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들의 몸과 마음, 살과 뼈까지 얼어들게 하는 기세등등하던 겨울도 제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에 쫓겨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며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봄이 오면 하늘에서 종달새가 노래하고 땅에서는 화답이라도 하듯 아지랑이 춤을 추고 온갖 만물이 새 생명을 움 틔운다. 봄은 모든 생명과 사람들의 마음을 유난히 설레게 한다. 특히나 처녀총각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주는 봄, 연인들의 마음을 야릇하게 자극하는 봄, 봄은 꿈을 키우게 하는 계절이다.
봄은 상상의 계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의 꿈이 이루어 질것 갖고 오래동안 소식이 끊겼던 어릴 적 친구한테서 문득 전화라도 걸려올 것 같고 작은 오해로 닫아버렸던 친구가 언제 그랬냐 싶게 안부나 만남을 전해올 것만 같다. 또 아끼고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무척 속 태우다가 어느 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문득 찾게 되는 반가움을 만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한 해 채 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도 새봄 벽두부터는 당장 해낼 것 같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내디딜 것 같은 계절이다.
봄은 소박한 계절이다.
봄은 화려하기보다는 작고 소박해서 작은 것으로부터 삼라만상이 태동하고 약동하는 생명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그러나 봄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다 죽은 것 같은 마른 풀과 나무에서 녹두알같이 작고 파아라디 파아란 생명들이 감히 저 커다란 봄을 만들려고 다투어 피어나는 신비로움 때문이고 그래서 생명의 거룩함이 돋보이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은 주는 계절이다.
봄은 꿈과 희망으로 새롭게 펼쳐져서 녹색의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사람도 봄 같은 사람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지기 마련이다. 만나면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즐겁고 고마워지는 그런 사람, 그래서 더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 줌으로써 받을 줄 아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봄날 같은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포근함,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밝고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될 것이다.
그렇다. 봄은 정녕 아름답다. 그러나 봄같이 상냥하고 어여쁜 사람은 더욱 아름답다.
/허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