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가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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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5-25 01:05 조회394회 댓글0건본문
그날 일요일 아침, 김성걸은 일찌감치 일어났다. 텔레비를 켜니 어느 한 곳의 지진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온 하루 오락을 중지하고 재난 지구를 위해 애도를 표시해야 한다는 국무원의 통고가 발송되고 있었다.
그는 시청할수록 눈물이 핑 돌았고 가슴이 은근히 무거워 남을 느꼈다, (백여명이나 사망되였다니, 참 끔찍한 일이구나, 부모들을 잃은 자식들은 얼마나 비통할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살 용기마저 없을꺼야….)
김성걸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뿜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동생이 사천성에 출장을 갔다가 공교롭게도 지진의 피해를 당해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드르릉…. 크응…카…..”
마치 김성걸의 무거운 한숨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한 숙소의 동료 방길룡은 그늘 밑의 개 팔자마냥 늦잠을 자면서 코를 굴러대고 있었다. 김성걸은 물기 고인 측은한 눈길로 방길룡이 자는 모습을 점도록 쳐다보았다. (온 나라가 매우 비통한 심정으로 수난자들을 애도하고 있는데,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니, 심장이 돌 같은 사람도 있구나…)
김성걸은 화닥닥 일어나서 방길룡의 침대 앞으로 달려가서 그를 깨우려다가 그만 전기에 닿은 듯 흠칫 놀라며 굳어지고 말았다.
“하…하….하…..”
갑자기 방길룡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깨여났던 것이다. 김성걸은 깜짝 놀랐다, 방길룡은 부석부석한 눈을 살살 부비고 기지개를 쭉 켜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내 글쎄 복권 1등에 당첨된 꿈을 꾸었재요, 오늘 재수 있을 것 같구먼. 이제 시내에 나가면 복권이나 몇 장 사야지, 재수 좋은 놈은 엎어져도 떡 함지에 엎어진다는데, 허…허…허….”
“후유….”
김성걸은 앞머리 카락이 날리도록 한숨을 길게 뿜으며 자못 측은한 눈길로 방길룡을 보았다. 불현듯 그가 짐승이 돼 보였고 그의 귀뺨을 불이 번쩍 나게 후려쳐 잠자는 영혼을 확 깨워 주고 싶어졌다. (만약 재난 지구에 자기의 친척이 있었다면 이렇게 늦잠을 자고 일어 나서 배포유한 소리를 하고 있을까? 아무리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보귀한 생명이 무참히 없어졌는데 그래 이리도 무감각할까? 정말 돌 심장이구나.)
김성걸은 격분으로 달아오르는 가슴을 가까스로 달래며 자기 침대로 돌아와서 정중한 자세로 앉아서 텔레비의 애도 장면을 시청하였다. 그는 때로는 단조로운 감을 느끼며 여러 채널을 눌러보았다. 그러나 일색으로 모두 애도 장면뿐이였다. (그저 이러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무언가 좀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한 세상 얼마라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 서로 나누며 살아야지….) 김성걸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이였다.
세수를 대충 하고 라면으로 늦은 아침 식사나마 치르고 난 방길룡은 기지개를 쭈~욱 켜더니 김성걸을 바라보며 의논조로 물었다
“심심한데 우리 해당화 노래방에나 가서 시원히 소래기나 질러 볼까?”
“얏따, 당신은 아직 밤중이구만, 오늘은 전국이 애도하는 날이라서 모든 오락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오.”
김성걸은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알려주었다, “무슨 일이길래?”
방길룡은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얼떠름한 기색을 지었다,
“이 양반이 와 새까만 그믐 밤이구만, 지진이 나서….”
김성걸은 한심하다는 듯이 방길룡을 한참 쳐다보다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뉴스를 전했다.
“하…하…난 또 무슨 일이라구? 애도한다고 해서 뭐 죽은 게 와닥닥 살아나겠소? 거기에는 내 사돈의 팔촌 되는 사람도 없는데, 내들 씨베…”
방길룡은 김성걸의 설명을 듣고서 심드렁히 웃었다.
“당신도 참, 그리도 감정이 없소? 냉혈동물이구만”
김성걸은 다락에 오르는 송아지마냥 씨근덕거리며 핀잔조로 말하였다,
“냉혈이구, 온혈이구 간에 지금은 슬며시 제 노릇을 잘 하며 조용히 사는 게 영웅이요, 영웅…. 그 무슨 떡 대가리 같은 형식이요? 돈이나 잘 벌고 먹고 싶은걸 먹는 게 제일이요, 제일,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단 데…”
방길룡은 그 무슨 대단한 진리나 발견한 듯이 가슴을 쑥 내밀며 호기로운 어조로 말하였다. 김성걸은 가슴속에서 불기둥이 욱 솟구침을 느꼈으나 꾸~욱 참으며 물기 자오록이 어린 눈길로 창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뭇 새들이 시름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빙빙 원무하기도 하고 화살마냥 솟구치기도 하고 자유분방하게 날아가고 있는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 부지런히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말 못하는 미물들도 저렇게 사이좋게 같이 가고 있는데 고급동물인 사람이 왜 이리도 감정이 없을까? 사람이여서 사람인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이 아니겠는가? )
김성걸은 갑자기 너럭바위에 짓눌린 듯 가슴이 갑갑해 남을 느꼈다. 그는 소낙비마냥 한바탕 즉흥 연설을 하여 무지몽매한 방길룡을 닦아 세우려다가 너부죽한 얼굴에 서글픈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는 소귀에 경을 읽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소귀에 경을 읽으면 소보다 읽는 사람이 더 우둔하지 않겠는가? 김성걸은 착잡한 기분을 달래며 텔레비에 눈길을 주었다.
“금강산도 식후 일견이라는데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 답새기고 보기오. 오늘은 일요일인데…”
점심 무렵에 방길룡은 명쾌한 어조로 침묵을 깨뜨리며 한마디 던졌다.
“금강산도 식후 일견이라구? 허…허…이제야 쓸 만한 말이 나오는데….”
김성걸은 감탄조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방금까지 흐릿했던 그의 얼굴은 미풍에 구름 밀려가듯이 점차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한참 한담을 나누던 그들은 바람이나 쏘일 겸 거리에 나섰다,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니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고개를 수굿하고 걷던 방길룡은 문득 허리를 굽혀 땅에서 5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었다,
“허, 오늘은 재수 있군, 꿈이 맞는가 보구나.”
방길룡은 무우마냥 기다란 얼굴에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왜 내가 먼저 발견하지 못했을까? 꿈이 맞는가봐…) 김성걸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아쉽고 부러워하는 표정이 력력히 비껴있었다.
“허, 공것이 생겼을 때 한 방 쏴야 되지 않겠나? 주은 돈을 혼자 가지면 좋은 일이 없다는데… ”
김성걸은 약간 질투와 야유가 담긴 어조로 한술 떴다.
“거야 당근이지, 공것이 아니래도 할라니, 허..허…” 방길룡은 대범하게 말했다. 그들은 시원한 맥주를 마시려고 음식점을 바라고 스적스적 걸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서히 움직이는 곳을 지나며 볼라니 “재해구에 의연금 함”이란 붉은색 글자가 유표하게 안겨왔다.
방길룡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쇠 덩이마냥 암울한 분위기가 흐르는 사람들의 대렬에 조용히 섰다. 김성걸은 얼굴을 찡그리며 빨리 가자고 그의 옷자락을 당기며 눈짓을 하였다.
방길룡은 감각을 못 느낀 듯이 침울한 표정으로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지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김성걸은 그의 숙연한 거동에 저으기 놀랐다. (무슨 바람이 났는가? 귀신이 삐쳤는가? 의연금 하려구? 의연금이 제대로 재해구까지 가겠는지 누가 안담? 이 복잡한 세월에, 불난 집에 도적이 드는 페단도 있지 않는가? 남의 일에 삐칠 필요 있는가? 수걱수걱 일하여 돈이나 많이 벌어 향수를 잘 누리는 게 영웅이지 머절싸하게 제 돈을 남에게 줄게 있나?….) 김성걸의 머리속을 오가는 생각이었다.
“헛, 맥주 마이기는 다 틀렸구나”
김성걸은 중얼거리며 걸어가다가 그늘진 곳에 이르러 걸음을 뚝 멈추고 서서 방길룡 쪽을 바라보며 인젠 생각을 접고 오라고 손을 저었다. 그러나 방길룡은 얼굴에 엄숙한 표정을 지은채 서서히 움직이는 대렬을 따라 가고 있었다. 가깝증이 난 김성걸은 서성거렸다, (생면부지인 사람들에게 돈을 그저 주는 게 맥주 한 병 시원히 마시기만 낳을까? 부실한 사람에게는 약이 따로 없다는데…) 그의 머리에 느닷없이 갈마드는 생각이였다.
“김선생, 거기서 무얼 하나요?”
한 회사의 동료가 지나가다가 심심파적으로 물었다.
“네, 내 이제 금방 의연금을 하고서…”
김성걸은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숭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랑찬 어조로 말했다.
“허, 거 좋은 일 했구만, 얼마를 힜길래?”
그 동료의 어조에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뭐, 그저 자그만히 한 200원 했어요”
김성걸은 마치 미꾸라지를 먹고 용트림을 하듯 밋밋한 배를 쑥 내밀었다,
“음? 어, 음 200원이나? 당신이…”
그 동료는 놀라우나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잠간 주밋거리다가 호주머니를 슬쩍 만지며 의연금을 하는 행렬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이였다.
(아니 저 친구가 내 말에 딱 걸려들었네. 약아빠진 저 치도 저렇게 쉽게 내 말에 넘어가는가? 음 나 오늘 저 친구를 얼려서 소주나 한 잔 얻어 마신다? 방씨에게서는 한 잔 얻어 마시기 다 틀린거구…) 김성걸은 난봉 군이 갈보를 만났을 때처럼 눈알에 쾌활한 빛을 띄웠다.
“도적이야?!....”
불현듯 웬 여인의 앙칼진 웨침소리가 소음을 짓누르며 울렸다. 이윽고 웬 남성 청년이 허둥지둥 뛰어오고 있었다.
“비켜라, 비켜! 죽이기 전에…..”
그 청년은 얼굴에 서리 발을 띄우며 엄포를 놓았다. 사람들은 범을 만난 여우떼마냥 요리 조리 피하였다. 김성걸은 성큼 뛰여 나가며 그 도적놈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 도적이 버둥거리며 일어나려는 것을 김성걸은 발로 꾹 밟았다.
“참 고마워요, 고마워요.”
돈지갑을 받아 든 그 아줌마는 김성걸의 두 손을 부여잡고 연신 감사를 드렸다.
“무슨 요만한 일을 가지고…”
김성걸은 그 아줌마의 보드라운 손을 꾹 쥔 채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적지만 이걸 받아요.”
그 아줌마는 50원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김성걸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무슨?...”
김성걸은 말은 이렇게 했으나 그의 손은 이미 내 밀어 지폐를 쥐였고 그의 이상야릇한 눈길은 그 아줌마의 딸기 빛 입술을 쓸고 있었다.
“저 실례지만 전화번호를 알려 주겠나요?”
김성걸은 대범한 어조로 물었다.
“네. 돼요.” 그 아줌마는 시원한 대답을 주고 김성걸에게 자기의 스마트폰 번호를 알려 주었다.
“감사해요!”
김성걸은 그 아줌마를 얼싸 포옹하였다.
“제가 오히려 감사하지요.”
그 아줌마의 음성에는 잔잔한 애교가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방길룡이가 김성걸의 어깨를 툭 쳤다.
“기다리느라고 갑갑증이 났지? 자, 맥주 마시러나 가기오”
“허, 오늘 당신은 공돈을 너무 쓰는데, 이제 월급이 나오면 내가 한방 쏘지, 하…하…하…”
김성걸은 경기 우승자마냥 쾌활한 웃음을 터뜨렸다. /허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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