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빗어 내린 쪽진 검은 머리 간데없고
쪽파 뿌리 된 어머니의 머리는
살아온 세월을 계산한 수자다
달 같이 곱던 어머니의 얼굴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밭고랑처럼 깊숙이 패인 어머니 얼굴은
가시덤불에 긁히고 째진 훈장이다
새우등처럼 꺾인 어머니의 등은
밭고랑을 태우던 해 빛이
그린 그림이다
빈 몸 껍데기만 남은 어머니는
오늘도 추운 겨울 자식이 추워할 세라
껍데기로 품어주기에 바쁘다
단비
흙이 구수한 냄새로 유혹하고
파릇파릇 새 생명이 보내는 추파에 반해
나와 아내는 터 밭에 마늘을 심는다
내가 삽으로 둔덕을 만들면
아내는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한쪽 한쪽 흙에 박는다
엄선한 마늘 씨 종도
뿌리 쪽이 흙에 꽂혀야 하고
눈 쪽이 하늘을 보도록 심어야 한다
사람이 거꾸로 살 수 없듯이
마늘도 거꾸로 심으면
가을이 되도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다
사람도 마늘처럼
두 다리는 흙을 밟고 서야 하고
머리는 하늘을 향해야 한다
흙에서 올리미는 기를 먹고
하늘에 부끄러움 한점 없는
인간으로 살라는 뜻일까
마늘을 다 심고
나와 아내는 허리 쉼을 하는데
하늘에서 단비가 내린다
타이밍을 맞춰 내리는 단비를
나와 아내는 피하지 않고
아주 아주 감사하게 맞아 주었다
환생의 단풍
시간과 해 빛의 담금질에 익었나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결과물인가
각양각색의 가을산이 한 폭의 수채화로
계곡물에 거꾸로 내려 앉아 흘러간다
빼곡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해빛이 용접을 했는가
울긋불긋 단풍이 꽃처럼 화려하고
눈 닿는 곳마다 극락의 대년회장이다
얼핏 보면 단풍의 색깔과 빛깔이
서로 담고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색깔과 빛깔이 다르다
저마다 자기의 색깔과 빛깔을 과시한다
한 가지 붉은 색만 고집하고
온 몸을 불태우는 단풍이 있는가 하면
빨강, 노랑을 섞은 단풍도 있고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화장한 단풍도 있다
봄에는 움마다 새 생명을 달고
여름에는 진초록의 물감을 뚝뚝 떨구더니
일편단심 간직한 인내로
드디어 그림 같은 가을을 그렸구나
/허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