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 계절을 맞이한 봄나무는 오늘도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면서 살랑대는 봄바람에 미끈한 몸매로 한들한들 춤을 춥니다. 춤곡이 없어도 춤이 절로 나오고 콧노래까지 흘러나옵니다.
“ 흠흠흠 ㅡ”
이때 저쪽에서 불시로 획ㅡ하고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나무의 가장 약한 아지가 상처 입었습니다. 상처 입은 아지는 당장 끊어질 상하며 나무에 매달려있었습니다.
“아이구 아파라. 그냥 이대로 둔다면 안되는데 어쩌지?”
안타까운 나무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외칠 뿐입니다. 저도 몰래 눈확에 눈물이 고입니다. 아까 지나가면서 아지를 상처 입힌 그 바람이 몹시 미워났습니다.
이때 한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지가 바람에 그네를 뛰는 것을 본 할아버지는 목에 두른 수건을 벗겨 내리시더니 그 아지를 나무에 대고 묶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각 나무는 저도 몰래 아픔이 사라졌고 그 할아버지에 대하여 뜨끈뜨끈한 감격이 솟구쳤습니다. 그리고 깊은 행복감에 빠졌습니다. 인류를 위해 베푼다고 이같이 아끼고 사랑해주니 말입니다.
나무의 행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때 또 저쪽에서 열두 살 쯤 되어 보이는 왠 여자애가 걸어오더니 핸드폰을 쳐들고는 그 할아버지의 장면을 “찰칵 ㅡ찰칵 ㅡ”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여자애를 향해 빙그레 웃으시더니 계속 하던 일을 끝내고는 떠나갔습니다.
나무를 이리저리 살피던 여자애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그 웃음은 어찌도 해맑고 밝은지 주위에 싱그러운 봄향기를 더해주는ㅇ것 같았습니다.
사진을 다 찍은 여자애는 가방에서 책과 연필을 꺼냈습니다. 잠간 깊은 사색에 잠기던 여자애는 돌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연필이 책 위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따금씩 머리를 갸웃하고 또 이따금씩 나무를 쳐다보는걸 보면 아마도 금방 목격한 일을 두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는 알고 있습니다. 그 시각 그 여자애는 섬세한 사유와 미끈한 필치로 한 폭의 아름다운 동화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아. 올해에도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야겠어.”
나무는 이렇게 야무진 결심을 다집니다.
나무는 이렇게 상상해봅니다. 인제 상처 입은 나무가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할아버지는 잊지 않고 찾아올 것이니 그때면 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여자애도 그때면 더 멋진 동화를 그리겠지? 기대에 부푼 나무는 봄바람의 애무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가면서 다시금 행복에 푹 빠져봅니다.
/박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