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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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5-09 03:03 조회439회 댓글0건본문
떠나간 봄의 그리움을, 지는 꽃의 아쉬움을 파릇파릇 초록으로 달래주는 5월이다. 내일은 코로나 속에 맞이한 세 번째 어버이 날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요양병원은 올해도 유리벽을 사이 두고 어버이날을 맞이하게 되였다. 코로나는 아직 어버이날에도 혈육의 상봉을 막고 있다. 남은 날이 길지 않은 부모님에게 몇 번 남지 않은 대면마저 가로막는 코로나를 우리는 너무 오래 맞닥뜨리고 있다.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게 전부이지만 오랜만에 하는 면회라 병원마다 감동과 아쉬움의 현장이 될 것 같다. 어제도 70된 아들이 노모를 마주앉아 창 너머에서 눈물 훔치는 모습에 울컥 해지면서 마음이 뭉클 했다. 그 누구보다 보호자분들의 마음을 알기에 간병인은 어느 때 보다 더 분주하고 바쁘게 보내는 어버이날이다.
보호자들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들도 다양하게 준비한다. 어버이 날 요양병원에 들어오는 꽃바구니와 선물의 크기에 따라 자식들의 효성과 씀씀이가 반영되기도 한다. 공동병실에서는 꽃바구니와 선물에 따라 환자들의 서열도 재정리되는 듯 하다. 꽃바구니가 크고 화려할수록 할머니들은 으쓱해 하는데 거기에 이쁘다는 간병인의 감탄과 꽃을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이 한몫을 더해 주기도 한다. 늘 그래 왔듯이 간식 선물이 푸짐하면 어깨에 힘까지 싣고 주변에 베푸는 할머니들의 넉넉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우리병원은 어버이날에 해마다 원장님께서 환자 한분 한분께 카네이션을 직접 달아드리는 "카네이션 달아드리기 이벤트"를 한다. 간호부장, 간호팀장, 원무과장, 복지사들도 함께 수행하면서 축가를 부르며 간식꾸러미도 전달한다. 한껏 명절분위기에 시끌벅적 신나는 하루이다.
하지만 간병인에게는 내 자식에게서 받지 못하는 꽃선물의 아쉬움과 내 부모님에게 카네이션도 달아드리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에 가슴시린 하루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어버이날에 나는 이벤트를 마치고 수행인들에 둘러싸여 멀어져가는 원장님을 불렀다.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꽃 한송이로 이렇게 차별을 하십니까? 계약직에게는 카네이션이고 일용직 간병인에게는 꽃 한송이도 없습니까? 저희 간병인도 계약직 못지않게 병원에 헌신하고 있는데 너무 서운합니다."
나와 동갑내기 청소부 여사님이 병원에서 선물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났었다.
간호팀장은 너무 당황하여 그만하라고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원장님은 무뚝뚝함이 극치라 얼굴에 인자함이 꼬물만치도 없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다. 간호사들은 원장님 앞에서 숨도 조심히 쉬는 편이였는데 일개 간병인이 행차하시는 원장님을 불러 세웠으니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서열문화가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으리라.
원장님께서는 고개를 수굿하고 눈만 껌뻑이시더니
"알겠습니다. 원무과장, 바로 준비해서 시행하세요." 라고 지시하였다.
"감사합니다." 주변에 모여든 간병인들의 손벽과 함성이 터졌다. 그해부터 우리는 어버이날만큼은 상사인 간호사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작은 선물까지 받게 되였다.
카네이션 한송이는 간병인들에게 따뜻한 배려이고 외롭고 시린 마음을 녹여주는 봄의 향연이다. 그날의 쾌감과 설렘조차도 아직까지 전향으로 남아 있다.
내 부모 대신 남의 부모에게 효도하고 내 자식 아닌 보호자에게서 꽃 선물 받으면서 올해 어버이날도 대리 만족으로 하루를 즐겁게 보내야 겠다. 하루라도 즐거운 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김선화 2022년 5월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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