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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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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1-31 08:15 조회5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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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아우야, 오늘도 몸 성히 잘 있는지? 오랫동안 고민하다 오늘밤에야 조용히 틈을 타 필을 들었다.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너에겐 랑만이 짧고 고생이 길었었지. 그 돈 때문에 아니겠니? 지금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돈 때문에 가정이 파탄되고 부부간이 생이별하고 형제간에 만나지 않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구나. 아우도 그 돈 때문에 맏형님 장례식에도 얼굴을 못 내밀고 10년 동안 부모산소도 찾아보지 못하지 않았느냐?

 

아우야, 나에게 이 세상에서 형제란 너뿐이다. 항상 그리운 생각은 간절하지만 고국에서 돈벌이를 나선 너를 만날 수가 있어야지.

 

제수씨가 8년 만에 귀국하여 우리 집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더라. 제수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언제나 인생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꿋꿋이 살아온 동생이 설마 그럴 수가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아우야, 넌 어머니가 마흔다섯에 낳은 막내였지. 그해 형수님까지 몸을 풀게 되여 너는 호강을 누릴 수가 없었지. 어머니가 손자를 돌보느라 널 챙길 겨를이 없어 넌 항상 혼자 울면서 자랐단다. 그러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자 넌 맏형님 손에서 중학교를 다녔었지. 너는 학습 성적이 우수했지만 가정경제난으로 고중을 다니지 못하고 때 이르게 돈벌이에 나서야 했어.

 

한중방송
그러다가 1991년, 너는 조카(맏형님 아들) 와 함께 돈벌이로 원양어선을 탔지만 태풍을 만나서 조카는 바다에 휘말려들어 고기밥이 되였고 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왔지.

 

그 후 신체도 좋고 마음씨도 착했던 맏형님은 아들을 잃은 서러움에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58세 나이에 아들을 찾아 저세상으로 떠났고 형수님도 3년 전 재가하다보니 이제 맏형님의 가정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단다.

 

아우야, 1995년 네가 생사로 번 돈을 쥐고 시골을 떠나 심양교구로 향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너는 심양교구에서 열심히 토마토농사를 지었지.

 

겨울에는 온실에서 토마토묘목 키우고 봄에는 하우스에서 모종을 옮겨 심고 여름에는 삼륜차에 토마토를 싣고 왕복 30리길을 오가며 장사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집세, 전기세, 수도세, 땅세 등을 제하고 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였지. 그렇다고 당장 어디로 자리를 옮길 자리도 너에겐 없었다. 형으로서 널 대하기가 부끄러웠다.

 

나도 인삼농사를 짓다 8만원을 처넣고 빈털터리가 되여 쫓기다시피 고향을 떠나 무순교구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처지라 네가 어렵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구나.

 

아우야 ,그래도 넌 아내 복을 타고난 놈이야.

 

네가 그 동네에서 기풍이 좋기로 소문난 박씨가문의 맏사위로 되었을 때 난 속으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너보다 다섯 살 연하인 제수씨는 인정도 많았고 인물도 좋았어. 하늘이 너에게 준 복이었지. 네가 결혼하던 동네에서는 시골에 봉황이 날아들었다고 야단들이였고 동네총각들은 널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1996년 넌 심양교구에서 제수씨와 손잡고 시장에서 고기장사를 하였지. 넌 매일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소가툰고기시장에 가서 소고기, 물고기, 돼지고기를 구입해 와서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시장에 나가서 온종일 고생을 하였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일상생활이나 유지할 정동여서 너는 처가살이 신세를 면치 못했지.

 

그러다가 2001년 2월, 너에겐 한국에 노무로 나가 돈벌이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10년 나마 아글타글 장사하였지만 남은 것이란 깨진 바가지뿐, 노무에 필요한 7만원 돈을 구하자니 하늘에서 별 따는 격이었지, 너의 처가친척들 중에는 일본 ,한국에 나가 뭉치 돈을 벌어온 분들도 있었지만 맨몸의 너에게 돈을 빌려줄 분은 없었다.

 

아우야, 그날이 어제 같구나.

 

추운 겨울날에 제수씨가 저녁차로 우리 집에 찾아와서 울면서 딱한 사정을 털어놓던 날이.

 

그날 너 형수는 5만원 저금통장을 내놓았어. 너도 알다시피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내가 번 돈이래야 뻔 하지 않니. 그 5만원은 너 형수가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0여리 길을 자전거로 오가면서 떡 장사를 해 한푼한푼 모은 돈이란다. 너 형수는 그 돈으로 새집을 장만하려던 참이었어. 당시 그 돈은 우리 가정의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어.

 

우리가 고향을 떠날 때 맏형님은 참나무통으로 절구통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 절구는 우리 집의 보배였어. 그 절구에 떡을 쳐서 떡 장사를 시작했고 그 떡 장사로 우리는 돈도 좀 모으게 된거야. 그런 돈을 아내가 너 처에게 선뜻 내놓았을 때 나는 너무너무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단다.

 

이렇게 해서 넌 한국에 나가서 돈을 벌게 되었어.

 

한번은 공사현장에서 발에 못이 박혔지만 옆 사람의 도움으로 못을 뽑아내고는 다시 아픈 다리를 끌면서 10층으로 물건을 메 날랐다지. 참으로 악착스레 일한 너였어.

 

반년이 지나 넌 목수 일을 배워냈지. 건축현장이란 실내 일은 좀 낫지만 실외 일은 까딱 실수하면 고층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지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지. 너도 10층에서 일하다 떨어졌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려 파이프를 잡았기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하지 않았니?

 

넌 현장에서 참으로 억척스레 일하였지.

 

여름이면 땀으로 목욕을 하였고 얼굴은 햇볕에 타서 흑인처럼 되였으며 어깨는 짐에 눌려 살이 벗겨졌고 손은 터서 떡갈나무처럼 되었지. 겨울에는 캄캄할 때 현장에서 추위를 막느라 모닥불을 피워놓고 날 밝기를 기다렸다 일을 시작하였고 저녁에는 뒤늦게야 무거운 다리를 끌면서 숙소에 들어와 대충 밥을 먹고는 그대로 쓰러져 자는 것이 일쑤였지.

 

해외로무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어. 이 전쟁에서 타락한 사람, 미친 사람, 죽는 사람, 가정이 깨진 사람, 별의별 사람이 생겨났지.

 

넌 7개월의 전역에서 7만원을 벌었다지.

 

그렇게 번 돈으로 넌 우리 돈을 갚을 대신 재수씨를 한국으로 데려갔어. 그래도 너의 형수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널 한마디 나무라지 않았어. 다행히 2년 후에 네가 돈을 보내줘서 우리는 그때야 집을 샀단다.

 

그때 넌 우리 집에 종종 전화를 걸어왔었어. 전화할 때마다 넌 힘이 들지만 돈벌이가 잘된다면서 아내와 함께 손잡고 4-5 년간 벌면 60만원은 문제없다고 하였지. 그렇게 되면 귀국하여 음식점을 차리겠다고 장담하였지.

 

그런데 3 년이 지난 후부터 아우는 전화를 끊었다. 설명절에도 전화 한통 없어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난 심양에 계시는 너의 장인어르신을 찾아 사연을 알아보았지 .너의 장인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으시면서 너의 상황을 알려주더라. 제수씨가 너와 이혼하려 한다고.

 

그날 난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청천벽력이었어. 아우야, 넌 한국에 간 3년 동안은 음식점 출입도 한번 안하고 친구들이 만나자고 전화가 와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피하였다지. 대신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오직 부자가 되겠다는 꿈만 꾸었다지.

 

그런데 저금통장에 돈 자릿수가 늘어나면서 넌 변하기 시작했어.

 

일단은 일에 맥을 놓았고 다음은 노름판에 끼어들기 시작하고 이어서 노래방, 술집을 전전하며 돈을 물 쓰듯 했다더구나. 제때에 일터에 나가지 않고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며 마작, 카지노, 포카 등 노름만 하다가 밤중에 들어가기가 일쑤였다지. 이렇게 도박에 인이 박혀 미친 사람이 되었지.

 

처음에는 제수씨의 목걸이. 반지 따위들을 전당포에 맡기다가 나중에 피땀으로 벌어 모은 저금통장에까지 검은 손을 뻗혔다지. 뒤늦게 제수씨가 눈치 채고 저금통장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한화 1억 원이 빠져나간 후였어. 그날 제수씨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단다.

 

그 후로 제수씨는 너무도 가혹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뇌질환에 거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귀국하여 중국의과대학병원에서 뇌수술을 하였단다. 참으로 악몽 같구나. 그나마 제수씨가 제때에 저금통장을 챙겼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넌 영락없이 거지가 되었을 것이다.

 

아우야, 천사 같은 너 아내를 배반한다면 넌 인간도 아니다. 마음씨 착한 너 아내는 그나마 네가 탕진하고 남은 돈을 챙겨서 심양교구에다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하고 네 딸 옥희를 단동고중에 입학시켰단다. 그뿐이냐. 말은 너와 이혼한다고 하였지만 결과에는 점점 나락에로 떨어지는 너를 구하기 위해, 너로 인해 삐걱거리는 가정을 살리기 위해 또다시 허약한 몸으로 너를 찾아 한국으로 떠났단다.

 

아우야, 넌 해외로무의 2차 전역에서 완패하였다.

 

넌 자신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악몽에서 깨여나 첫걸음부터 시작하거라. 이미 잃어버린 60만원은 장사하다 학비를 지불했다 생각하고 3차 전역을 벌리거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송세월한다면 결과적으로 넌 아내, 자식 ,친구 모두를 잃고 알거지가 될 것이다. 나도 인젠 60십이 넘었기에 널 도울 수 없는 것이지.

 

아우야 ,이제 네 나이 48살이다. 아직도 앞길이 구만리 같다. 돈은 없다가도 생기지만 정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넌 이 세상에서 제수씨에게 제일 큰 빚을 진 죄인이다. 마땅히 지옥 최하층에 들어가야 할 인간이지만 염라대왕에게 빌고 빌어 구해 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제수씨를 뜨거운 가슴으로 감싸주어 제수씨의 얼음장 같은 가슴을 녹여 주거라. 이것이 네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이다.

 

아우야, 난 네가 환골탈태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코로나 악마가 사라지면 이국땅에 가서 너와 제수씨의 밝은 모습을 보겠다.

 

2021년 1월 27일 형님으로부터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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