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통 결혼 선물을 축의금으로 한다. 할아버지 세대에도 결혼 선물에 축의금이 있었지만 시골에 사는 남정네들은 결혼 선물로 술 한 병 들고 갔다고 한다. 술이 귀한 세월에 술 한 병도 큰 선물이겠지만 사실은 선물로 들고 간 술을 다 마셔 "본전"을 뽑기 일쑤였다나.
내가 겪은 바로는 70년대와 80년대에는 단위에서 누가 결혼하면 호조금을 책임진 녀성이 먼저 호조금으로 혼수용 이불 같은 걸 산 후 각자가 똑같이 분담할 금액을 다음 달 호조금을 거둘 때 더 거두어 들였다. 참, 그 시절을 지내보지 못한 세대는 호조금이란게 뭔지 모를 것이다.
호조금은 달마다 로임이 나올 때 모든 직원들이 호조금을 책임진 분한테 로임에서 몇 원을 떼여 납부하는 돈인데 이 돈은 갑자기 돈이 급한 분들이 먼저 빌려 쓸 수 있다. 호조금은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겨 급한 목을 여는데 있어서 "가물에 단비" 같은 돈이다. 호조금은 한국의 곗돈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길현문공단 창작실에 배치 받았을 때 나의 한 달 로임은 38원이였고 계를 붓듯이 달마다 내는 호조금은 5원이였다. 혼자 살기도 모자라는 로임이여서 매달 로임 나오는 날을 며칠 앞두면 호주머니에 동전 한 푼도 없기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호조금을 관리하는 분한테 손을 내민다. 5원내지 10원 정도 호조금을 빌려 쓴다. 빌려쓴 돈은 다음 달 호조금을 낼 때 갚아야 한다.
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반인가부터 호조금이 사라졌다. 비록 호조금이 없어졌지만 단위에서 누가 결혼하면 한 분이 나서서 결혼식에 참가할 사람들한테서 똑같은 금액으로 돈을 거두어 결혼 선물을 장만했다. 1994년 북경으로 자리를 옮긴 후 부서의 한 총각이 장가들었는데 결혼 선물이 일본제 압력식 보온병이다. 그 땐 제일 비싼 보온병이었지만 매인당 부담할 금액은 32원이였다.
그 후로 언제부터서인지 각자가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가지고 갔다. 그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 직장에 있어도 봉투안에 든 축의금이 얼마인지를 서로 모른다. 축의금을 받는 당사자만 안다.
축의금도 "시세"가 많이 올랐다. 처음엔 백 원짜리 한 장을 들고 갔는데 그 "시세"가 두 장, 석장, 다섯 장, 열장, 지어 오십 장, 백장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금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결혼 축의금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부자나 "벼슬아치", 유명인들이 주고받는 축의금이 몇 십만 원, 지어 몇 백만 원이 달했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런 돈은 성의가 담긴 축의금이 아니다. 그 어떤 거래에 불과하다.
요즘 최고의 결혼 선물을 발견했다. 한국방송 아침 프로에 출연한 70세 로인이 결혼식 날 한 어르신네한테서 받은 결혼 선물을 공개했다. 한국도 예나지금이나 결혼 선물이 주로 축의금인데 그 분이 받은 결혼 선물은 다 타버린 연탄이였다. 어처구니없었고 지어 억울하기까지 했다고 노인은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연탄재를 결혼 선물로 보낸 어르신네는 그 이유를 한마디에 담았다. "사랑도 식으면 이와 같다." 둘의 사랑이 나중에 다 타버린 연탄처럼 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선물이다. 지금 유행어를 빈다면 사랑도 "초심을 잊지 말라"란 얘기다.
참으로 멋지고 뜻깊은 결혼 선물이여서 언제 한번 연탄재를 결혼 선물로 보내볼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근데 요즘은 결혼식도 하객 없이 가족끼리 치르거나 둘만의 여행결혼이 추세여서 연탄재를 보낼 상대가 없다. 연탄재를 누구한테 보낼 엉뚱한 궁리를 하지 말고 스스로 연탄재에 깃든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것 같다. 혹 내가 지금 연탄재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