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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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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1-01-01 22:08 조회1,3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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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머니!”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눈 못 뜨시는 할머니를 부르다 이불을 차며 벌떡 일어났다.

 

아! 꿈이구나, 다행이야! 어제 영상통화하면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 얼굴을 봐서 그런가보다.

 

여자의 눈물은 값있게 흘려야 한다면서 어릴 적부터 귀에 못 박히듯 항시 말씀하시던 할머니께서 올해 들어서서부터는 세월의 연륜에 많이 약해지셨는지 이렇게 자주 눈물 흘리신다.

 

꿈자리가 시원찮아 할머니와 함께 한국에 계시는 아빠한테 당장 전화하자니 새벽 3시라 아빠가 더 놀랄 것 같아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나는 일각이 삼추 같았다. 정월달이면 할머니 구순 생신이라 이제 앉으시면 얼마 더 앉겠냐싶어 한편의 글로 특별한 선물 드리려고 필을 들었다.

 

1940년 11월의 엄동설한에 8살 어린 여자애였던 할머니는 일본의 침략전쟁 때 다리 불구로 된 아버지 따라 집 재산 다 털어 장만한 비단 몇 필 들고 만주땅으로 이주하여 왔단다. 할머니 13살 때 할머니 엄마는 일본세균병으로 돌아가시고 홀아버지 밑에서 두 동생 키우면서 말 못할 고생을 했단다.

 

뭔뭔 고생해도 배고픈 고생이 제일 힘들었다면서 이주하여 온 형편에 친척하나 없이 의지할 곳 없어서 얼마나 배곯았는지 모른다고 할머닌 늘 얘기하셨다. 양반들 붓글 쓰는 것 보면서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다음 때시걱 걱정해야 할 처지에 종이 장마저 만져보기 힘들었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야학공부를 좀해서 한글은 다 알고 계셨다. 학교는 못 다녔어도 어느 누구보다 인품 좋고 경우 바르고 도리 있는 삶을 사신 훌륭하신 분이다. 이런 할머니의 손길에 자란 나는 할머니가 항상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할머니의 첫 손군인 나는 엄청 사랑 받고 자랐다. 맏손녀라고 남달리 이쁘게 키워주셨다. 피아노 치는 손은 금손이라고 무거운 것 못 들게 하고 주방에서 식칼조차 못 쥐게 하고 설거지마저도 안 시킨 할머니시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리 큰 인물이 되고 높은 직위에 앉아도 집안 살림은 알뜰하게 해야 한다며 항시 가르치셨다.

 

사범통지서 받던 날, 이제부터는 객지생활이니 기본은 할 줄 알아야지 하면서 이불커버 벗겨 빨게 하고 바느질 하는 것 배워주셨다.

 

할머니 바느질 솜씨는 마을에서도 다 인정받는 야무진 솜씨라 동네 처녀들 결혼한복이며 이불까지 도맡아 하셔서 한겨울 간식은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 솜씨를 닮아서인지 배워서인지 나도 일솜씨가 좀 있는 편이다. 할머니는 지금도 바느질, 뜨개질 하여서는 여기저기 선물 주시군 한다. 손으로 뭘 하실 때마다 독특하게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노래하는 것이다.

 

한중방송
어릴 때부터 그 흥겨운 노랫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옛 민요 노들강변, 도라지, 태평가, 한강수타령 같은 민요를 어릴 때부터 나는 잘 불렀다. 동네분들은 나만 보면 춤 잘 추고 노래잘하고 얼굴이며 말투며 걸음걸이까지도 할머니를 닮았다고 하셨다. 음악교원으로 성장하기까지 나의 이 모든 재능들은 할머니께서 키워주셨다고 떳떳이 말하고 싶다. 집체호 때 촌민들이 회의하면 할머니는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손녀를 자랑하고 싶어 등에 업고 다니면서 재롱부리게 하여 박수 받게 하였단다.

 

사범학교 다닐 때 헛말삼아 발풍금 치기 좀 어렵고 개인으로 피아노 사는 것 학교에서 허락한다고하자 그 자리에서 통쾌하게 사주겠다고 대답하며 지지해주신 할머니, 수토가 맞지 않아 사범학교에서 자주 앓는 나를 걱정해 감기에 잠긴 목소리를 듣고 오상까지 달려오신 할머니, 오시는 길에 교통사고 나서 갈비뼈가 좌석손잡이에 박혀 골절이 되였던 할머니, 그때 그 어열이 지금도 있어 한쪽 어깨가 조금은 기울어지신 할머닌 손녀 사랑에 너무 극진하셨다.

 

할머니는 모든 여자들의 우점을 다 가지고 있는 강하고 따뜻하며 보수적인 전통적인 옛 여성이시다.

 

12년 전 피부암으로 한쪽 다리 절단수술을 받아서 장애가 되였지만 강한 할머니는 하루 살아도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면서 자식들의 도움도 없이 새벽부터 가족(假腿) 끼시고 운동하셨다. 그토록 강하고 어찌 보면 냉정하다고까지 느낄 정도지만 그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분이셨다.

 

할아버지께서 목재부업 가셨다가 부업하던 사람들이(모두 한족임) 일이 끝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 성도 이름도 모르는 조선족 5보호 영감 한사람이 다리를 상하였는데 갈데없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그 영감을 업고 집에 왔다. 그렇게 온 5보호 할아버지는 30년 가까이 세상 뜰 때까지 할머니가 너무도 잘 모셔서 동네에서 마음씨 착한 여자로 소문도 높았단다.

 

한국행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혼자 잘 사는 것보다 형제들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면서60세 넘은 할머니 손에 큰고모 자식 둘, 작은 고모 자식 하나, 작은 아버지 자식 하나, 우리 3형제 하여 애들 일곱을 맡겨놓고 1992년에 한국으로 떠나셨다. 의무도 아닌 의무처럼 우리 사촌형제 7남매를 모두 키워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넘친 성숙된 인간으로 키워준 할머니였다. 한둘도 아닌 일곱을, 그것도 세상모르는 철부지들을 키워야 하였으니 얼마나 애탔으랴.

 

우리 사촌들이 이렇게 7년이나 한집안에서 살았지만 할머니의 교육 하에 티격태격 싸움 한번 안하고 사이좋게 지냈다. 그때 내가 제일 컸으니 할머니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었다. 2000년에 우리가 자립할 수 있을 때에 한국으로 나가신 할머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한국에 가서 할머니 곁에 누우면 옛말거리가 많아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운다.

 

46살 꽃 같은 나이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저세상에 보내시고 지금까지 얼마나 외롭게 살았으랴. 내 나이 43살, 할머니 그때와 비슷한데 여자란 이름으로 생각하면 그 기나긴 세월의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셨을까! 반평생 홀로 자식들을 키우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험난한 세월의 강을 어떻게 넘어왔을까! 너무너무 불쌍하고 가여운 우리 할머니!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요즘 따라 영상통화만 하면 할머닌 자주 우신다. 친정식구들(아버지형제 넷)이 다 한국에 자리 잡고 나 혼자 중국에 남아 외로워 할 가봐 가슴 아파 하시고 올해에는 코로나19로 내가 한국으로 가지 못해 죽기 전에 한 번 더 보지 못 할 가봐 그냥 걱정하시며 우신다.

 

해마다 한 번씩은 한국에 꼭 가서 할머니를 목욕도 시켜드렸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갈수도 없고… 돌아가신 다음 많이 울기보다 생전에 옆에서 효도하고 싶은데, 할머니와 오손도손 얘기하면서 그 즐겨 잡숫는 송편도 빚어드리고 감자부침개도 부쳐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이 마음이 안타깝고 초조하기만 하다.

 

아! 언제면 이 비상시기가 지나갈지? 2년 이 넘게 못 본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할머니는 아흔이 넘으셨는데도 통화할때마다 시부모한테 효도하고 남편공대 잘하며 사업을 열심히 하고 어디 가서나 겸손하고 허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가르침을 받으면서 커서 그런지 지금까지 내 삶의 길에서 귀인이 많이 생기고 인덕을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때마다 훌륭하게 키워주신 할머님께 더없는 감사를 드리곤 한다.

 

동이 트자 아빠한테 전화 걸었더니 할머니 밤새 안녕하셨단다. 내가 할머니 응급실에 누워있는 꿈을 꾸다가 일어났다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 “꿈은 반대야, 너무 오래 살면 안 되는데…” 하시며 자식들한테 부담 줄까봐 걱정하셨다. 할머니보고 코로나가 풀리면 갈수 있으니 그때 가서 그동안 못했던 효도까지 다 덤으로 하겠으니 부디 건강하시길 바란다고 손 하트 보냈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그 웃음에 주름이 더 많이 잡힌 할머니였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더 이뻐 보일 줄이야.

 

할머니! 그렇게 오래오래 앉으세요! 할머니를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구순이 되는 생일선물로 맏손녀가 이글을 올립니다.

/고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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