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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의 아버지를 따라 네모꼴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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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2-25 19:42 조회3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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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의 아버지 송인진은 4청운동이 끝날 무렵 석두에서 부모를 모시고 처자를 거느리고 이사왔다. 그의 부친 명함은 송기홍이고 몹시 점잖은 분이라고 기억된다. 신옥의 아버지는 탄광기술자이다.

  

그 당시 생산대가 제대로 운영되자면 반드시 있어야 할 인재로는 지탑 쥘 수 있는 밭갈이 능수 그리고 목수와  탄광기술자이다. 량수 13대는 한족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도 없어서 끝내 해체되고 말았다. 당시 소대 수입의 절반은 잎담배 수입 이였는데 담배건조에 반드시 탄이 있어야 했다. 

  

신옥의 아버지가 온 덕분에 소대 우사 담배온상 담배건조실의 탄은 물론 사원들의 화목까지도 걱정 없었다.

 

신옥의 아버지는 이사 올 때에도 아주 임전하였는데 총각시절에는 보기 드문 미남 이였으리라. 게다가 쾌활하고 예쁜 딸 신옥이를 두었으므로 딸 또래의 여러 젊은 총각들의 존경을 받을 만도 하였다. 

   

어느 해 여름, 신옥의 아버지의 령솔 아래 우리 젊은 또래들이 모두 네모꼴산마루 콩밭 매러 떠났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하서로 가는 길 따라 그냥 가다가 북쪽으로 갈라져 가면 네모꼴산 밑에 이른다. 

   

산비탈엔 거지반 개암나무이고 자작나무가 드문드문 끼여 있다. 

   

그런데 산마루에 오르면 경관이다. 큰 운동장만큼 한 네모나고 반듯한 검은 땅이 펼쳐진다. 자연의 조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땅이 반듯하다. 북쪽켠에서는 샘물이 퐁퐁 솟는다. 산마루에 샘물이라니 신기한데 그 물은 우유를 탄 것처럼 뽀얀 색갈이다. 이 물 마이면 장수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며 저마다 마음껏 마인다. 나도 해마다 갈 적마다 배에서 출렁출렁 소리 날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셨다

   

 신비로운 샘이 솟는 산마루 기이한 땅 이곳엔 반드시 아쉽게도 전해 못 진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으리라. 우리나라 최고 산천유람객 서하객이 만약 이곳으로 다녀 왔더라면  어떻게 이곳을 노래했을까 궁금해진다. 나도 내 나름대로 백두산 천지에서 미역 감던 선녀들이 이곳에 쉬여가며 기이한 샘물로 목을 축였다고 상상해보니 (아니, 정말로 그랬을 수도 있으리라) 내 고향 한결 자랑스러워진다. 

 

콩밭은 비록 작지 않았지만 풀이 그다지 깃지 않아 (무성하지 않아) 우리 한 무리 젊은이들이 김매기엔 여유가 있었으므로 점심밥을 샘물로 먹은 후 신옥의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청했다.

    

이 때라는 듯이 말을 조리있고 재밌게 하는 신옥의 아버지는 쾌히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기록영화를 보는듯했다. 그때 이야기는 범 잡은 이야기 외에는 일반적으로 “광복 전에, 제정때에” 로부터 시작된다.

  

함경도 한 산골에 작지 않은 마을이 있었다. 이 산골은 좁았는데 길게길게 뻗어있다 하여 소꼬리마을 이라고 불렀다. 

  

이 마을에 여느 마을처럼 큰 지주가 있었다. 이 지주 집에는 일 잘하고 무던하다 못해 고지식한 머슴이 있었다. 그리고 제정 때라 이 산골에 항일지하조직이 있었는데 이 산골 유리한 지형을 리용해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였다. 이 조직의 령도자는 조직의 력량을 더 강화하려고 사람을 물색하던 중 지주집 머슴을 꼽았다. 그리하여 아랫사람을 보내어 그 머슴을 설복하여 조직에 가입시키려 했다. 수십 번 설복해보고 타일러 봐도 그냥 듣지 않았다. 리유는 한 가지 그 지주집 덕분에 먹고 사니 어데도 안 간다는 것이다.

 

조직에서는 머슴이라 성분을 믿고 어느 하루 강제로 결박해 갔다. 

  

머슴은 제 나름대로 열이 날대로 났다. 제 밥통 마슨다고 풀어놓자 머슴은 그길로 왜놈 경찰서에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가 본 얼굴 하나하나 죄다 일러 바쳤다. 

  

그날로 왜놈들은 마을을 포위하고 머슴을 앞세우고 하나하나 빠짐없이 붙들어 갔다. 그리고 마을사람 모아놓고 보는 앞에서 모조리 총살해버렸다. 이렇게 소꼬리마을 항일조직은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광복 후, 그 머슴도 다시 그 자리에서 투쟁 받게 되였는데 온 마을 사람들한테 아침부터 저녁까지 맞아도  죽지 않아 결국 저녁에 총살당했다.

 

간단한 이야기를 신옥의 아버지 말주변으로 소금뿌리고 양념 쳐가며  늘궈 붙이며 하다나니 한 시간도 더 넘게 들었다. 

  

그날 오후 기음은 줄곧 이름 할 수 없는 심정으로 맸다. 그렇다.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기념비인 우리 고향 연변 땅 그 어느 곳에 이와 비슷한 피어린 력사가 없겠는가. 그 어느 땅엔들 항일투사들의 피가 슴베여 있지 않겠는가. 

  

량수도 례외가 아니다. 산에서 남쪽을 내려다 보면 하서 마을이고 북쪽을 바라보면 남대마을이다. 량수항일조직은 이 두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역시 밀고로 몽땅 붙잡아다가 여기에서 십여리 떨어진 솔골이라는 산골에 끌고 갔는데 죄다 막에 가둬놓고 불로 태워 죽였다 한다. 량수항일조직도 하루아침에 없어졌다고 한다. (내가 퇴직한 후 량수중학교 력사를 편찬하는 일을 방조할 때 량수공사 당안자료에서 그 당시 사실과 사람이름까지 자세히 읽고 알았다.) 

    

문화혁명때 그 현지에서 그때의 장본인을 세워놓고 투쟁대회를 열었는데 나도 직접 가보았다. 

  

두 마을 사이 두고 솟아있는 네모꼴산 두 곳 항일투사들, 이 산마루에 모여 비밀회의를 열기도하였으리라. 이 밭도 항일투사들이 피로서 지켜온 밭이 아닐 수 없다.

  

아, 기억에 길이 남아 잊혀지지 않는 네모꼴산, 그리고 향기로운 장수샘물. 항일투사들의 넋을 안고 아름다운 네 모습, 오래오래 간직해다오!    

  

그 산마루 샘물가 기름진 밭 오늘은 어느 누가 씨 뿌리고 김매는지. 내 고향 조국강산 기름진 땅 한치도 묵지 말고 오곡백과 무르익어 길이길이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손홍범

  2021년  6월  16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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