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이른 나로서는 지금이 막 인생의 봄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이다. 봄의 향기를 맛 보고 있을 요즘 과연 난 제대로 된 봄을 맞이하고 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자신에게 묻는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나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자!’이다. 내가 믿고 있는 ‘내’가 과연 진짜 ‘나’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여러 가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였다. 례를 들어 나는 하루에 커피를 두잔 정도 마시는데 스스로 과연 커피를 진짜 좋아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한번은 어머니가 민들레뿌리를 달인 물을 한잔 만들어주셨는데 그 맛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차로 마시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누룽지 맛이 나고 은은하고 향기로웠다. 특히 섭취하자마자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맴도는 게 건강에도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왜 커피를 자주 마시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지금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본연의 나 자신으로 돌아와 “커피 맛 어때?” 하고 물어보았다. 내 솔직한 대답은 “쓰고 텁텁해!”이다. 물론 맛이 있는 커피도 있다. 갓 볶은 좋은 원두를 갈아 만든 커피를 마시면 신기할 정도로 맛이 야릇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내 자신이 과연 그 맛을 아는지 어떨 땐 헛갈릴 정도로 나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맡고 있는 학교도서관에 잘 오지도 않던 준석이라는 애가 요즘은 곧잘 오고 있었다. 준석이는 도서관에 올 때 쵸콜레트나 과자를 사오면서 나에게 건네주기도 하며 “선생님, 저 오늘 늦게까지 있어도 괜찮지요?”라고 하면서 늦도록 이 책 저 책 읽군 한다. 반시간이 지난 후 난 아이들이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눈여겨도 보고 혹시 제대로 내용을 파악했는지 싶어서 묻기도 한다. 그 날도 준석이는 동화이야기책을 훑으면서 시간이 지나도 나갈 생각을 안했다. ‘정말 책이 좋아서 읽고 있을까?
학교 다닐 적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였던가 그 때 실습 선생님이 오셨는데 남자 분이였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무척 매력적인 선생님 이였었다. 마침 우리 학급 담임을 맡으셨고 또 열정적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무척 인간적인 분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순식간에 난 그 선생님의 모습에 사로잡혀버렸다. 우리 몇몇 여학생들은 실습 선생님에 대한 호감도가 너무 인상적 이여서 선생님 주위를 맴돌며 선생님의 비위를 맞추느라 무척 애를 썼었다.
어느 날, 나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역사수업을 아주 귀맛 좋게 수강하고 시간이 끝나자 다른 아이들 몰래 사탕과 과자를 사들고 선생님의 숙소에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항상 서글서글한 남성다운 성미로 맞아주시면서 사진첩이며 선생님의 학창시절 이야기도 곧잘 들려 주시였다. 선생님의 대학시절 그 멋진 사진들은 나에게는 스타를 뺨 칠 정도로 멋스러워보였다. 선생님이 탄 영예증서도 그렇게 많아 정말로 우리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선생님께 내가 직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튿날, 선생님이 다시 교단에 오르셨을 때 소녀의 얼굴엔 빨간 홍조가 어리 군 하였다.
그렇게 실습 선생님에 대한 앓이를 한참 겪다가 내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버스에 앉았는데 누군가가 나를 툭 쳐서 고개를 돌렸더니 다름 아닌 선생님 이였다. 난 또 한 번 놀랐다.
“집에 가는 길인가요?”
“네… 네.” 알고 보니 선생님의 집 방향이 내 집 방향과 같아서 같은 버스를 타군 했는데 우린 버스 역에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 난 속으로 계속 ‘이거 실화냐?’ 하고 되물었다. 그런데 학교생활 관련 대화가 끝나자 우리 둘 사이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 옆에서 혼자 책을 꺼내 읽고 계셨다. 난 멀뚱멀뚱 창밖만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눈길이 책에 꽂히면서 우리는 완전히 타인이 되어 버렸다. 그 순간 내 기분은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슬프고 먹먹했다. 이게 실화인가? 믿기 힘들 정도로… 살면서 굳이 겪어볼 필요가 없는 비극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가 내가 내릴 역에 도착했을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 내리는데 그 때 본 선생님의 얼굴은 그 버스 안에서 제일 못생겨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모습을 생각하노라니 나 스스로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 자신에게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뭔가 바뀐 게 아닐까? 하는 낯선 기분이 들었다. 봄은 이미 왔지만 내게는 바로 오늘부터가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의 봄은 매년 찾아오는 그런 봄이 아니라 소녀의 첫 봄 이였다. 즉 태어나서 줄곧 겨울을 견뎌낸 기분이 들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개운함과 상쾌함 그리고 가벼움이 느껴졌다. 집을 나와 길을 걷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도대체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가?
그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마치 오랜 기간 딱딱하게 붙어있던 눈꺼풀이 드디어 벗겨지고 새로운 세상의 눈을 뜬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나 없는 내 인생’을 살았던 게 아닐까? 지금까지 나의 모든 생각과 판단은 내 것이 아닌, 학습되거나 외부로부터 스며든 것이 아닐까? 나는 스스로에게 ‘온전한 나만의 것은 과연 무엇일가?’ 하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중력과 관성을 무시한 채 자유롭게 스스로 영글고 있는 존재 같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 밖의 모든 세상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은 이렇게 초라했던 나를 다시 건져 지금의 나로 순환시켜주었다. 그 때 난 안과 밖이 뒤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사고방식이나 견해가 종래와는 달리 크게 변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겪고 있었다.
아마도 준석이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한없이 여리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함부로 판단되기를 거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도 ‘진짜 준석이가 되기를’ 준석의 마음속 응어리를 용해시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짜 준석임을 알게 될 때 그가 속한 그의 세상도 대기권 밖의 우주가 될 것이다. 오늘도 난 모지름을 쓰며 책갈피 속 나를 번갈아 번지면서 준석에게 속한 진정한 준석임을 깨우치게 해주려고 포용과 따뜻함으로 화답하려 애쓴다.
경직된 시각과 마음을 뒤로 젖히고 세상과 절묘하게 조합해가려는 아량으로 다시 맞는 소녀의 봄도 새로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