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때리는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몸에 닭살이 돋고 코끝에 닭똥 같은 코 물이 대롱대롱 달게 하는 이른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두터운 옷을 껴입고 텃밭에서 노란 속이 꽉꽉 들어찬 절구통 같은 김장배추를 캔다, 다듬는다, 다듬어서 문 앞에 차곡차곡 무져 놓고 비닐이나 풍천으로 덮느라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TV와 방송에서 그리고 핸드폰에서 오늘 저녁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다고 떠들어대니 서둘러 캐지 않으면 김장배추가 모두 얼게 되여 그럴 만 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배추를 캘 생각을 않고 집에서 요지부동으로 내 텃밭의 배추만 넋 놓고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원래 김장배추는 초복이 지나 2~3일 되면 배추를 심어야 가을에 배추속이 통통하게 들어차고 자람 새가 안성맞춤이고 김장시기도 딱 들어맞아 김치를 담가도 김치 맛이 상큼하고 감칠맛이 나고, 찡하고 아삭아삭해 그 맛이 일품이지만 너무 일찍 심으면 가을에 일찍 캐게 되고 캐서 쌓아 두면 썩거나 버리는 게 많다.
그렇다고 일찍이 김장을 하면 쉽게 시게 되고 물러져 김치 맛이 없어진다. 그러나 김장배추를 철을 어겨 늦게 심으면 배추속이 단단하지 못해 김치가 상큼하고 시원하고 아삭아삭한 맛이 없고 풀냄새가 난다. 그리고 좀 더 늦게 심으면 시래기배추로 되고 만다.
지난 여름철은 몇십년 만에 찾아오는 더위 때문에 무지무지하게 더웠다. 더욱이 초복이 그 이름값을 하면서 초복 전날부터 매일 32~34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보름 넘게 기승을 부려 집에서 선풍기를 틀고 그 옆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렇거나 말거나 마을 사람들은 초복이 지나 3~4일이 되자 절기를 놓일 세라 김장배추를 심는다고 땡볕에 땀을 철철 흘려가며 배추 심을 자리를 만들고 고랑을 내고 물을 주고 배추를 심었지만 나는 더위도 더위지만 좀 늦게 심어도 늦게 캐면 괜찮겠지 하는 알량한 생각에 더위가 좀 수그러들면 김장배추를 심으려고 집안에서 까딱 나오지 않고 TV와 책을 보면서 미적미적 미루다가 더위가 좀 주춤하자 봄에 심은 원두와 쪽파를 뽑고 그 자리에다 고랑을 내고 백여 포기 되게 구덩이를 오목하게 파고 물을 주고는 김장배추를 심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20여일 늦게 김장배추를 심었다.
쌍둥이도 먼저 태어나면 형이고 후에 태어나면 동생이 되듯 내가 김장배추를 심을 때 다른 집들 배추는 쌈을 싸 먹게 컸다. 내 배추가 쌈을 싸 먹을 만하게 크니 다른 집들 배추는 대야만큼이나 컸고 내 배추가 대야만하게 크자 다른 집들 배추는 이미 통이 않게 되었고 오늘은 노란 속이 돌덩이처럼 꽉꽉 찬 절구통만 한 배추를 캐고 있지만 우리 집 배추는 이제야 속이 허벅허벅 차고 있다. 지금 배추를 캐자니 김장 담그기는 백번도 틀렸고 캐지 않으면 겨울에 먹을 시래기 국거리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저녁 어스름을 타 도둑놈처럼 시래기배추를 뽑아 한곳에 무져 놓고 풍천을 덮었다. 아무래도 금년 김장배추는 이웃과 마을 사람들의 '신세'를 지거나 시장에서 사서 해결해야 될 것 같다.
반나절 시간만 더위를 참고 남들이 김장배추를 심을 때 나도 따라 심었으면 이런 낭패를 보지 않았을 텐데 고까지 더위에 겁을 먹은 내 모습에 후회가 막심하다. 그러나 후회한들 이미 엎지른 물이다. 이런 후회를 한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는 남들보다 일찍 고추를 따먹고 산량도 많이 낼 욕심에 남들보다 20일 앞당겨 영양단지에 부엽토를 넣고 천여 포기 되게 고추씨를 심으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너무 이르다고 말렸지만 나는 고집 쓰고 고추씨를 심고 자주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아 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추가 가쯘하게 빈틈없이 잘 나왔고 싱싱하게 잘 커 주어 나의 마음은 으쓱해졌다. 그런데 모종 시일이 점점 길어지자 고추들이 헛 자랐고 텃밭으로 옮겨 심자니 아직은 바깥날씨가 차가워 심을 처지도 안 되였다. 그래서 통풍을 시키고 물도 4~5일 건너 모종이 죽지 않을 정도로 빠듯하게 뿌려 주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하는 수 없이 5.1절 날에 텃밭에 고추모종을 옮겨 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면서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텃밭에 옮겨 심어 10일 되는 날 아침 텃밭에 나가보니 그렇게 푸르싱싱하게 자라던 고추가 간밤의 차가운 기온을 못 이겨 몽땅 거멓게 얼어 죽었다. 나는 부랴부랴 고추모종을 뽑아버리고 고추씨를 얻어 심었는데 가을에 겨우 풋고추나 거두고 김장 고추 가루는 시장에서 사서 해결했다.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식물은 심는 때가 있고 철이 있다. 봄에 심어야 할 식물은 봄에 심어야 하고 여름에 삼아야 할 식물은 여름에 심어야 하며 가을에 심어야 할 식물은 가을에 심고 겨울에 심어야 할 식물은 반드시 겨울에 심어야 한다. 만약 봄에 심어야 할 식물을 겨울에 심고 겨울에 심어야 할 식물을 봄에 심는다면 그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자라나도 제 구실을 못한다.
이렇게 모든 식물은 그 때가 있고 철이 있는 법인데 나는 식물의 자연과의 순리와 법칙을 무시하고 깨뜨려 버렸으니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고 늘 남들보다 실패와 후회의 쓴 고배를 더 맛본다.
이 세상의 모든 식물은 심어야 하는 그 때가 있고 계절이 있듯이 우리 인간의 삶에도 그 때가 있고 계절이 있다.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가 있는데 인간도 식물처럼 그 때와 계절이 있고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세월은 무량하게 흘러 이 겨울이 지나면 내 생에 또 한 해가 빠져나간다. 내 나이도 곧 60의 문턱에 들어선다. 반평생을 넘게 살아온 내 삶의 뒤안길은 살펴보니 그때, 그때와 그 시절을 모두 놓쳐버려 남들처럼 황금빛 들녘의 고개 숙인 벼 이삭처럼, 북산의 다람쥐 먹이 된 개암 같이 결실의 열매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속옷까지 들추어 봐야 자랑할 것도, 뽐내며 숨길 것도 손아귀에 잡히는 것까지 아무것도 없다.
쭉정이 농사를 짓고 살아온 것만 같다. 가을에는 쭉정이도 고개 숙인다고 그래서 내 인생의 가을에 고개가 더 숙어진다.
'늦었다고 할 때가 늦지 않은 때' 라는 격언처럼 이제 남은 노후의 삶은 지나온 삶의 연속이 아닌 그 허황한 삶의 쭉정이 인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지금 내가 선 그 자리가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하고 여직 내 몸에 도사리고 있는 소극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아집과 독선, 오만과 편견, 그리고 과욕과 허욕, 탐욕을 버리고 미련 없이 자세를 바짝 낮추면서 적어도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의 삶을 살아가련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내 인생의 그 때를 놓이지 않기 위해서...
/허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