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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여생을 보람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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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4-18 01:45 조회6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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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박일송 양주의 음악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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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왕청현제5중학교에서 수학교원으로 근무하던 김해자교원은 2001년에 정년퇴직하고 중풍으로 앓는 남편의 병간호에 정력을 기울였다.

 

길림성 왕청림업국에서 ‘묻지마’퇴직을 당한 남편 박일송 씨는 52세 젊은 나이에 심리타격으로 시름시름 앓더니 4년 후에는 한해에 두 차례나 뇌혈전으로 쓰러졌었다. 상해병원만 다섯 번을 다녀왔고 북경병원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번마다 김해자선생은 의사이자 간호사로 한시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병이 발작할까봐 시시각각 신경을 도사렸다. 하다보니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점적주사를 맞은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비록 남편이 중풍으로 한쪽 청력을 잃었지만 능히 생활을 자립할 수 있게 된 것을 보고 김해자교원은 남편을 살려낸 기쁨으로 뜨거운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구사일생으로 살려낸 남편에게 김해자선생은 좋다는 건강식품은 다 사다 대접하였고 가고 싶다는 곳은 다 모시고 돌아 다녔다. 2004년에는 1만 2000원을 들여 한국 제주도를 유람했고 해남도 등지로 국내유람도 한 달간이나 다녀왔다.

 

그들 내외는 운동을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낮에는 등산도 하고 남새밭을 가꾸기도 하였으며 장기두기, 훌라후프 돌리기, 류력구 돌리기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건강을 챙겼다. 김해자선생은 왕청5중 노인협회에서 선전위원으로 활약하고 남편 박일송씨는 왕청현 작가협회에서 작곡회원으로 활약하면서 매일의 스케줄이 팽팽했지만 운동을 그만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책에서 병치료에는 음악이 최고라는 글을 읽게 된 김해자선생은 남편과 상의하여 손풍금을 샀다. 남편은 전에 바이올린을 켠 적이 있어 금방 손풍금을 배워냈지만 악보도 모르는 음치나 다름없는 김해자선생은 전자풍금학습독본을 보면서 기초부터 하나하나 익혀가야 했다.

 

두 내외는 날마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률을 듣기도 하고 우아한 곡의 리듬을 직접 타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음악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드디어 작사·작곡하기 시작했다.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이 쓴 작곡집을 ‘선생’으로 모시고 작곡묘방을 찾았고 작사비결을 탐색해나갔다. 그들은 이렇게 지금까지 근 60여개의 노래를 작사·작곡했다.

 

2008년 봄에 김해자선생이 작사하고 남편 박일송씨가 작곡한 ‘대대손손 이 땅을 가꿔가리’가 연변주 진달래컵 응모에서 우수상을 받아 안았다. (‘로년세계’2007년 제5기에 실림)

 

요즘 그들 부부가 근 20여 일간의 노력으로 작사·작곡한 노래 ‘来杆一杯延边米酒吧’(‘연변막걸리를 한잔 드세요’)가 또 연변주 ‘진달래신인작품상’을 받았다.

 

그들이 작사·작곡한 ‘红旗啊, 红旗’(‘붉은기여 붉은기’)는 왕청현문련에서 2008년 연말에 주최하는 음악공연 최종선택 10수에 뽑혀 왕청현가야하예술단의 합창으로 지정되었는데 합창지도에 그들 부부는 합창대를 지도하느라 땀동이도 쏟았다.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게 되어있는 법이다. 건강이 목표인 김해자부부는 오늘도 역경을 이겨내고 여생을 건강하게 보람차게 보내고 있다.

/리강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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