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창공, 땅, 하천을 인류에게 골고루 선사하여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여 주었다.
내 고향이 바로 그렇다. 인가는 동산기슭과 서산기슭에 오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동쪽 켠 마을의 애들과 어른들의 활동무대는 동쪽 켠 강 언덕이고 서쪽 켠 마을의 어른들과 애들의 생활 영역은 역시나 서쪽 켠 강역 이였다. 오리알을 길이로 잘라 놓으면 양옆의 흰자위 쪽은 마을이고 노란 자위는 구수하 강물인 셈이다. 나는 바로 구수하강 서쪽 켠 마을에다 탯줄을 묻었다.
여름이 오면 수선 강이 아름답다. 우거진 버들 방천에서 우짖는 물새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물오리 알을 줍기도 한다. 버드나무 뿌리 둥지 주위에는 식재료로 쓸 수 있는 유백색의 뽀얀 버섯 아기들이 오종오종 모여앉아 합창을 하고 있는 듯이 귀염상스럽다. 태양이 장바 두세컬레 길이쯤 떠오르면 더벅머리 머슴애들과 단발머리 여자애들이 소를 앞세우고 버들 숲이 우거진 강역으로 나간다. 소잔등에 앉아서 풀피리 부는 아릿다운 풍경은 아닐지라도 미성년 애들이 촌에서 적당하게 부모 일손을 돕는 미풍양속을 엿볼 수가 있다. 소는 목 밧줄이 닫는 한계까지 빙빙 돌면서 땅 밑에서 자라난 오염 없는 풀들을 뜯어먹고 스물스물 입을 놀리면서 새김질을 하고 있다. 사이에 나는 애들과 함께 물기가 축축한 모래로 성을 쌓고 자기 주먹이 나들만큼 한 공간의 까마귀 집을 짓기도 하였다.
‘까막아, 까막아, 너네 집에 불이 붙었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외우면서 놀았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목동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에 땀물이 두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내린다. 더우면 강물에 풍덩풍덩 뛰어들어 미역을 감을 수 있어서 좋았다. 머슴 애들은 웃도리를 벗어서 버들 숲에 걸어놓는다. 여자애들은 밴대 젖이 들어붙은 가슴을 의식하면서 속옷을 입은 채로 함께 어울려서 물장난을 하였다. 담이 작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영애는 강에 드리운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서 새초롬이 서있는데 강복 판에 들어설 엄두조차 못 낸다. 그러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이내 함께 어울린다. 밴대헤엄, 개발헤엄, 개구리헤엄 이렇게 물속에서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질탕하게 놀다보면 두 눈은 안개가 서린 듯 뽀얗고 두 귀는 벙벙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의 태양도 노랗게 보이고 발바닥과 손바닥은 물에 퍼져서 주글주글하고 박속처럼 하얗게 돼버린다. 놀음에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아침에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은 잊지 않는다.
“얘, 소를 명심해서 지켜보거라. 버들 숲에 목줄이 탈리면 소가 죽을 수도 있느니라”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부리나케 모래불 쑥대밭에 올라온다. 소가 무사한 것을 확인 하고는 또다시 물놀이에 정신을 판다. 물밑과 언덕이 모래불이 아니면 고무떡 같은 진흙이여서 애들에게는 안성맞춤하고 안전하였다. 물밑에 깔린 조약돌, 징검다리, 그 기슭에 자라난 미나리, 키들이 다북쑥과 졸뱅이풀 현대 도시에 설치한 인공 수영장에 이것을 옮겨놓을 수가 있을까?
놀다가 맥이 진하고 실증나면 강역에 쪼크리고 앉아서 내리쬐는 땡볕에 입은 그대로 속벌을 말린다. 아기 주먹만큼 한 크기의 돌 두 개를 가지고서 하나는 귀가에 대고 다른 돌로는 귀가에 대고 있는 돌을 똑똑 두드리면서 귀속의 물기를 끄집어낸다. 그리고는 낫으로 칠칠한 버들을 베여서 전투 모자를 만들어 머리에다 쓰고서 여럿이 함께 버드나무 뿌리둥지 밑에다가 햇볕이 차단되는 시원한 버들 집을 짓는다. 바닥에다 쑥을 펴고 그 안에서 놀아주는데 천상의 황궁도 저리 가라다. 시간의 촉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실컷 논다. 먹을 욕심, 입을 욕심, 돈 욕심, 모든 욕심은 신외의 물건처럼 아득히 멀었고 사유를 떠나서 멀리멀리 팽개쳤다. 마음은 오염 없는 하늘과 바다처럼 깨끗하고 푸르렀고 거짓 없고 직심인 땅처럼 순진하고 사랑스러웠다.
한켠에서는 엄마들이 토기 배떠리에 빨랫감을 이고 와서 넓적한 돌판에다가 옷들을 놓고 누른색 통비누를 발라서 비비고 주무르고 방치로 탁탁 두드린다. 무게가 나가는 옷과 이불안, 이불거죽은 엄마들 둘이 양쪽에 서서 서로 반대쪽으로 쥐여 짜고 물기를 뺀 후 버들 숲에 확 펴서 널어 놓는다.
조금 떨어진 아래쪽 강역에서는 남정네들이 반두를 들고서 고기잡이에 혼을 빼앗기고 있다. 한사람이 아래쪽에서 발을 대면 다른 한사람은 우에서 고기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후야후야 쫓는다. 한참을 이렇게 역사질하면 배급사발로 두 사발 쯤 되는 고기를 잡는다. 그리고는 그 강역에서 밸을 따고 뙈기밭에서 얘리 호박과 호박 줄기를 국거리로 장만한다. 야생 깻잎도 도처에 흔하다. 한줌 뜯어서 강물에 휘 젓고는 고기탕에 띄운다. 다음은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어 모으고 마땅한 크기의 돌 세 개를 고정시킨 다음 무쇠 쟁개비를 올려놓고 세치네 탕을 끓인다. 이상하게도 그 강물에서 잡은 고기탕은 그 강물로 끓여서 먹으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한다. 고추장을 듬뿍 넣고 끓인 물고기탕 내음은 바람에 실려강기슭에 펴져나간다. 남정들은 집에서 삭힌 막걸리를 물고기 탕에 안주하면서 ‘노들강변에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에헤요~’,‘농부일생은 무한이로다’ 를 부르면서 하루해가 저물도록 놀아준다. 봉건사상이 머리에 쏙독 박혀가지고 한일색으로 남자들만 빙 둘려 앉아서 먹고 마시고 흥이 나서 놀면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흘끔흘끔 훔쳐본다. 여름날의 구수하는 생활의 활기로 넘쳐났고 자라나는 버들가지처럼 인간애와 정이 죽죽 벋어져 나갔다.
곡식은 푸르고 언덕아래와 언덕위에 자라난 키 넘는 쑥들과 사처에 피어난 들꽃 향기가 은은하다. 하늘의 풍운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우기가 닥쳐오면서 하루 이틀 새에 내린 비에 강물이 누른색으로 변하고 무서운 괴성을 지르면서 사품치며 흐른다. 허토밭은 엉망이 되였다. 우리가 개발 헤엄을 치면서 놀던 그 물기슭도 반나마 밀려 나갔다. 며칠이 지나자 마을사람들이 총동원하여 수리 건설에 뛰어들고 수재를 줄이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한다. 구수하는 농민들에게 복을 주다가도 수해를 입히기도 한다. 정을 주다가도 사정없이 타박한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구수하도 악마로 변할 때가 있었다.
썩 후에는 구위의 재해방지 ‘수재방지’ 방침에 따라서 방축건설과 치수를 힘 있게 틀어 쥐였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흙룡이 일떠섰고 수해는 막을 내렸다. 역사와 시대는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고 유감도 남겼다. 사람들이 강에 나앉아서 자연을 즐기고 가축과 아이들이 어울리고 놀던 풍경은 옛말로 되였다.
지금도 그 예전처럼 나무와 풀, 바람 하늘과 함께 느끼고 숨쉬고 노래하고 뛰놀고 싶은 마음을 억제 할 수가 없다.
/남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