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간밤부터 창문을 물어뜯던 바람이 아직도 그 기세가 사납다.
어제까지 몇 년 전에 마당 앞에 심어 놓은 사과나무 가지에 잎새 몇 개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슬아슬하게 가지를 물고 있었는데 간밤에 언제 떨어졌는지 이젠 빈 가지만 남았다.
바라보기에도 홀가분하고 시원하다. 이따금 그 빈 가지에 새벽잠에 깬 참새무리와 까치부부가 날아와 저들의 놀이터로 알고 놀다가 간다.
우리 집 대문 양옆에 있는 20여년 넘게 자란 두 그루의 수양버들이 그 무성한 잎으로 한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그 덕을 많이 봤는데 지금은 그 잎새를 모두 떨쳐버리고 휘휘 늘어진 가지들이 모두 바람이 부는 한쪽 방향으로 쏠려 그 모습이 마치 처녀들이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빗으로 몽땅 빗어 넘긴 모습과 흡사하다.
길가의 백양나무 가로수들도 잎새를 죄다 떨구고 미끈한 알몸뚱이를 과시하며 뼈를 깎는 혹독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위풍당당하게 의젓이 서 있다. 그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 몸에도 있어서는 안 될 불필요한 '잎새' 들이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무들에 견주어 볼 때, 우리 인간은 단순하지 못하고 순수하지도 못하며, 결단성도 없고 건강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하고 앞뒤가 꽉 막혀 어리석기까지 하다. 그저 남들보다 더 많이 차지하려고만 하고, 채우려고만 한다. 그래도 만족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고 그래서 걸핏하면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며 불신하고 심지어 부정과 비리, 폭력과 살인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그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가고, 사회적 갈등과 모순이 격화되어 사회질서나 정신문명, 물질문명이 날로 얼룩져가고 병들어간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사이, 친구사이, 이웃사이에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온정이 점점 고갈되고 메말라 간다.
인간은 살자면 하루 셋 끼를 먹어야 산다. 먹지 않으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먹기만하고 배변을 하지 못해도 병들고 죽는다. 나무가 겨울에 잎새를 모두 떨궈야 봄에 새 잎을 달 수 있듯이 인간도 먹었으면 배변해야 또 먹을 수 있고 살수가 있는 것이다.
버리고 비우는 것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고인물이 썩듯이 침체되고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을 돌이켜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을 여는 대문이고 지혜다.
기쁨과 사랑, 마음과 정을 나누면 몇 곱으로 늘어나고 가난과 슬픔, 좌절과 절망을 함께 나누면 몇 곱으로 줄어든다.
우리가 많이 차지하고 많이 채워 따뜻한 호화주택과 궁궐 같은 아파트에 고급 외제차를 몰고 돈을 흥청망청 물 쓰듯 쓰고 떵떵거리며 살아갈 때, 자기 집 애완견이 배가 불러 소시지며 고기를 먹기 싫어 끙끙거릴 때 적어도 한번쯤은 따뜻한 내 집 창밖에서 뜻밖의 재해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가난과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들에게 사랑의 눈길과 구원의 손길을 보내고 따뜻한 마음과 온정을 베풀면서 그들에게 한 가닥의 초불이라도 되어준다면 주는 기쁨, 받는 기쁨은 몇 곱으로 늘어나고, 가난과 슬픔, 좌절, 절망은 몇 곱으로 줄어들어 삶에 대한 희망과 꿈을 모두 잃고 실망과 절망의 벼랑 끝에 선 그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고 사막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잃었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의욕, 꿈과 희망을 되찾고 모두다 함께 살아가는 짠한 드라마와 같은 감동이 전류처럼 흐를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시기와 갈등, 부정과 비리, 폭력과 살인이 점차 사라지고 사랑과 따스한 정이 흐르고 화합과 행복이 넘치는 조화로운 사회, 살맛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이제 이 추운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겨울의 추위에 몸에 있는 모든 잎새를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곧 맞게 될 새 봄을 맞아 가지마다 새 잎새를 채워가는 겨울나무의 지혜를 배우면서 이 겨울이 다가기전에 우리 인간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몸에 도사리고 있는 불필요한 ‘잎새’들을 모조리 떨쳐 버리고 새 봄에 새로운 삶의 지혜를 차곡차곡 채우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수원시 허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