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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년 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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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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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5-25 01:04 조회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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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그래, 한 뉘 두더지처럼 땅만 뚜지다가 말겠소? 외국에 가서 씨원히 바람도 쏘일 겸 한 번 가 보기오.”

 

류기동은 친구 서명구를 보며 말하였다. 서명구는 솔밭 같은 눈썹을 쭝긋하며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느릿한 어조로 말하였다.

 

“거 참 좋은 생각이오, 그러나 우리 집엔 시시콜콜 앓는 아버지가 계시길래 난 지금 집을 떠날 형편이 못 되었소, 나는 고향을 지킬 것이니 당신이 먼저 가서 돈 한 마대를 벌어 오우, 나두 술 한 때 얻어 마시게 허…허….허….”

 

서명구는 농조로 말하고서 소탈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라, 내 많이 벌어 오문사 우리 둘이 미국에 유람을 가기오, 한 뉘 세상이 얼마라구, 내들 쓰베”

 

류기동은 울퉁불퉁한 오른쪽 주먹을 장알이 박힌 왼쪽 손바닥에 쿡 박으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허…허…이거 또 당신 신세에 내 세상 구경을 하잖겠는가?”

 

서명구는 통쾌하게 웃고서 여전히 농조로 응대하였다.

 

“그럼 기다리오, 내 몇 년 후에 돈을 한 마대 메고 와서 당신 앞에 탁 메칠게”

호언장담을 한 류기동은 며칠 후에 아내와 함께 외국에 갔다.

 

“우리도 아버님이 아니면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 가지고 와서 큰 시내에 들어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겠는데…”

 

류기동 부부가 고향을 떠난 후에 서명구의 아내 이복희는 매우 부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서명구는 측은한 눈길로 아내를 응시하며 웅숭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음,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는 속담이 있소, 내라구 왜 외국에 가서 뭉칫돈을 벌어 볼 생각이 없겠소? 우리 형편에 땅을 잘 다루어 민식을 해결한 다음 다른 궁리를 해야지”

 

“땅만 뚜져서는 돈이 얼마 나오겠슴까? 그래두 외국에 가서 벌어야 함다. 후유….”

아내 이복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남편을 보며 앞 머리카락이 날리도록 한숨을 길게 뿜었다.

“남을 너무 불버(부러워)마오, 내게 이런 궁리 있소, 들어 보겠소?”

서명구는 솔밭 눈썹을 쭝긋하며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예? 무슨 묘한 방법이 있길래?...”

이복희는 갸름한 달걀형 얼굴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운 눈으로 남편을 빤히 쳐다 보았다.

 

“어험……”

서명구는 헛기침을 하고서 신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원래대로 농사를 지어 놓고 난 농한기에 시내에 들어가서 동력삼륜차를 사서 택시 영업을 할 작정이오.”

 

“예? 무슨 돈으로 차를 사자구? 또 기술이 없는 당신이?......”

이복희의 커다란 두 눈은 휘둥그레 졌다.

 

“돈이사 꾸면 되지, 운전기술은 배우면 되구”

서명구는 이미 면밀한 타산이 있었는지라 자신 있게 말하였다.

 

“예? 이제 베와서? (배워서)”

이복희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라두 늦지 않소. 당신은 뭐 아이를 낳아 보구 시집을 왔소? 허…허…허….”

서명구는 농조로 말하고 상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이, 와누르…그것과는 다르지”

이복희의 얼굴은 불그스름해졌다.

 

서명구는 자기의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해나갔다. 종전대로 농사를 지어 놓고 농한기에 시내에 들어가서 동력삼륜차로 택시영업을 하였다.

 

“당신이 정말 고생이 많았슴다, 인젠 한 숨 돌리게 되였슴다.”

3년 만에 시내에 간이음식점을 꾸려 놓고 문을 열던 첫 날 이복희는 남편을 보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하였다.

 

“음, 당신두 무세(무척) 고생했소, 좀 더 고생하느라면 앞이 보일게요.”

서명구는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서글서글한 눈을 슴벅거렸다.

 

6년이 지난봄의 어느 날, 서명구와 류기동은 식당 앞에서 만났다.

 

“어허, 참 오래간만이구만, 이게 몇 년 만인가? 어, 그렇지 6년 만이구만”

서명구와 류기동은 웃으면서 얼싸 안고 빙 돌았다.

 

“자, 오늘 저녁은 영업을 스돕쁘하고 나와 같이 노래방에 가기오, 내가 한 방 쏠게”

류기동이 하도 극진히 청하기에 서명구네 부부는 식당문을 닫고 월계화 노래방에 갔다. 류기동은 모태주를 유리컵에 부어 놓고 만면에 화색을 지으며 물었다.

 

“서 로반(주인)이 이런 술을 못 마셔 봤지? 난 양주랑 수두룩이 마셔봤단데, 어험, 자, 위하여!"

류기동은 오만한 음성으로 말하고 술잔을 들었다.

 

“음, 거 술맛이 좋군, 6년 만에 만나니 많이 달라졌네”

서명구는 불쾌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짐짓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그럼, 달라져야지, 맨날 그 잘난 똥빼주만 마시겠소? 당신도 이젠 쪼꼬만 식당을 때려치우고 외국에 가서 떼돈을 벌란데, 맨날 쥐처럼 한 구멍만 뚫겠소? “

류기동은 술이 서너 순배 돌자 훈계조로 말하였다.

 

“그래도 고향의 술이 좋지”

서명구는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고향? 고향이 당신에게 무얼 주었길래? 그 잘난 엉덩짝만한 땅? 비달비달하는 쇠(소)새끼? 핫….하….하….”

류기동은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나서 연장자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 말을 이었다.

 

“어험, 내 새지(송아지) 동미(친구)니까 이렇게 찾아온거요, 시방 돈이 없으면 사람 축에 못 든단데, 맨날 두더지마냥 땅만 뚜지구사 언제 번신을 하겠소? 아버지를 경로원에 맡기고 당신네 부부가 외국에 가서 몇 년간 버는 게 옳은 선택인거요.”

 

“음, 구수한 흙냄새 아이 좋소? 향수 같은데”

서명구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농조로 응대하였다.

 

“하, 하, 아직도 촌놈 냄새 물컹물컹 나는구만, 에이 나 원, 못 놀겠소, 시시해서 못 놀아”

류기동은 휘청거리며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고 작별 인사도 없이 비척비척 가버렸다.

 

“다시는 이런데 오지 맙시다, 사람을 보기는 영 우습게 봄다.”

이복희가 분김에 쌔근덕거리는 바람에 풍만한 가슴이 들먹거렸다.

 

“취해서 저러겠지”

서명구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하였다.

 

“외국에 갔다 오더니 와누르(완전히)변했슴다.”

이복희의 어조에는 실망이 스며있었다.

 

“음. 돈이 뭐길래…”

서명구는 솔밭 눈썹을 쭝긋거리며 나지막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 나그네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슴다, 아버지를 경로원에 맡기고 우리도 외국에 가서 버는게 옳챔까?”

 

며칠 후 이복희는 남편을 쳐다보며 상론조로 물었다.

 

“음, 우리 좀 더 고생하여 돈을 모아서 좀 더 큰 식당을 꾸리기오.”

서명구는 웅숭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이렇게 벌어서 어느 천년에 큰 식당을 꾸린다고 그럼까? 후유….. ”

이복희는 아름이 차다는 듯이 맥없이 한숨을 길게 뿜었다. 사람의 생각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그날 류기동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이복희는 갑자기 외국에 가고 싶어 하였다. 아내의 실망이 어린 말을 들은 서명구의 마음은 저으기 무거워졌다. (그래 딱 외국에 가야만 많은 돈을 번단 말인가? 그럼 만약 외국으로 가는 바람이 없다면 우리 모두 한 뉘 가난뱅이로 산단 말인가?)

 

“뿡…. 치익…”

어느 날, 경적소리가 울리더니 류기동이 자가용차를 서명구네 간이식당 앞에 세워놓고 팔자걸음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회색양복에 넥타이를 곱게 매고 테 넓은 선글라스를 낀 류기동은 신사 스타일이였다. 그는 비좁은 간이식당을 대충 눈 빗질 하고서 코를 실룩거렸다.

 

‘난 어제 시내에 120평방되는 새 아파트를 사 놓았소, 음, 그리구 새 차를 사서 이곳저곳 시찰을 다니오.”

거만한 음성으로 말을 마친 류기동은 야릇한 눈길로 이복희를 힐끔 보며 한 쪽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이복희는 얼굴이 불그스름해졌고 가슴이 두근두근림을 느꼈다. (왜 저런 눈길로 날 볼까? 그저께 아내와 이혼을 하더니만 남자들이란 참.)

 

2부

 

(미안합니다. 전 이런 생활이 이젠 진저리납니다. 그래서 외국에 가서 시원히 돈을 벌면서 살겠으니 절 찾지 마십시오. 이복희)

 

어느 날 이복희는 집에 쪽지 한 장을 달랑 남기고는 수증기마냥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엉?!....”

이거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서명구는 류기동이 왔다가 간 다음에 아내가 걸핏하면 짜증을 부리고 외국타령을 부르는 것을 보고 낌새가 좋지 못함을 직감하였으나 사태가 이렇게 급속히 악화될 줄은 몰랐다.

(사람이 왜 이리도 빨리 변하는지 내가 눈치 너무 무디였구나)무릎을 탁 치며 한탄하는 서명구의 커다란 눈에 비분의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후유…. 세상에 믿을 놈이 없구나, 앙깐(아내)두 동미두(친구)…..”

쌀 쏟은 자루마냥 구들에 척 드러누운 서명구는 망연자실한 눈길로 천장을 응시하였다. (참 지독한 년이구나 돈에 환장을 하여 혈육을 버리고….)

 

류기동과 눈이 맞은 이복희는 외국에 가서 셋방을 얻어 살림을 꾸리고 어느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였다. 12시간 팽이처럼 돌아쳐야 하였고 늘 주인의 잔소리와 꾸지람을 들으며 일하는 그녀는 스트레스를 받군 하였다. (나 괜히 왔구나) 이복`희는 때로는 후회를 하였다. 그러나 이미 쑨 죽이 밥이 되랴?

 

“엄마 소식이 있슴까?”

고중생인 딸 서애화는 거의 매일 아버지에게 물었다. 서명구는 그저 머리를 저으며 긴 한숨을 뿜을 뿐이였다. 서명구는 일손이 부족하여 간이식당 영업을 정지하고 다시 동력 삼륜차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아버지, 제가 학교를 그만 두고 식당 일을 도우면 안 되겠습니까?”

어느 날 서애화는 정색을 하며 서명구에게 물었다.

 

“무스게라니? 너, 너 정신이 있니?”

서명구는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잇, 참….흑…흑….”

며칠 동안 고민의 수렁 속에서 모대기다가 요행 강심을 내리고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청시하였는데 청천벽력 같은 질책을 들은 서애화는 너무도 억울하여 훌쩍거렸다.

 

“후유…. 네 심정은 알만하다. 그러나 한창 공부할 나이에 공부를 그만 둔다는게 어디 될 소리냐? 좀 고생을 더 하더라도 끝까지 공부를 해야지”

서명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길로 딸을 보며 신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전, 전 엄마가 간 다음에 아버지가 혼자서 너무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서….”

서애화는 울음 섞인 어조로 말하였다.

 

“음, 괜찮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법이야”

서명구는 수건으로 딸의 눈물을 닦아 주며 웅숭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엄마는 정말 량심이 없슴다, 간다 온다는 말도 없이 훌쩍 떠난게 감감 무소식이니 말임다.”

서애화는 원망조로 말하였다. 서명구의 속은 여름날의 감주독마냥 부글부글 괴여 올랐지만 애써 평온한 기색을 짓고서 무거운 어조로 말하였다.

 

“음, 그건 그렇다 치고 가난은 수치다, 그러니 넌 딴 생각 말고 공부를 명심하여라, 가난의 모자를 벗어 버리자면 맨 뚝심으로만 안 된다.”

 

“예.”

서애화는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날 하학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반의 남자 동창생이 서애화를 보며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롱하였다.

 

“고아, 고아, 절반짜리 고아, 쌍통, 맹통 꼬부랑통, 영감 노친 담배통……”

 

“너 뭐이라니?....”

서애화는 너무나 격분하고 창피하여 그 애의 얼굴에 침을 탁 뱉었다.

 

“에이씨…..”

그 남자애는 욕설을 퍼부으며 서애화의 뺨을 찰싹 후려 쳤다. 서애화는 독학으로 익힌 방어 동작으로 그 남자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내리 당기며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들이받았다.

 

“아이쿠…”

그 남자애는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우야!....”

지나가던 행인들이 경탄을 올렸다. 서애화는 쌔근덕리며 허둥지둥 집에 달려갔다. 자기 방에 들어간 그는 구들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애화야 무슨 일이 생겼니?”

서명구는 깜짝 놀랐다.

 

“흑…흑….전 학교를 그만 두겠슴다.”

서애화는 울음 섞인 소리로 말하였다.

 

“또, 또, 너 왜 자꾸 이러니?”

서명구는 수건으로 딸의 눈물을 닦아 주며 차근차근 물었다. 서애화는 울먹거리며 사연의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음, 음, 네 심정은 알만하다, 그런데 요만한 일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말이냐? 너 참새 마음이구나, 살아가자면 강해야 한다, 공부만 잘 해서 되는게 아니야”

서명구는 정중한 어조로 타일러 주었다.

 

“호…. 엄마는 언제 돌아오겠는지?....”

서애화는 한숨을 뿜고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종알거렸다.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보는 서명구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지독한 년 만나기만 해 봐라 뻬대(뼈)를 뚝 끊어치우겠다.) 딸애의 가련한 궁상은 서명구의 가슴속에 아내에 대한 증오의 씨앗을 더 심어 놓았다.

 

“엄마! 엄마!......”

밤중, 어느 때쯤 되였는지 갑자기 서애화가 새된 소리를 지으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애화…”

서명구는 잠에서 소스라쳐 깨여 났다.

 

“아버지, 저 금방 무서운 꿈을 꾸었슴다, 글쎄 엄마가 강물에 떠나려 가잼까?.....흑…흑….”

악몽에서 소스라쳐 깨여난 서애화는 흐느끼며 멍한 눈길로 서명구를 응시하였다.

 

“후유…...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일이 이렇게 된 바에는 자꾸 엄마 생각을 하지 말거라.”

서명구는 한숨을 길게 뿜고서 위안조로 말하였다.

 

“저도 마음을 도슬러 먹는데 아이 됨다, 자꾸 생각이 떠오름다.”

서애화는 눈물이 가랑가랑 맺힌 눈으로 서명구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였다.

 

“엉?! 그건 무슨 소리냐?....”

옆방에서 부녀지간의 대화를 들은 서명구의 아버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예, 저…..”

서명구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중풍에 걸려 누워 계시는 아버지가 근심에 쌓이면 병세가 악화 될까봐 아내가 가출한 것을 ‘비밀’에 부치고 남방으로 옷 장사를 떠났다고 ‘허위 보고’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종이로 불덩이를 감쌀 수 없는 법이다. 아버지가 낌새를 알아 차리니 서명구는 부득불 이실직고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엉?!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야? 어이쿠….윽….욱….”

 

“아버지!.....”

“할아버지!...”

부녀의 애처로운 부르짖음 소리가 밤의 고요를 깨뜨렸다.

 

서명구의 아버지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는데 그길로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엄마는 정말 량심이 없슴다, 후에 돌아 와도 집에 들이여 놓지 맙시다.”

장례를 치른 이튿날에 서애화는 서명구를 보며 비감한 어조로 말하였다.

 

“음? 음….”

울어서 두 눈이 통통 부어오른 서명구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지독한 년 칼탕을 쳐도 씨원찮을 년) 서명구는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아버지 제가 학교 숙사에 가서 있고 아버지가 외국에 가도 되지 않겠슴까?”

어느 날 서애화가 서명구를 보며 상론조로 물었다.

 

“음? 아니, 네가 대학에 간 다음 다시 보자”

서명구는 신중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가난하면 남들이 업신봄다.”

서애화는 나지막한 어조로 말하였다.

 

“음, 2년 후에 다시 보자꾸나. 너 근심 말고 공부를 잘 해라.”

서명구는 물기 그윽한 눈을 슴벅거리며 웅숭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예”

서애화는 까만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서 동무 한 잔 할까?”

어느 날 저녁 한 동료가 서명구를 보며 물었다.

 

“저 나 술을 이미 끊었소.”

서명구는 벙싯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안마방에 가서 놀까?”

그 동료는 한 술 더 떴다.

 

“허…허….그런 데를?.....”

서명구는 ‘좁쌀’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무작정 거절하지 못하였다.

 

“얏따, 좀 자르기는? 앙깐도 없는 게 뭐 볼게 있소? 화끈하게 놀아야지. 돈을 자꾸 벌기만 해서 무얼 하오?”

그 동료는 핀잔조로 말하였다.

 

“후에 미국에 가서 돈을 한 마대 번 다음 보기오, 허…허….”

서명구는 칼로 무를 썩둑 베듯이 동료의 제의를 거절하기 면구스러워서 농조로 말하고 허구픈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구, 딸이사 후에 시집을 가면 그만인데, 무얼 그리두 아글타글 하오?”

동료는 리해 되지 않는다는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양? 뭐이라오? 딸은 그래 자식이 아니란 말이오?”

서명구의 언성은 갑자기 높아졌다.

 

“아, 아이, 아이….”

그 동료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구럭에서 빠져 나가는 게 마냥 비슬비슬 물러갔다.

 

“후유…..”

서명구는 한숨을 길게 뿜었다. (아들이나 딸이나 어떻게 배양하기 달렸지)

 

“저 나그네는 좁쌀이란데, 오장디(오쟁이)가 그렇지 뭐 흐, 하….하……”

한 동료의 야유와 너털웃음을 소리가 서명구의 귀뿌리를 짱 쳤다.

 

“무엇이?!....”

서명구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 동료를 쫓아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우러러 어설프게 웃었다. (그 미친년을 만나기만 해 봐라 뻬대를 뚝 분질러 놓을거야) 서명구의 가슴속에서는 용암이 부글부글 괴여 오르고 있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온 몸을 황황 달구고 있었다.

 

몇 달 후, 류기동에게 돈을 사기당하고 헌 신짝처럼 버림을 받은 이복희는 염치불구하고 서명구를 찾아와서 무릎을 꿇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애화를 봐서라두, 흑…흑…..”

 

“무엇이?! 어느 때는 제 새끼두 버리구…. 에익 미치년!...”

서명구는 불붙은 황소마냥 길길이 뛰더니 이복희의 귀뺨을 불이 번쩍 나게 후려쳤다.

 

“흑….흑… 절 죽여주시오. 흑…흑…”

 

“아버지 그만 하시오.”

서애화는 서명구의 손을 꼭 부여잡고 이복희를 호되게 꾸짖었다.

 

“량심이 있슴까? 할아버지는 속이 타서 돌아갔슴다.”

 

“엉?!.....”

이복희는 화들짝 놀라더니 부시시 일어나서 구슬피 울며 비척비척 걸어갔다.

 

며칠 후의 어느 날, 서명구가 차를 몰고 시내를 누비는데 백화상점 앞에 쓰러져 있는 웬 여인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제동기를 밟았다. 그가 차에서 내려 쓰러져 있는 여인 곁에 이르러 보니 리복희였다. 서명구는 독사를 본 듯이 소름이 오싹 끼침을 느끼며 걸음을 뚝 멈추었다. (하늘이 징벌을 내리는구나) 그는 깨 고소해 하며 돌아섰다.

 

“이건 웬 년이냐?”

웬 주정뱅이가 휘청거리며 지나가다가 방뇨를 하려고 이복희의 곁에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무엇 하는 짓거리냐?”

이 광경을 얼핏 본 서명구는 벼락 치듯이 소리를 치며 바지가랭이에 회오리바람을 일구며 씽하니 달려가서 그 주정뱅이를 밀쳐 버렸다. 그리고는 이복희를 닁큼 안아 차에 실었다.

/허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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