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니 책상위에 “국어사전”이 놓여있다.
“새애기,이 사전은?”
“아버님, 오늘 서점에 들러 사왔어요.”
“고맙다.”
나는 두툼한 사전을 손에 들고 한 장씩 넘겼다.
40년 전, 나는 소와 같은 우직한 걸음으로 문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였지만 책을 끼고 다니며 계속에서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의 구조와 흐름을 느껴보고 조금씩 스스로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보면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때도 있고 적당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기 실력이 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원고 투고 후 편집장의 손에 들어간 순간 엄청난 수정사항들이 쏟아져 나왔고 고치고 또 고치고... 완성의 길은 엄청나게만 느껴졌고 글쓰기는 점점 어렵게만 느껴졌다.
1986년 료녕문보 김광명편집장께서 “조선말6권사전”을 들고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초라한 나의 집을 찾아 왔고 문학의 올바른 길로 인도 하였다. 덕분에 나는 몇 차례 문학상을 받았고 료녕문보 특약기자로 지내다 2006년 한국에 입국하였다. 한국에 와서는 붓을 던지고 돈벌이에 나섰다.
그렇게 15년이 지난 후 포기했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말도 정작 글을 쓰려고 하면 헛갈리는 경우가 있어 한참을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이를 며느리가 엿보았던 것이다.
나는 며느리에게서 손목시계, 팔찌 등 선물 받았지만 이 사전처럼 달콤하고 설레게 만들지 못하였다. 이 사전은 나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백년 넘은 천종산삼이다.
물론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살고 큰 지장도 없고 무리도 없다. 오히려 글을 쓰지 않으면 사는 것이 편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며느리가 준 선물을 옆에 놓고 글을 쓰니 너무 좋다. 늦은 나이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 같고 15년 동안 허송한 세월이 안타깝다.
나는 소설가가 되려는 것도 가슴을 후벼대는 수필을 쓰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결핍한 부분들을 채워가며 좀 더 나아가는 나의 삶을 살고자 한다. 오타가 나도 괜찮고 문장이 어색하면 어떠랴. 쓰고 나서 공유해야 오타도 발견하고 오류도 찾는다.
나는 며늘아기가 준 선물과 벗하며 쓰고 싶은 글 마음껏 쓰고 떳떳이 공유면서 그렇게 살아가련다.
/신석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