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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지지 않는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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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2-25 19:42 조회3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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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섣달 초이튿날, 뼈속까지 얼어드는 추운 겨울날에 눈보라 휘몰아치고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오막살집 창문지가 새하얗게 질려 몸부림치며 부르르 떤다. 

 

바로 칠십 일년 전 오늘이다.

   

울 엄마는 남산만큼 한 배를 끌어안고 간신히 몸을 가누며 부엌간으로 내려가신다. (옛날에는 부엌에다 짚을 깔고 해산했다 한다.) 갑작스레 울 엄마는 ‘으아~~아~’ 연거푸 신음소리를 모질게 내신다. 극심한 산통 속에서 내가 엄마의 탯줄 타고 ‘응앙~응앙’ 하며 고고성 울린다.

   

엄마는 네모반듯한 솜이불에 내 알몸뚱이를 조심스레 감싸 안고 젖가슴을 내밀어주신다. 쬐꼬만 갓난 애기 입이 마치 집게처럼 엄마의 젖꼭지를 물어 뗄 듯 안간힘 다해 젖 구멍을 뚫고 만다. 쬐꼬만 주먹에 땀 쥐고 꼴깍꼴깍 젖을 빨아 먹는다. 뽀얀 색 모유가 별맛 이였나 본다. 취한 듯 포근한 엄마의 품속에서 쌔근쌔근 잠이 든다.

  

엄마는 젖꼭지의 아픔 참기가 어려웠지만 제 살점이니 아파도 젖가슴을 통째로 주셨다 한다.

 

세 번째 날 이였다. 뜻밖에 엄마의 젖줄기가 막혀 버린다. 속담에 눈썹 밑에서 불이 떨어진다고 해산 후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림파성 폐결핵이 찾아왔다. 울 엄마는 억이 막혀 울기만하셨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쩌면 내가 생겨나와 엄마를 고생시키는지?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좁쌀죽을 연하게 끓여서 나의 입에 한술한술 떠 넣어 주신다. 하루이틀 지나면서 내가 영양부족으로 마구 울기만 하자 큰 엄마, 큰 아버지, 삼촌들은 수척해지는 울 엄마가 불쌍하여 나를 밖에 내다버리라 했다한다. 아마도 오남매 중 유독 내가 울 엄마를 제일 힘들게 한 것 같다. 발뒤축 뼈가 보일정도로 발버둥 치며 울었다고 하니 완전 한심하기로 그지없는 애물단지 분명했다.

   

자식은 부모의 부담거리라고 시집간 후에도 엄마 가슴에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고 눈물주어 지금 가슴이 더 아파난다.

 

바로, 1979년 봄 이였다. 나도 울 엄마처럼 딸 낳고 똑같은 아픔 겪으며 참고 견뎌냈는데 청천벽력같이 엄마병과 똑같은 림파성 폐결핵이 불의의 습격으로 찾아들었다. 억장이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끊임없이 잦은 기침으로 쪽잠마저 잘 수 없어 지칠 대로 지쳐간다. 태여난지 며칠 안 되는 딸이 가여워 하염없이 서럽게 울기만 하였다. 량볼은 눈물에 타들어 지금도 얼굴에 흔적이 남아있다.

   

비록 그 당시 우유가 있어서 다행 이였지만 젖가슴은 부풀어도 혹여 병이 전염될가 염려되어 딸에게 한모금도 줄 수 없었고 내 딸이 가엽기만 하였다. 난 그때 나만이 엄마의 병을 물려받았다고 절망에 빠져 죄 없는 엄마를 무턱대고 원망하였다.

“차라리 나를 낳지나 말거지”투덜대며 엄마를 원망했다. 

 

오늘날에 와서야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자신을 몹시 저주한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태어난 후 날따라 초췌해져서 얼굴이 반쪽 된 몰골 본 엄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고 찢기였을까? 나 때문에 가슴에 피고름 얼마나 많이 흘렸을가? 내가 지금까지 장장 40여년 딸애에게 젖을 먹이지 못한 죄를 내내 가슴에 묻고 살아오는데 울 엄마는 더 큰 아픔을 안고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얼마나 야속한가?

   

어찌하여 여자의 일생은 엄마로 시작되는 날부터 자식위해 울어야만 하는지? 하늘 향해 그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며 버텨왔던가?

 

하늘이여, 오늘 아침 울 엄마를 보내  주시옵소서...

 

저 푸른 하늘가에서 인자하신 울 엄마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 지으며 다가오신다. 엄마는 두팔 벌려 나를 꼭 껴안아주시며 

 

‘얘야, 오늘은 너의 생일이구나, 미역국 끓여줄가?’

  

나의 두 눈에선 눈물이 비오 듯 쏟아진다.

 

‘엄마, 이 못난 딸을 위해 이 추운 날에 모쪼록 찾아오셨어요? 고마워요 엄마, 지금도 젖꼭지가 아프시죠? 지금도 이 애물단지가 미워나죠?’

   

‘아니, 그럼 너는 네 딸이 미운거냐? 자식이란 절대 밉지 않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인데. 안 그래? 아마 네 마음도 그럴거다. 자, 어서 미역국이나 끓이자 ~ 네가 제일 좋아하는 미역국을...’

 

후유... 이것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미역국 볼롱볼롱 끓는다.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향긋한 미역국 냄새가 온 방안에 풍긴다.

아니, 엄마의 따사로움이 집안에 넘친다.

 

오늘따라 울 엄마가 무지 보고 싶다.

오늘따라 엄마의 따스한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만 싶다.

엄마에게 대못을 박은 이 죄.

엄마, 용서를 빕니다.

엄마, 죄송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정정숙      

      2022.1.4생일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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