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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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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10-07 22:01 조회390회 댓글0건

본문


아내는 동창모임에 갔다 자정에야 집에 들어섰다. 3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이라 난생처음 술에 취했다.

 

아내는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면서 변기에 얼굴을 묻고 모든 것을 쏟아낸다. 나는 아내의 잔등을 토닥이었다. 그리고 아내를 덥석 안았다. 아내의 몸에서는 솔잎냄새 같기도 하고 냉이 뿌리 냄새도 같기도 한 향이 난다. 나는 아내를 침대에 눕혔다.

 

“여보, 고마워요.”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가 이내 완전히 끊어졌다. 피로와 고민의 기색을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낸 채 아내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내는 어린애처럼 눈물을 흘렸다. 나는 수건으로 끊임없이 아내의 눈물을 닦아냈다. 어쩐지 아내의 눈물이 안귀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흘러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잠이 들었다. 희끗희끗 변한 머리카락, 뻣뻣한 다리, 비쩍 마른 팔, 상한 치아... 어느 한곳 성한데 없는 아내의 육신... 나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영상들이 검은 망막위를 스쳐 지나갔다. 눈을 떠도 그 영상들은 지워지지 않았다.

 

40년 전, 아내는 연지곤지 찍고 수줍음을 감추지 못한 체 경운기에 실려 시집오던 날부터 어설프고 힘든 시집살이를 시작 하였다.

 

나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아내,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나는 소꼴을 벴고 논밭을 갈았고 모를 심었고 장작을 팼고 돼지물을 주었고 밤이면 책과 씨름했다. 싸늘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건만 또한 여름이 왔건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내의 말을 버리지 않았다.

 

드디어 12년 만에 시험의 부활이 결정 되었다.

 

“여보, 이번 시험을 보겠어요.”

 

“그래요. 꼭 시험에 합격 하세요.”

 

아, 그동안 늘 나의 뒤편에서 빛이 되어주었던 아내, 특별한 재능을 갖지 못해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지원군은 다름 아닌 아내였고 덕분에 사범생이 되었다.

 

사범학교로 떠나는 아침 아내는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그저 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내의 수건 오뉴월 땡볕아래서 농사일을 할 때 그것은 아내의 모자였고 팥죽 땀을 닦아내는 수건이었다.

 

겨울방학 집에 들어서니 두 달 된 아들을 나의 품에 안겨준 아내 꼭 거짓말 같고 금덩어리로 횡재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내는 나의 성공으로 덕을 보지 못하였다.

 

쥐 꼬리만한 월급 그것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나면 남은 것이 없어 삯일, 짠지장사, 떡 장사, 식당일, 파출일 등 고단한 일들을 내려놓지 못했다. 몇 십 년 뒤에 아들 딸 장가•시집 보내고 집 장만하고 별 볼일 없이 늙어 시들어지었다.

 

40년 동안 함께 붙어 다닐 때는 그 무슨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할 일을 한다는 밖에 몰랐다. 그러나 아내의 가슴속에서는 실타래가 40년 풀러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끝은 언제나 나를 묶여 있었다. 내가 아무리 멀리가도 끊어지지도 동이 나지도 않은 것이다.

 

나는 두 손으로 아내의 손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여보, 미안하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40년 만에 나의 진심의 말이 아내 손끝으로 하나하나 전달 되기를 바랐다. 나는 뒤늦게 샘솟는 후회를 씹고 있었다. 아내가 원하는 것 이였으면 응해야 했을 것을 아내가 바라는 것 이였으면 따라야 했을 것을 나는 아내 손을 놓고 흐트러진 아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순간 이상스러운 감정이 출렁였다. 아내가 한 떨기 냉이 꽃으로 보이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기도 했고 가슴에 거센 물결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전신이 뜨거운 열로 달아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확실하지 않은 느낌들이 따로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일어났고 그건 어떤 강한 폭발이나 충격 같은 것이라고 해야 옳았다.

 

아내 팔자가 기막혀 나 같은 빈털터리 ‘선비’와 인정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나에게서 40년 세월을 보냈다. 나날이 굽어지는 아내의 허리며 깊어지는 주름살 순간 마음이 안쓰럽고 미안하고 딱하고 깨여나면 아내에게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고생을 고생으로 알지 않고 자식들을 밝게 키워온 아내 내면의 힘 이것이 삶에 대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내가 아무리 아내보다 아는게 많고 논리적이며 인류를 사랑한다 외친다 하더라도 40년 동안 나를 위해 애끊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써준 아내의 그 넓은 마음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아내의 눈물 그것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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