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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뉴스

[단편소설]외로운 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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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5-05 01:37 조회457회 댓글0건

본문


오수철은 한국의 어느 시골 양돈장에서 일한지 어느덧 몇 달이 되였었다. 홀로 근무하며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피곤한 몸으로 저녁밥을 먹고 습관적으로 큼직한 베개 두 개를 겹쳐 베고 텔레비를 시청하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베개우의 베개를 옆으로 훌 밀어 내려 놓고 잠을 자군 했다.

 

어느 날 새벽, 그는 옆에 고즈넉이 놓여 있는 베개가 외로워 보이며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네가 바로 내 신세로구나. 아내와 아들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일꾼이 그가 혼자고 시골이라 퇴근해도 어디 볼거리 먹거리도 없고 또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으니 오직 텔레비가 그의 유일한 친구였고 드문드문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와 아들의 정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순간적이나마 위로를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빨을 사려 물고 부지런히 일하여 돈 많이 벌어 아파트를 사고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지) 오수철은 몸이 고달프거나 심한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군 했다. 그는 매달 노임이 나오면 치약, 비누 등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이나 살 용돈을 좀 남기고 모두 아내에게 송금했다.

 

“돈을 잘 받았습니다. 몸조심하면서 일 하시오. 우리 아들 철룡이도 잘 있습니다.”

 

그는 매번 전화로 아내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쾌감과 긍지감을 느끼며 외로움과 고달픔이 구중천에 휘익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매일 잠들기 전에 물기 흥건한 눈으로 가족사진을 점도록 보다가 아쉬운 대로 베개 우에 살며시 놓고 자군 했다.

 

(어떻게 하나 무사히 집에 돌아가야 되겠는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헛욕심에 들떠 일 하다가 중병에 걸렸거나 죽었다는데...) 그의 머리에 가끔씩 스치는 불길한 생각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때로는 현실로 나타나니 그의 근심이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도 아버지 생각이 나니?’

 

오수철의 아내 최씨는 남편 생각이 날 때마다 초중생 아들 철룡에게 간혹 묻군 했다.

 

“예, 영 쌔기 보고 싶슴다, 어머니두요?’

 

아들 철룡은 이슬 머금은 머루 알 마냥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머니 최씨를 응시하며 천진한 어조로 반문했다.

 

“후유….응, 그럼….”

 

가랑잎이라도 날려 보낼 듯이 긴 한숨을 뿜는 최씨의 갸름한 달걀형 얼굴은 불그스름해졌다. 그녀는 밤이면 이불을 펼 때마다 습관적으로 남편의 베개를 내려 옆에 놓았다. 남편의 익숙한 체취가 다분히 스며있는 베개를 옆에 놓으면 저으기 안위가 되었던 것이다. (돈이 뭐 길래 이렇게 갈라져 살아야하는가? 5년 동안이나 지루하게 고독하게 살아야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갈마들 때마다 최씨는 한숨이 나갔고 남편을 한국에 보낸 것을 못내 후회하기도 했다. (남편이 무사히 돌아와야 되겠는데 사고를 친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데)

 

“어머니, 또 아버지를 생각함까?”

 

어느 날 저녁, 최씨가 이불을 내리며 상념에 잠겨있을 때 철룡이가 천진한 어조로 물었다.

 

“응, 우리 아버지를 돌아오라고 할까?”

 

최씨는 착잡한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일부러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롱조로 물었다.

 

“예, 아이, 돈을 많이 벌어 영 멋이 있는 아파트를 싸기시오, 우리 반에 명철이네 아버지는 돈을 영 많이 벌어 층집을 두 채나 쌌담다.”

 

철룡이의 부러움이 듬뿍 배인 진솔한 말이었다.

 

“오, 그럼 우리도 영 멋이 있는 아파트를 사야지”

 

최씨는 눈을 슴벅거리며 대견한 눈길로 아들을 보며 말했다.

 

“호…호…멋이 있는 아파트!”

 

철룡이는 명랑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아버지의 큼직한 베개를 꼭 안고 오똑한 코로 냄새를 콩콩 맡고 살며시 구들에 내리워놓더니 아버지의 베개를 베고 한들 누웠다.

 

“우리 아버지 베개를 베니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 같아서 영 거저 그만임다. 우리 아버지 이제 몇 밤 자면 옴까?”

 

철룡이는 종달새마냥 한참 동안 종알거리더니 어느새 소르르 잠이 들었다.

 

“얘야, 방에 건너가 자거라.”

 

최씨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고 달콤히 잠이 든 철룡이를 흔들어 깨우려다가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만 내버려두었다.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이럴까?)

 

아버지를 쏙 빼 닮은 아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최씨는 저으기 안위감을 느꼈다. 그녀는 남편의 고른 숨결과 따스한 체온이 은근히 전달해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쾌해짐을 순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래도 아들이 옆에 있어 괜찮은데 홀로 외국에 가서 일하고 있는 그이는 얼마나 괴롭고 외로울까?)

 

“아부제….”

 

어느 때쯤 되었는지 밤중에 갑자기 철룡이가 잠꼬대를 하며 최씨의 품에 와락 안겨드는 바람에 최씨는 그만 화들짝 놀라며 깨여났다.

 

“얘야 너 꿈을 꾸었니?”

 

최씨는 아들을 흔들어 깨우려다가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만 두었다.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꿈에도 헛소리를 할까?) 이런 생각에 생강물을 마셨을 때처럼 최씨의 가슴은 갑자기 알짝지근해났다. 이 시각 그녀는 가뭄이 든 밭이 봄비를 기다리듯이 남편이 사무치게 그리워났다. 남편의 고른 숨결, 익숙한 체취, 억센 힘, 다정다감한 애무…. 미풍 앞의 풀 마냥 최씨의 가슴속에서 가녀린 설렘이 일어났다.

 

철룡이는 한참 종알종알 잠꼬대를 하다가 슬며시 돌아눕더니 자기 이불속으로 쏘옥 돌아갔다. 최씨는 꿈에 큰 상을 안았다가 잠을 깨였을 때처럼 서운해 나며 비애에 가까운 이름 할 수 없는 감을 느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길로 달콤하게 잠들어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어둠속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달콤했던 행복감은 신기루마냥 너무 돌연적으로 찾아왔고 또 번개마냥 너무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고 곱던 아들이 갑자기 얄미워났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초저녁에 아예 깨워서 방에 돌려보냈던 걸 그랬구나.) 후회를 하는 그녀의 눈앞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 남편의 모습이 환영을 그리며 언뜻 나타났다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후유…..”

 

최씨는 앞 머리카락이 날리도록 한숨을 길게 뿜으며 미동도 없는 아들의 잔등을 응시했다. (또 아빠 꿈을 꾸며 내 품에 와락 안겨 들었으면…) 이런 생각이 드니 최씨는 모닥불을 뒤집어 쓴 듯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뒤이어 남편의 서운함과 가벼운 질투에 찬 눈길이 어둠속에서 섬광마냥 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장밤을 궁싯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들의 고른 숨소리와 때로는 옹알거리는 잠꼬대가 그녀를 착잡한 상념과 이름 할 수없는 미묘한 정감의 늪 속으로 소르르 끌고 들어갔다. (래일 한국에 전화를 걸어 그이를 돌아오라고 할까? 돈이 뭐 길래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며 살아야 하는가?)

 

며칠 후의 어느 날, 최씨가 남편에게 몇 달만 일하고 돌아오라고 전화를 걸려고 할 때 금방 하학하고 돌아온 철룡이가 갸름한 얼굴에 매우 부러워하는 기색을 지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

 

“어머니, 우리 반 영호 아버지는 어제 돌아왔는데 새 아파트를 샀답니다. 우리 아부지는 언제 옴까? 우리도 새 아빠트를 사기시오”

 

“오, 그래…”

 

최씨는 신음 비슷한 애매한 소리를 내며 철룡이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생각을 굴렸다. (아무래도 고생을 할 바에 5년 동안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많이 벌어서 아파트를 사는 게 옳지 지금 돌아오면 중간낭패야)

 

“응, 네 아버지도 돈을 많이 벌어 올게다, 그러면 우리도 멋이 있는 새 아파트를 사게 될거다, 사구말구”

 

최씨는 자아위안조로 이렇게 말했으나 5년 동안 독수공방할 자기의 가련한 처지를 생각하니 50년 맞잡이로 아득하기만 느껴졌다. 즐거우면 하루가 한 시간마냥 흘러가고 고통스러우면 한 시간이 하루마냥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며칠 후의 어느 날 밤, 밖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나더니 누군가 문을 열려는 것 같았다. 최씨는 토끼를 품은 듯 가슴이 두근두근거렸고 찬물벼락을 받은 듯이 등골이 오싹 해남을 느꼈다. 그녀는 철룡이를 부를까하다가 불현듯 지혜가 떠올랐다. 그녀는 옆에 놓인 베개를 흔들며 남편을 깨우는 것처럼 일부러 언성을 높혀 말했다.

 

“아이구, 무슨 술을 이리도 많이 마셨슴까? 화장실에는 아이 감까?”

 

“엉? 내 깜박 잠이 들었구나.”

 

최씨는 짐짓 남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이불을 헤치며 화닥닥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밖의 인기척은 뚝 멈추더니 이윽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발걸음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뜨렸다.

 

“후유….”

 

최씨는 가랑잎이라도 날려 보낼 듯이 한숨을 길게 뿜고서 이마에 송골송골 돋은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뻑 닦았다.

 

오수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돈장에 일찍이 도착했다. 어제 주인이 사온 염소 두 마리가 양돈장 앞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정경을 보노라니 오수철은 저으기 위로감을 느꼈다. (너희들은 정말 행복하구나. 대자연이 준 풀을 시름없이 뜯어 먹고 있으니. 염소는 저절로 자라난 잡초를 먹고 인류에게 귀한 젖을 공급해 주고 있다. 그러나 소위 만물의 령장이라고 일컫는 사람들 중 일부는 산해진미를 포식하고도 벼라별 해괴망칙한 짓을 다 하고 있지 않는가? 사기, 절도, 강탈, 살인…도대체 어느 것이 고급이고 어느 것이 저급인지?....) 시름없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염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오수철의 머리에 느닷없이 떠오르는 생각이였다.

 

오수철이 퇴근할 때 얼결에 보니 염소 두 마리가 열렬하게 운우지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는 쇠붙이가 자석에 붙은 듯이 발걸음을 뚝 멈추고 그 격렬한 정경을 걸탐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것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로운가? 사람은 운우지정을 나누자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되지 않는가? 선을 보고, 연애를 하고, 민정국에 가서 결혼 등록을 해야 하고….그러나 염소와 다른 짐승들은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열연에 취하는구나)

 

“후유…”

 

오수철은 바위라도 무너뜨릴 듯이 한숨을 길게 뿜으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에 들어섰다.

 

“아저씨, 이건 보너스입니다. 래일 아가씨 보러 시내로 가도 되겠네요.”

 

사장이 뒤따라 들어와서 오수철에게 상금을 건네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야 무슨, 허…허….”

 

오수철은 두 손으로 상금이 들어 있는 봉투를 공손히 받아들고 어설픈 웃음을 터뜨렸다.

 

“왜? 돈이 아까워서요? 무슨 기계나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쓸게 되거든요.”

 

사장은 오수철을 똑바로 응시하며 자못 정중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어허허…그건 그런데, 그래도 어찌 아내에게 미안한 짓을 하겠습니까?”

 

오수철의 얼굴은 불그스름해졌다.

 

“미안한 짓? 이 아저씨 이게 고정하기는 서서 똥을 누겠네, 그래, 쥐처럼 한뉘 한 구멍만 뚫겠나? 하…하…하….”

 

사장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훈계를 하고서 어깨를 들썽거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쥐처럼? 허…허…허….”

 

오수철은 허구픈 웃음을 터뜨리며 여유작작한 거동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장의 뒤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며 생각을 굴렸다. (아파트에, 큰 양돈장에, 여러 대의 차량이 있고 예쁜 아내가 있어도 유흥소에 가서 노맨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예사로운 일로 여기는 저 량반, 난 아니야 잡생각을 말고 돈을 많이 벌어 새 아파트를 사야지)

 

저녁밥을 호젓한 기분으로 먹고 습관적으로 베개위에 베개를 포개고 누운 오수철은 텔레비를 시청하다가 우에 베개를 한쪽에 밀어놓고 잠을 자려고 눈을 살며시 감았다. 궁싯거리며 잡념에 잠겨 있노라니 사장이 하던 말이 느닷없이 귀전에 울리는 듯 했다. (무슨 기계나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쓰게 되거든요.)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돈을 벌러 왔다가 괜히 병신이 되면 큰일인데 한번 큰마음을 먹고 내일 시내에 가서 안마를 받아 본다? 아니 나는 아니야) 그는 바람 앞의 수수이삭마냥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머리속에서 갑자기 회상의 필름이 돌며 7년 전에 인력거를 사려고 사촌 형님네 집에 돈 200원을 꾸러 갔다가 창피를 당했던 비참한 정경이 떠올랐다.

 

“내 네게 돈 200원을 꾸어 주고 언제 받겠니?”

 

사촌 형님은 무정하게 내뱉고 쓴 웃음을 지었다.

 

“형님은 나 보다 낫지 않소?”

 

모닥불을 뒤집어 쓴 듯이 얼굴이 화끈해난 오수철은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했다.

 

“낫지 않구.”

 

사촌 형님의 배포유한 목소리였다. 그때 오수철은 사촌형의 유들유들한 낯 판대기를 호되게 한대 후려 칠까하다가 울분을 억누르며 그의 집에서 나왔다.

 

“후유….”

 

지금도 오수철은 그때를 회상하면 한숨이 나왔고 눈물이 돌았다. (가난도 수치야. 어찌 보면 죄야. 난 헛생각을 할 새 없다.) 오수철은 어금니를 지그시 악물며 잠을 청했다.

 

며칠 후, 사장네 집에 가사도우미가 들어왔다. 오수철이가 퇴근하여 양돈장 앞의 밭에서 상추를 뽑고 있을 때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는 중국의 어디에서 왔슴까?”

 

“녜, 나 연변에서 왔슴다.”

 

몇 달 동안 고독 속에서 돼지와 ‘말동무’ 하며 지내 오던 오수철은 나젊은 아줌마가 나타나니 겨울에 꽃송이를 본 것처럼 희구하고 반가웠다.

 

“저도 연변에서 왔슴다, 알고 보니 우리는 로썅(한 고향 사람)이구만요.”

 

그 아줌마는 무등 반가워했다.

 

“혼자 나오셨슴까?”

 

그 아줌마는 은근히 달착지근한 애교가 흐르는 음성으로 물었다.

 

“예”

 

오수철은 벙글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군요, 저도 혼자 나왔슴다. 제 나그네(남편)는 작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슴다.”

 

그 아줌마는 묻지 않는 자기소개를 했다.

 

“예? 예, 거 참 안 되였군요.”

 

오수철의 마음 한 구석에서 동정심이 아지랑이마냥 가물가물 피여 올랐다.

 

“후유…사람일은 누구도 모름다, 생떼 같던 나그네가 글쎄 갑자가 갈 줄이야….”

 

그 아줌마의 곱살한 얼굴에 흐린 빛이 어렸고 서글서글한 눈에 이슬이 함초롬히 돌았다.

 

“후유…그럼, 사람 일이사 누기(누구)도 모름다.”

 

오수철은 동정의 눈길로 그 아줌마를 일별하고 상추 몇 포기 뽑아 들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게면 한 때 쌤(쌈)을 잘 먹을 수 있지”

 

“오늘 저녁에 어디 갈 데 있슴까?”

 

그 아줌마는 사근사근한 어조로 물었다. 오래간만에 녀성의 부드럽고 례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오수철은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꼈고 마음의 음달 진 구석에서 미풍 앞의 풀 마냥 가녀린 설렘이 일어났다.

 

“시골이여서 갈 데 없슴다, 허…허…”

 

오수철은 어줍게 웃었다.

 

“저, 그럼….”

 

그 아줌마는 정기 도는 눈으로 오수철을 잠간 응시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아저씨 방에 놀러 가도 돼요?”

 

“어, 저….”

 

오수철은 어눌한 소리를 내며 계면쩍게 웃었다.

 

“무슨 불편한 점이 있슴까?”

 

그 아줌마는 물었다. 오수철은 고개를 수굿하고 손에 든 상추를 응시하며 혀아래 소리로 대답을 했다.

 

“불편한 점은 없슴다, 그저, 저 사장네가 좀 별랗게 생각할가봐….”

 

오수철은 마른 치약을 짜내듯이 겨우 대답을 했다.

 

“호…호…호….교포끼리 래왕하는데 뭐 큰 일이 나겠슴까? 아저씨는 참 고정하겠슴다.”

 

아줌마는 개의치 않아했다.

 

“허…허…허….”

 

오수철이도 덩달아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오수철이가 착잡한 기분으로 저녁을 먹고 텔레비를 시청하느라니 그 아줌마의 웃음소리와 더불어 (아저씨는 참 고정하겠슴다.)고 하던 말소리가 귀전에 방불히 들리는 듯 했다. (왜서 사장이나 그 아줌마나 다 나를 고정하다고 할까? 그래 내가 정말 영활성이 없는 고지식한 사람이란 말인가? 머저리란 말인가?)

 

“계십니까?”

 

여성의 맑은 목소리가 오수철의 상념을 깨뜨려버렸다. 오수철은 잡념에서 돌아오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예, 들어오시오.”

 

그 아줌마가 손에 묵직한 구럭을 들고 해시시 웃으며 들어왔다.

 

“저녁을 잡수었슴까?”

 

“예, 앉으시오.”

 

오수철은 고개를 수굿한 채 자리를 권했다. 그 아줌마는 구들에 살풋이 앉으며 구럭에서 잘 익은 귤을 꺼내어 껍질을 발라서 오수철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드렸다.

 

“예, 예 저절로 발라 먹지요.”

 

오수철은 매우 송구스러워하며 두 손으로 귤을 받았다.

 

“호…호….와누르(완전히) 옛날 새기(처녀) 같네.”

 

그 아줌마는 수줍어하는 오수철의 거동을 보고 소리 내여 웃었다.

 

“후…후…”

 

오수철은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아줌마는 오수철이 귤을 다 먹은 것을 보더니 또 하나 잽싸게 발라서 오수철을 보며 입을 벌리라고 ‘아’소리를 냈다. 오수철은 황망히 뒤로 물러앉으며 모기를 쫓아버리듯이 넉가래 같은 손을 홰홰 저었다.

 

“해…해….와누르 옛날 산골짜기의 새기 같네.”

 

그 아줌마는 소녀마냥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앉은걸음으로 오수철의 앞에 엉금엉금 다가와서 채 다물지 못한 그의 입에 귤 한 쪼각을 살짝 넣어 주었다.

 

“억…”

 

오수철은 낯을 붉히며 귤을 우물우물 씹어 먹었다.

 

“별랗게 맛이 있슴둥?”

 

아줌마는 애교가 찰찰 흘러넘치는 목소리로 일부러 사투리를 써가며 물었다.

 

“예, 예 무세 맛이 있씀꾸마, 허…허…”

 

오래간만에 녀성의 달착지근한 애교 흐르는 목소리를 듣는 오수철은 갑자기 뒤통수가 시원해지며 소탈하게 웃었다.

 

“호…호…하나 더 달람둥?”

 

아줌마는 여전히 히물거렸다. 오수철은 쥐를 문 강아지마냥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이 있으면 달라 합쏘, 내 제까닥 줄게”

 

아줌마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롱조로 말했다.

 

“저, 무슨 말씀을 그렇게?....”

 

오수철의 수박마냥 둥그스름한 얼굴은 홍당무가 되였다.

 

“해…해…와누르 옛날 농촌 총각이네, 지금 무슨 세월이라구….”

 

아줌마는 호들갑스럽게 웃고 나서 고운 눈으로 오수철을 한참 응시하다가 깊은 한숨을 뿜었다. 잠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속이 탄 일이 있습니까?”

 

오수철은 갑자기 동정심이 드는 자신을 발견하며 약간 놀랐다.

 

“저, 사망한 우리 나그네 성도 오씨이고 얼굴도 아저씨처럼 둥글둥글한 게 인간 멋이 있었슴다.”

 

아줌마는 애교 다분한 어조로 말하고 오수철을 보며 방긋 웃었다. 찰나, 오수철은 동굴에 갇혀 있던 사람이 한 갈래의 빛을 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뻐근해났고 눈앞이 횅창 밝아지는 것 같았다. 뒤이어 미풍을 만난 호수마냥 가슴속에서 약한 설레임이 일렁거렸다.

 

“아저씨는 언제쯤 중국에 돌아가시는가요?”

 

아줌마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한 5년 일하다가…”

 

오수철은 아줌마를 정시하며 대답했다. 통통한 몸매, 복성스럽게 생긴 얼굴을 보노라니 눈앞에 아내의 단아한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나도 한 5년쯤 일하겠어요.”

 

아줌마는 순풍에 돛을 달듯이 슬쩍 말했다.

 

“허, 거참 묘한데”

 

오수철은 좋다는 뜻인지 애매한 반응을 보이였다.

 

“묘한 일이야 많지요, 나도 작년에는 양돈장에서 일을 했댔어요, 일이 어지럽고 힘든 건 괜찮았는데, 암퇘지와 수퇘지들이 마구 잔체(잔치)를 할 때는 참 별랗더군요 해….해….”

 

아줌마는 돼지들의 교미할 때의 정경을 회상하며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잔체? 핫, 하…하….”

 

오수철도 공동한 경험이 있었는지라 소탈하게 웃었다. 아줌마는 잠간 고개를 갸웃하고 무슨 궁리를 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우리 얘기를 나누어 보니 아저씨는 참 좋은 분이시군요, 여기 있는 동안 우리 사이

좋게 지내지 않겠나요?”

 

“어, 사이좋게?...”

 

오수철은 둥그스름한 얼굴에 얼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 한 집에서 살면 안 될까요?”

 

아줌마는 갸름한 얼굴에 당돌한 표정을 지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엉?! 나, 나는 앙까이(아내) 있는데….”

 

오수철은 강물에 빠진 사람마냥 두 손을 마구 저었다.

 

“호….호…..호…..”

 

아줌마는 허리를 꼬부리고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녀는 한참 후, 손바닥으로 눈물을 슥 닦고 일부러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지금 청년들을 따라 배워야 해요. 연애는 자유, 결혼은 선택…”

 

“글쎄, 그건 그런데….”

 

오수철은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참, 그래 아저씬 쥐처럼 한 뉘 한 구멍만 뚫겠나요? 남자들은 담이 크고 영활성이 있어야지요.”

 

아줌마는 실의에 찬 눈길로 오수철을 응시했다.

 

“쥐처럼?....”

 

오수철의 보름달마냥 둥그스름한 얼굴은 돼지 간 빛이 되였다.

 

“그럼 잘 생각해 보세요.”

 

아줌마는 한참동안 개인 ‘인생철학’을 풀다가 돌아갔다. 오수철은 텔레비전을 좀 시청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알싸한 체취가 물씬 풍기더니 그의 품에 살갑게 안겨드는 예쁜 여인이 있었다. 찬찬히 보니 바로 그의 아내였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기쁨과 격동이 반죽된 오수철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강물에 빠진 사람이 나무토막을 끌어안듯이 헉헉거리며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

 

깨고 보니 꿈이었고 그의 품에 싸늘한 베개가 고스란히 안겨 있었다.

/허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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