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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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4-15 02:12 조회508회 댓글0건본문
선생님! 지난겨울 건강이 좋지 않아 현 중심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연을 접하고 병문안을 갔을 때 몰라보게 수척해진 선생님의 모습에 걱정하는 저에게 "나이가 들면 다 그렇지" 하며 병환에 계시면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소탈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영 잊히지 않습니다.
40년 세월을 오직 교직에만 몸 받쳐 일하시하더니 퇴직 후에도 자식들의 거듭되는 만류도 뿌리치고 여전히 당신은 당신의 고질병인 위병과 사우면서 불편하신 몸이면서도 오히려 더 당당한 모습으로 교단에 나와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더니 인젠 자주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이를 어쩝니까. 선생님의 세월이 벌써 이렇게 되었음이 안타깝습니다.
누구에게나 선생님이 존재하고 있겠지만 매사에 원칙이 있을 뿐 적당하게가 통하지 않았던 선생님은 저에게 학교에서 지식만을 가르쳐 주는 데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문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는 저에게 자주 전화도 해주고 때론 찾아도 주면서 제가 살아가는 인생의 고비마다 삶의 향도로 믿음직한 기둥으로 되어 주셨습니다.
항상 인자하셔서 편안했던 선생님은 때론 무섭게 학생들을 다그친 적도 있습니다. 항상 바르게 생각하여 행동하고 참되게 살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 40년 전에 있었던 일은 오늘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참 부끄럽습니다.
제가 소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반주임이면서 어문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어느 날 어문 시간에 저의 옆을 지나면서 누구도 모르게 조그맣게 접은 딱지를 제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제가 살그머니 그 딱지를 펼쳐보니 하학하고 곧바로 교무실로 오라는 명령이나 다름없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죄진 놈이 쥐구멍을 찾는다고 숨어지겠습니까.
지난 일요일, 제가 저와 두 반 아래, 2학년에 다니는 동생이 한반의 몇몇 애들로부터 우리 집이 동네에서도 제일 째지게 못산다고 늘 놀림가마리가 되고 늘 깔보고 자주 때리기도 한다 기에 그 애들을 호되게 때려 주었던 일을 선생님이 진즉에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학하고 잔뜩 주눅이 들어 교무실을 찾은 저에게 "일요일에 왜 그랬느냐? "고 다그치셨습니다. 나는 아무 항변도 하지 않고 선생님의 벌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당장 그 애들 부모를 찾아가서 잘못을 사과하고 집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믿는다. "고 하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학하고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내가 때린 아이들과 애들 부모에게 잘못을 빌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날 이후 '너를 믿는다.'는 그 짧은 말씀의 화살 한 대가 내 가슴 깊숙이 박혀 40년 세월이 흘러간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때론 삶의 십자길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때로는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사업과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감을 잃고 있을 때, 선생님의 그 짧은 한마디는 나에게 거대한 원동력이 되었고 등불로도 되였고 더러는 햇빛으로도 되여 오늘날 매사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착한 마음과 바른 자세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저를 있게 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선생님의 그 믿음으로 저의 자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생님,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이제 며칠 후이면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한다고 하니 참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한 달 후면 저의 생일이 돌아옵니다. 그때가 되면 뜨락의 앵두나무와 살구나무, 사과나무에서 폭죽처럼 화사한 꽃이 터질 것이고 또 선생님의 건강도 완쾌될 것이니 그날 선생님을 모시고 꽃향기 물씬물씬 풍기는 뜨락에서 좋아하시는 약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그날 선생님과 저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마주 앉은 술상에서 이번에는 저에게 더 큰 소리와 더 큰 믿음을 가르쳐 주십시오. /수원시 허명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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