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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기다리는 긴 목 같아서 조금은 슬프다. 골목골목이 좁아서 들어 오는 바람들이 몸 사리고 모퉁 모퉁이 얽혀 달빛들이 하늘로 돌아갈 길 잃는다 여름을 갈무리한 자투리 비에 젖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담 넘는 나팔꽃 붙잡는 밤 뒤안길 끝자락 지붕이 낮아 고요한 창가의 불빛 길게 늘어진 것이 어떤 추억같다. 가을의 유언 낙엽은 가을의 메시지 같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피줄 같은 글자가 보인다 조용히 귀 기울이면 가랑가랑한 숨소리가 들린다. 비오는 날, 눈물 흘렸지만 바람 부는 날, 버둥질 쳤지만 그 긴긴 세월 그렇게 버텼지만 이젠 떠나가야 한다. 어느 아궁이에서 한오리 연기로 사라자기 전, 어느 골짝에서 한줌의 흙으로 사라지기 전 곁에 있던 것들에게 모든 것 다 한 시간에는 훌훌 털고 떠나야 한다는 티끌 자취도 남기지 말라는 가을의 유언 같다. 저쯤 서 늑장부리는 코스모스랑 구절초에게 말하는 유언 같다 낙엽은. 어느 가을날, 꽃밭에서 꽃이 늦도록 지지 않는 것은 나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비가 그치고 비스듬히 누워서 오던 비의 그 모습으로 햇살이 내려오는 날 꽃밭위를 날으는 나비를 보아라 바람이 꽃향기를 흔들면 날개로 그걸 받아서 붓꽃, 초롱꽃, 구절초가 된 나비들 나비들의 춤사위가 신들리기 시작할 즈음이면 낙화를 준비하던 꽃잎들은 다시 날아올라 보라를 만든다. 네가 꽃이라면 한 사람만을 기다리는 꽃이라면 나는 나비되어 너에게로 가리 색 바래진 아름다움일지라도 맥 풀어버린 향기일지라도 너의 모든 걸 한아름 가지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날개짓으로 네가 기다려 준 시간,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씩 깨워주고 싶다. /김춘산
김춘산 프로필 : 흑룡강성 탕원현 출생. 1984년 연변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흑룡강성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국제부 근무, 1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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