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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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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6-23 19:50 조회4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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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춘향아빠

우선 당신이 40여년의 직장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은퇴하신 걸 충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입사한다고 기뻐하던 날 어제 같은데 어느새 40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어 일자리를 떠나다니 세월의 흐름은 유수와 같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어떻게 보면 이 40년은 특히 령도강위에서 근무하던 십여 년은 당신이나 나한테 있어서 보람차고 휘황하면서도 또한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돛배를 타고 항해하듯이 흔들리고 부대끼는 힘겨운 고난의 여정이기도 했지요.

 

갓 입사했을 때, 나이도 어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칼날 같은 당신 성격 때문에 직장 동료들과 종종 마찰이 생기군 했지요.

 

당신 지금도 생각이 나시지요?

 

호사부(胡师傅)가 나어린 당신을 못마땅하게 대하는 눈치를 채고는 술김에 그분한테 예의바르지 못한 언사를 내밭았고 또 그것이 불씨가 되여 서로 과격한 몸싸움을 해서 그분이 머리에 상처를 입어서 의원에 가서 봉합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아버님 어머님이 당신을 앞세우고 사부(师傅)한테 가서 엎드려 손이야 발이야 빌고 치료비 치르고 직장에 반성문을 쓰는 일대 소동을 치르고서야 한차례 화약 없는 전쟁이 시말을 지었지요.

 

그 뒤로 오래 동안 당신한테는 싸움 잘한다는 딱지가 붙었고 그리하여 당신의 창창하던 앞날에 먹장구름이 덮여서 발전과 승진의 기회는 계속 당신을 비껴갔지요. 하지만 정의감에 넘친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열심히 사업했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아래 사람을 사랑하고 윗 어른을 존중하면서 업무능력을 키워서 몇 년 만에 기층단위의 소장 직책을 맡았고 또 상급에서 맡겨준 지표와 각항 임무를 충실히 완성함으로서 해마다 국 선진반조, 선진생산자, 업무능수 등 칭호도 수여받았고 드디어 상급의 신임을 얻어 국판공실 주임으로 임명되었지요. 당신은 상급의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몇 년을 하루같이 밤낮이 따로 없이 일하면서 보람찬 나날을 보내면서 승승장구 했지요. 그때 나는 얼마나 기쁘던지.

 

하지만 이 기쁨이 순식간에 바람같이 날아갈 줄이야...

 

하늘의 조화인지 운명의 희롱인지 꿈에도 생각 못 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또 한 번 우리를 궁지에 몰아갔지요. 그때 한심하고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던 일이 지금도 안 잊어져요. 아니 영원히 잊을 수도 없구요.

 

새로 부임된 국장님께서 한족이 다수인 단위에서 조선민족이 주요한 부서에서 일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또 자기보다 연령이 많고 성격 만만치 않은 사람과 함께 일하기 불편하다는 등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내세워 자기의 가까운 사람과 자리바꿈 시키는 바람에 당신은 하루아침에 영도자리를 떠나서 기층에 내려가는 그런 시나리오가 만들어 졌지요. 이 소식에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었지요.

 

일락천장 신세가 된 당신은 홧김에 드러누웠고 고혈압과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였고 그렇게 며칠, 화는 쌍으로 온다고 하더니 아버님이 폐암 진단을 받고 연변종양병원에 입원하셨고 또 그렇게 한 달 만에 어머님이 자궁암 진단을 받고 시병원에 입원하셨지요. 대학입시를 눈앞에 둔 춘향이도 아빠의 억울함 때문에 계속 속상해 울더니 어느 날 갑자기 열이 몹시 올라 연변병원에 실려가 치료 받아야 했구요. 그리고 그 당시 직장 재회과에서 회계주관 업무를 맡아보던 제가 국 영도의 경제문제를 조사하는 사건으로 매일같이 검찰에 불려 다니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치네요. 그때 우리가 겪었던 고통은 한입으로 말할 수 없었지요.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등 돌리는 사람, 냉대하고 뒤에서 쑥덕공론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평소에 쌓아왔던 인맥과 마음 착하신 친구, 동료, 지인들께서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주셨고 당신의 손을 잡아주시고 이끌어 주었지요. 은혜로운 분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당신은 사나이답게 훌훌 털고 일어나 쓰러진 자리에서 꼭 다시 일어나겠다는 오기를 품고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일터에 가서 직함이 없는 직원으로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면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을 도와서 참모작용을 잘 하여 직원모두가 환영하고 영도에서 손꼽는 모범단위로 되는데 자기의 힘을 이바지해서 영도의 좋은 평가도 많이 받고 그에 따르는 영광도 받아 안았어요.

 

그리고 낮에는 출근하고 밤이면 병원에서 부모님 간병하며 유명한 의원, 유명한 교수님들이 좋다고 추천하는 명약은 모두 대접하고 두 분이 후회 없이 하늘나라에 가실 때까지 정성들여 효도했어요.

 

또 형제자매 들이 모두 외국에 거주하는 특별한 가정 상황에 대비해 그들의 후근을 도맡아 주고 국내에서 해결해야 될 모든 곤난과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 해주고 또 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챙겨줌으로서 형제자매들이 이국땅에서 마음 편히 생활하도록 도와 주었고 지금도 그 일은 쭉 이어지고 있지요.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동안 부모님 총애만 받고 자란 당신이 그 강직한 개성 때문에 황련보다 더 쓴 고배도 맛보았지만 그래도 직위의 높낮음에 연연하지 않고 사나이답게 잘 견뎌내고 직장에서 인간적으로 높은 존중받고 또 한해에 몇 차례씩 통과해야하는 업무 시험 때마다 일등을 자리매김하고 또 가정에서는 아버님 어머님의 자리를 대신해 형제들과 가족에게 쉼터가 되고 바람막이를 하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춘향이가 외국에서 석사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떳떳한 사회인으로 되기까지 그리고 좀 더 부유한 삶을 영위해가려는 우리 욕망 때문에 우리 식구가 겪어야 했던 것은 단지 생활고만이 아닌 고통과 그리고 무서운 고독이었으나 당신이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잘 버텨주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비록 몇 십 년을 피땀으로 지켜왔던 직장생활에 다시 돌아 갈수 없다는 현실 앞에 서글프고 아쉬움도 많이 남겠지만 이제 인생의 제1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기대와 희망으로 부푸는 인생의 제2막이 바야흐로 열렸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희사가 아니겠어요.

 

고진감래(苦尽甘来)라 이제 우리 앞에는 향수할 일만이 남았습니다. 우리 손에손잡고 어깨 나란히 애들이 보고프면 애들 보러 형제들이 그리우면 형제 보러 국내든 국외든 산이든 바다든 가고 싶은 곳, 가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았으니 여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후회 없이 그리고 멋지게 살다가 갑시다(술 좀 줄이고 담배는 꼭 끊읍시다)

 

춘향아빠 저요 우리의 앞길이 꽃길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로 부터

 

2020.03.27

천진에서

/김봉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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