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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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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3-13 13:36 조회5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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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월 어느 날, 나는 고향 지인분의 결혼식초청장을 받고 ‘명품웨성프로즈3층 글로리홀’ 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결혼식장은 벌써 하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동네분들과 따뜻한 인사말을 나누었다.

 

“신선생님, 아니십니까?”

 

옷차림도 깔끔하고 예쁘장한 마흔 살이 넘는 여인이 나에게 깎듯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누구신지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낯선 분이었다.

 

“선생님, 제가 바로 황전옥 입니다.”

 

“아니, 전옥이라고?”

 

나는 37년 만에 제자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 그해 전 길림 모촌에 이사하여 새아버지를 만났어요. 전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룡정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지금은 교직에서 나와 상해에서 남편사업을 돕고 있지요.》

“아, 하늘이 돕고 있었네.”

 

“선생님,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저의 성장에 살뜰한 부모 같은 선생님을 찾아뵈려고 고향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무순조중으로 전근 하였다하여 선생님을 뵙지 못하였지요.”

 

“오. 그러가?”

 

혼례가 시작되어 서로 연락처를 남기고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사회자가 알려주는 식순에 따라 주례는 신랑·신부가 새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으로 주례사를 한다. 순간 나는 주례의 말이 들리지 않고 깊은 사색의 세계에 끌러 들어섰다.

 

바로 1985년 8월 3일, 사범학교를 졸업한 나는 새학기가 시작되자 유아학급을 담임하였다. 개학날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을 잘 치장시켜 가지고 학교에 찾아와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들을 하는 것 이였다. 그러나 황전옥학생만은 낡은 책가방을 메고 머리카락은 흩어져 새둥지를

방불케 했다. 참말 보기 드문 차림새였다.

 

그의 아버지는 70년대에 해방군에 입대하여 3년 동안 북경에서 땅굴을 파다 제대하여 고향에 와서 농민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허약한 몸에 도수 높은 근시안경을 끼고 다녔고 그의 집 생활은 겨우 입에 풀칠하는 형편이여서 불쌍한 것은 자식들이였다. 교원인 내가 황전옥학생을 얕보니 자연히 전반 학생들도 그를 몰아주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에 나는 가정방문하러 그 학생의 집뜨락에 들어섰다. 땅속으로 거의 다 잦아들 듯 앉은 초가집에다 전기세를 내지 못하여 전기가 끊겨 밤마다 등잔불을 밝혀놓고 사는 형편 이였다. 나는 등불아래서 전옥이 아버지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황전옥 학생이 4학년 때였다. 초저녁 그가 노크하면서 들어서는 것이였다.

 

“선생님, 식사하셨습니까?”하며 깍듯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오, 전옥이구만. 무슨 일이 있소?”

 

그러자 그는 겨우 입을 떼였다.

 

“선생님께 동화책이 있습니까?”

 

“오. 성인들이 보는 책들이지 동무가 볼 책이 없소.”

 

그러자 그는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아내는 나를 원망하였다.

 

“여보세요. 그 책궤에 동화책이 있는데 왜 빌러주지 않아요?”

 

“당신도 참, 저 학생에게 빌려줘서 무슨 덕을 보겠소.”

 

“뭐요? 잘사는 집 아이가 왔다면 벌떡 일어나 찾아준다는 애기죠?”

 

나는 목이 꺽 막히고 말았다.

 

(그렇다. 잘사는 집 아이는 어떻고 못사는 집 아이들은 어떤가? 그들은 모두 내 학생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학습 성적이 좋은 황전옥 학생을 그 어떤 경연에도 참가시키지 않았다.)

 

나는 생각할수록 자책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 이튿날, 나는 동화이야기책을 가지고 가서 황전옥 학생에게 주면서 참답게 읽어보라고 말하였다.

1989년 초겨울 그의 아버지는 고혈압병으로 병원도 못가보고 42살에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 전 학교를 안다니겠어요.”

 

전옥학생의 퇴학청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눈병때문에 농사일을 제대로 못하기에 그가 학습과 생활의 두 마차를 동시에 몰고 간신히 살아가야할 형편이었다.

 

“전옥이, 소학교는 졸업하여야지.”

 

“어머니 그 몸으로 어떻게 농사를...”

 

“일찍 집으로 보낼 테니 꼭 학교를...”

 

그 후 전옥학생은 계속 학교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의 일요일이었다. 그날 함박눈이 펑펑 내려 집집마다 두문불출하였다.

 

뜨락에 눈 밟는 소리를 뒤이어 “선생님, 계십니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끌신을 신고 나가보니 전옥 학생이였다. 오늘따라 새 솜신을 신었고 빨간 비단솜저리에 줄난 데트론바지를 입었다.

 

“선생님, 전... 이사 갑니다.”

 

하면서 보름 전 나에게서 빌려간 동화책을 돌려주면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 윤옥이 정말 이사 간다고? 왜 사전에 알리지 않았소.”

 

“선생님, 6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 아니지만 집형편이 곤난하여 선생님께 술 한 잔도 흑흑...”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새 왜 그를 앝보았던가?

 

“선생님, 이 책을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대생산’표 담배 두 갑을 꺼내 나에게 주고는 흐느끼면서 대문으로 뛰어갔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부랴부랴 신을 신고 뛰다시피 전옥이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의 집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짐차가 “부르릉 부르릉‘하며 발동이 걸렀다.

 

“전옥이...”

 

목 메인 나의 부름소리에 운전수가 발동을 멈추자 전옥이가 운전실에서 내리였다.

 

“전옥이, 그저 이 책을 선물로 주니 부디 새 고장에 가서 공부를 잘하오.”

 

“고맙습니다. 선생님!”

 

함박눈이 계속 펑펑 내렸다. 갈 길이 멀기에 나는 더 말을 하지 않고 빨리 차에 오르라고 재촉하였다.

 

짐차는 발동을 다시 걸었다. 전옥이는 반신을 차창밖으로 내밀고 나를 향해 손을 저었다...

 

울리는 폰소리가 나를 현실로 불러들인다. 수신판스크린을 보니 신호는 황전옥 학생이었다.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고개를 들고 보니 전옥학생이 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나에게 손을 젓고 있었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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