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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뉴스

어머니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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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0-10-31 22:19 조회2,218회 댓글0건

본문


청명을 며칠 앞둔 봄볕이 한결 따스하다. 나와 아내는 어머니를 자가용에 태우고 마을과 7리 떨어진 보뚝산으로 향했다.

 

시멘트로 포장된 마을길을 벗어나, 산으로 통하는 울퉁불퉁한 흙 길을 어렵사리 지나 보뚝산에 당도하니 불과 10여분도 안 걸렸는데 그사이 어머니는 잠들어 주무시고 계신다.

 

세수 90세가 되고부터 어머니는 당신이 죽으면 화장을 하지 말고 꼭 이 산에 묻어 흙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날마다 침이 마르도록 부탁하던 귀거래사도 잊으셨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삶의 숱한 편린들이 삭제되어 버린 후 당신은 매일 하루 셋 끼 먹고 자는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무위로 움직이실 뿐이다.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뇌세포가 거반 손상되고 사유능력을 잃었고 사지마저 살아있는 자가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상실하였다. 무심 무념의 상태에서 검불 같은 사지를 운신하기조차 귀찮고 힘겨워 하고많은 나날을 그냥 잠을 자거나 자지 않아도 초점 잃은 시선으로 멍하니 천정이나 바깥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정체된 삶, 닫혀버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무런 삶의 의미도 느끼지 못한 채 겨울을 건너 이 봄 날 이 산까지 오시였다.

 

노모의 생전에 꼭 한번은 이 보뚝산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실행이 오늘에서야 이루게 되였다, 왜냐하면 이 보뚝산은 당신에게 잊을 수 없는 슬픈 추억의 편린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모르쇠를 하면 돌아가신 후에 회한이 될까 싶어 서다.

 

집에서 떠나올 때 당신이 보뚝산을 기억할 것이란 기대는 아예 거두고 단지 타다 남은 심지 같은 눈동자에 이 보뚝산을 담아 드리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엊저녁에 아내가 모욕도 시키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머리도 감아드리고 그렇게 떠나 온 행차건만 어머니는 여전히 견고한 정적 속에서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와 보뚝산과의 인연은 우연과 필연의 관계로 맺어졌다.

 

해주 오씨 가문에서 16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면서 당시 당신과 함께 계시던 당신 어머니를 모시고 양천 허씨의 가문으로 시집와서 얼마 안 되어 당신 어머니가 세상을 떠 이 보뚝산에 묻히면서부터다. 당신은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 돌아오면 보뚝산을 찾아 벌초와 가토를 하고 제사를 지냈고 그 후 또 얼마 안 되어 당신의 남편(저의 아버지)마저 고혈압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이 산에 묻히면서 당신이 보뚝산을 찾는 발걸음은 해해년년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정부애서 보뚝산을 개발한다고 산에 있는 묘를 모두 없애라고 하자 당신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 8남매(당시 막내인 내가 12살이고 제일 큰 형이 35살)를 데리고 당신은 당신 어머니와 당신 남편의 묘를 파헤치고 싣고 간 장작나무에다 뼈를 태워 골회를 보뚝산을 에 돌아 흐르는 ‘빠훌리’강에다 띄워 보낸 후부터 25년을 보뚝산을 찾던 당신의 발걸음도 끊어지게 되였다.

그 후 세월은 유수처럼 흘렀고, 당신은 점점 노쇠해졌다, 개발을 한다던 보뚝산은 그냥 방치되고 대신 산에는 분묘가 예전보다 더 늘어나자 당신은 누보다 기뻐하셨고 당신이 죽으면 당신 남편이 묻혔던 자리 옆에다 꼭 묻어 달라고 하루에도 몇 번을 자식들 앞에서 곱씹었다.

 

어머니의 나약한 어깨를 가만히 흔들어 보았다. 부스스 깨셨으나 초점 없는 희뿌연 눈동자와 주름이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얼굴이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다가 가라앉는다.

 

"어머니 보뚝산에 왔어요."

 

그러나 노모는 나와 아내의 부름도, 산도 부질없다. 눈을 뜨는가 싶더니 또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다. 인젠 눈꺼풀도 이길 힘이 없는가 보다.

 

사위스러운 생각이 든다.

 

당신에게 인젠 이 보뚝산도 헛것이다. 아니 이 산만이 헛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도 헛것이요. 자신까지 헛것일 진데 세상살이 중 헛것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다고 눈을 뜨시려고 하겠는가.

 

/수원시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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