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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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12-27 20:12 조회370회 댓글0건본문
새벽에 싸락눈이 조금 내리는가 싶더니 눈이 그치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바람은 점차 기승을 부리며 문풍지를 붕붕 소리 나게 울리다가도 길가의 앙상한 나무 가지를 혹독하게 물어뜯고 있다.
창밖을 내다보는 내 몸까지 오돌 오돌 떨려 난다. 춥고도 지루한 겨울이다.
금년 겨울을 지내기가 더욱 힘이 드는 것은 이번까지 벌써 4차례의 몸살과 된 감기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나이 60이 되고 나니 몸이 한물갔다는 증거인지, 아니면 기후가 따뜻한 한국에서 20여년의 세월을 보냈으니 아직 추운 고향의 기후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아무튼 이 두 가지 모두 사달을 일으킨 것 같다.
오늘까지 4일째, 좋다는 감기약을 하루에 3번, 그것도 여러 가지 약을 섞어 먹다 보니 한 번에 한줌씩 먹으며 매일 링게르주사를 맞는데도 별다른 차도가 없다. 혹시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나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고 은근이 걱정이 돼서 어제는 택시를 불러 현 병원으로 갔더니 진단은 역시 몸살에 된 감기라고 한다. 괜히 헛돈만 쓰고 왔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매일 술 마시고 밤낮을 이어 가며 마작을 놀았었는데 까지 이따위 몸살에 감기까지 겹쳐 꼼짝달싹 못하고 혼자 집에 처박혀 있으니 무료하기가 저당 잡힌 초불신세가 되고 보니 복장에 불이 달릴 지경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바람은 아직도 나무 가지를 물어뜯고 있다만 나무는 창공을 치솟아 서 있다. 어찌 보면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앙상한 빈 몸 그대로 혹한 바람과 맞서고 있는 나무의 모습은 오히려 더 당당해 보인다.
문득, 바람에 부대끼고 있는 나무들 곁으로 가서 혼자 겨울나기를 하는 나무들처럼 나도 겨울바람과 한 번 겨뤄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용기를 내여 오리털 옷과 두터운 목도리, 털장갑, 마스크, 등으로 전신 무장하고 문을 나섰다.
겨울바람은 기다렸다는 듯 나의 온 몸을 물어뜯는다. 몸이 휘청거렸지만 참고 견디기로 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20여년 자란 수양버들 나무 밑으로 갔다. 땅을 스치며 휘휘 늘어진 가지들이 모두 바람이 부는 한 방향으로 쏠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처녀들이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빗으로 몽땅 뒤로 빗어 넘긴 모습과 흡사했다. 아내가 바자굽에다 심은 채송화, 접시꽃, 초롱꽃, 나팔꽃들이 얼마 전까지 늦가을 바람에 한들한들 거리며 오가는 길손들을 유혹하더니 역시나 계절의 섭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잎과 꽃이 떨어지고 모두 눈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겨울의 긴 터널이 매우 지루하고 아득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터 밭의 사과나무에 눈길이 멎는 순간 더럭 겁이 났다. 늦가을에 시장에 갔다가 2년생 되는 사과나무 묘목 3 그루를 사다 정성을 들여 심었는데 그 여린 것들이 이 혹독한 겨울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지는 않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재빨리 사과 나무 곁으로 다가가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여린 것들이 바람에 애처롭게 떨고 있는 모습이 꼭 마치 얼어 죽은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라 죽은 것만 같은 가지 하나를 골라 살짝 꺾어 보았더니 아뿔싸, 고 여린 것이 글쎄 파라디 파란 수액을 올리고 동면을 취하고 있지 않겠는가?
갑자기 몸에 열기가 오르고 기침이 나고 온 몸이 으슬으슬 추워 온다. 나는 재빨리 사과나무 곁을 떠나 쏜살같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시도해 본 문밖 외출이며, 겨울나무처럼 바람과 맞아보고 싶었던 오기가 한방에 무너져 버렸다. 길가의 백양나무들, 뜨락의 수양버들과 그 여리디 여린 사과나무 3그루는 끄덕도 않고 서 있는데 나는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왔다.
마당에 심은 나무들은 모두 내가 심고, 가꾸어 왔고 이곳, 저곳, 옮겨 심으며 나무들의 지배자로 자처했다. 그러나 나무들은 지배자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보다 더 큰 인내와 힘을 몸속에 지니고 있다.
앞으로 나는 해마다 겨울나기를 해야 하지만 내 몸은 점점 쇠잔해질 것이고 대신 나무는 해마다 더욱 당당하게 하늘을 치솟을 것이다. 저 여리디 여린 사과나무 3그루도...
나무와 함께 감당하는 겨울나기의 힘겨룸에서 나무의 능력은 더욱 위 길에 있고 인간은 그 때가 있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갑자기 한 무리의 새들이 겨울바람을 맞받아 하늘 높이 날아간다. /허명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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