어질 것이고 또 새로운 행복스런 이야기들이 엮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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