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퇴근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정다운 아내목소리가 없다. 집안의 분위기는 화기가 싹 가셔진 휑한 냉냉한 기분이다.
나는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려고 욕실에서 샤워기를 틀어 온몸을 씻고는 저녁밥을 지으려고 전기밥솥을 열었다. 엊그제 해 놓은 밥인지 죽인지 아직도 남았다. 나는 전기밥솥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속에 보이는 재료는 콩나물, 두부, 김치... 아내를 보내고 며칠은 저녁마다 김치찌게 하나 혹은 된장찌게 한 그릇에 가끔 계란 구워서 대충 먹었다. 그러다 저녁준비가 힘들고 버거워 저녁마다 식당 문이 닳도록 다녔다. 오늘도 저녁준비가 싫어 집을 나서 식당으로 발길을 옮기었다.
아내는 40 여년 한 번도 집을 떠나보지 않았다. 그저 친정집에 갔다가도 이삼일 지내고 돌아오는 아내였다. 외국바람이 불어 동네사람들은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지만 아내는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안정적인 집안에서 사는 것이 훨씬 좋다고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이악스레 떡장사를 하면서 푼돈을 벌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팽이처럼 뱅뱅 돌아치는 아내가 그렇게도 귀찮았다. 그것은 동료, 친구들이 자기 아내를 외국에 보내고 ‘자유세계’에서 지내는 것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2006년 나는 교직에서 벗어나 혼자 한국에 입국하였다. 아내도 나를 ‘감시’하려고 뒤따라 한국에 오셨다. 정말 찰거머리처럼 나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아내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지난 8월에 청도 딸의 집에 갔다. 정작 혼자 3개월 보내니 집안 청소보다 아내생각에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 마음도 텅 비어버렸다.
부엌에서 구수한 숭늉냄새가 나고 방안에서 말소리가 나야 가정이 아닌가? 이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는게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 동네 ‘생홀아비’들이 원룸, 고시원에서 지내는 인생은 얼마나 괴로운 인생인가? 제비들도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밤이면 암수들이 꼭 끌어안고 밤을 지내는데 인간들은 왜 생이별하고 살아야 하는가? 조물주가 인간에게 단란한 가정을 주었지만 지금 가정형태는 소형화, 분산화로 되였다.
비록 외톨이들은 사흘이 멀다하고 술집에 다니면서 잠시나마 고독을 풀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숨어있다. 밤이면 휑뎅그렁하게 비어있는 방에서 천정만 쳐다본다. 이 시각 생각하면 생이별하고 사는 ‘홀아비’들 손가락에 금가락지 걸고 불룩한 돈지갑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이 부럽지 않다.
부부간 생이별 말고 한집에서 끈끈한 정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를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며 살아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
행복이 따로 있고 평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가정이 곧 천국이다. 막대한 돈을 가지고 있고 명예를 얻었다 할지라도 단란한 가정이 없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 저녁밥을 먹고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여보 ,집에 급한 일이 생겼으니 내일 당장이라도 돌아오우...”
/신석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