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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 오르던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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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0-06-09 20:57 조회2,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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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진첩을 펼쳐보다가 지난해 한국에서 설악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눈에 띄게 되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남들은 8,848m의 주무랑마봉을 정복하였다고 세계에 이름을 날렸지만 나는 60대 나이로 조그마한 설악산이라도 정복하였으니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자호감을 느낀다. 그것도 화창한 좋은 날이 아닌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치는 아주 험악한 날씨에 정상까지 올랐던 것이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해발 1,708m 높이로 한국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설악산은 추석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雪嶽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나는 설악산 등산한다며 산악회를 따라 두 번 갔었다. 첫 번째는 2013년 10월 강원도 속초까지 1박 2일로 갔었지만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치기에 염두도 못했다. 케이불카도 작동중단이다. 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만약 그날 케이불카라도 탔더라면 두 번째 등산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이듬해 2014년 10월 22일이다. 이번에도 날씨가 심상치 않다. 목포에서 떠날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속초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비는 멎었다. 그러나 날씨는 흐릿하고 비가 또 내린다고 해서 포기했다.

 

지난해에도 40여 명이 갔지만 날씨가 좋지 않고 비가 또 온다고 하니 대부분 사람들이 등산을 포기했다. 등산하려는 사람은 겨우 8명이다. 남자 4명, 여자 4명 모두가 40~50대로 내가 65세로 나이가 제일 많았다. 그래서 회장과 국장은 젊은 사람들 따라가기 힘들 것이니 가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아침 4시다. 남들은 아직도 잠자고 있지만 우리는 일찍 일어났다. 정상까지 오르고 하산하면 여덟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서둘러야 했다.

 

국장이 일찍이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주고 도시락도 준비해주었다.

 

출발지점은 오색분소 등산 입구였다. 이미 여섯 시가 되었지만 날은 아직 밝지 않았다. 누구인가 휴대용 전등을 준비하였기에 앞뒤를 밝히며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오르니 날은 점차 밝기 시작했다. 골짜기서 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리고 몇십 년을 자란 나무숲 사이로 기암괴석들이 형태를 내보였다. 숲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바람에 쫓기는 시커먼 구름이 뭉게뭉게 밀려오고 높이 솟은 나무들은 구름을 몰고 오는 바람에 “윙윙” 거리며 좌우로 마구 흔들린다. 방금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두 시간 정도 올라갔지만 아직은 절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과연 예상한대로 올 것이 왔다. 비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등산하며 사진 찍기는 나의 빠질 수 없는 취미지만 그날은 그럴 흥취에 눈 팔 여유도 없었다. 우리는 주위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정상을 향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바람에 뿌리치는 빗방울은 점점 많아진다. 준비했던 우의(雨衣)를 입었지만 무용지물이다. 바람에 휘날리며 옷은 그냥 젖는다. 온도는 내려가 춥다. 그럴 것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온도는 내려가고 바람은 더 세차다. 이제는 나무숲도 없다. 사시절 몰아치는 바람에 나무도 자라지 못한다.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나무는 앙상한 모양으로 겨우 버티며 흔들거린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정상에 올랐다. 이제는 눈보라인지 비 방울인지 분간할 수 없이 마구 휘날린다. 아니다, 휘날리는 것이 아니라 휘몰아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우의로 몸을 감싸고 모자를 푹 내리 썼지만 얼굴과 온몸을 사정없이 뿌리치는 눈보라는 피할 수 없다. 이따금 강한 바람에 몸까지 비칠거린다. 추위에 손가락은 꼬부라져 사진 찍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정상에서 남기는 사진만은 누구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항목이다.

 

평상시라면 정상에 올라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맘껏 누리며 나름대로 좋은 경치를 사진으로 남기고 가지고 온 도시락을 펴놓고 소주도 한 잔씩 하련만 오늘은 그럴 수 없다. 그냥 “대청봉”이란 말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그것도 바람에 휘청거리며 무슨 포즈도 취할 수 없다.

 

나도 개인 사진 한 장 찍었고 여덟 명 단체 사진도 찍었다.

 

한참 내려오니 비도 멎었다. 그러자 긴장했던 상태가 풀려서인지 하산하는데 다리가 더 아파났다. 나는 잠시 멈추고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니 속으로 웃음만 났다. 배낭 위에 비옷을 걸치고 게 걸음으로 한발 한발, 한 계단씩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우습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게 걸음 자세로 계단을 내리는 건 우습게 볼일이 아니라 너무나도 편하다는 생각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실제 나도 마지막 두 시간은 겨우 견지한 것 같았다. 내려오면서 한 여성이 내게 물어본다. 나이가 얼마인가? 나는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 그냥 웃기만 하였다.

 

여덟 시간의 강행군으로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목적지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비도 멎었다. 국장님과 회원님들이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의 산행을 회억하노라니 설악산을 정복했다는 쾌감으로 오늘도 기분이 상쾌해 난다.

 

/김영산_한반도 땅끝 해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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