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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졸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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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금화 작성일22-05-17 19:34 조회4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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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끝자락에서

 

문걸의 머릿속에 몇 가닥의 해 빛이 비껴드는 것 같더니 먹장구름이 마구 깨지며 불에 활활 타는 상 싶었다. 황혼이 벌거스름하게 가물거린다. 귀에서 바람 스치고 지나가는 듯 하더니 귓구멍이 뻥 열린다.

 

“깨났어요!”

 

웬 녀인의 급촉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걸의 흐리마리한 눈에 하얀 모자를 쓴 걀죽한 녀인의 얼굴 허상이 천천히 들어왔다.

 

뒤이어 숱한 발자국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기적인데요.”

 

“진짜 살 가망이 없는가 했는데.”

 

느닷없는 침대머리에 둘러선 숱한 하얀 모자들의 경탄소리.

 

문걸은 맥없이 눈을 스르르 떴다.

 

“여, 여긴 어, 어딥니까?”

 

“병원 구급실이예요.”

 

문걸은 뭐라고 말하려고 피기 없이 허연 입술을 옴지락거리다가 말고 맥없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몇 시간 후에 문걸이 다시 눈을 떴다. 흐리마리한 눈에 디룽디룽 매달린 링겔병이 안겨왔다. 입과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덮씌워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하얀 모자를 쓴 걀죽한 얼굴이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나 문걸은 대답할 맥도 없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일주일 만에 깨여났어요.”

 

(누구지? 영희? 춘희? 목소리가 틀리는데.)

 

사위를 천천히 둘러봐도 흰 벽과 하얀 모자들 뿐이였다. 사위가 온통 새하얗게만 보였다.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여길 왔지?)

 

문걸은 온통 새하얀 세상에서 까마아득한 기억을 더듬으려고 애썼다.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완전히 필름이 끊어졌다.

 

한참 후에야 머리에서 이상하게 토막토막 끊어진 허상이 마구 떠올랐다.

 

웬 일인지 머리가 천근무게 되는 것 같아 일어설 수 없었다. 누가 뒤통수를 탁 친 것 같았다. 입술이 마구 비뚤어지는 것 같았다. 누가 뒤에서 어깨를 꽉 짓누르는 것 같았다. 눈앞이 마구 캄캄해났다. 그래도 일어서려고 악을 썼다.

 

쿵!

 

 

“빨리! 휠체어를 가져오오!”

 

“빨리 구급실로!”

 

휠체어에 실려 달렸다. 새하얀 모자를 쓴 녀성 둘이 휠체어를 밀고 복도를 달린다. 복도가 진절머리 나게 길기도 길었다. 놀란 표정들이 옆으로 피하며 스치고 지나간다.

 

“빨리, 혈압!”

 

“50 대 62!”

 

“지혈제!”

 

“혈형?!”

 

“B형!”

 

“수혈합시다!”

 

 

문걸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머릿속이 새하얗다. 딱 마치 인간세상을 떠나 온통 새하얀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 같았다.

 

이튿날에야 문걸은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이때 걀죽한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 간호원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며 나직이 물었다.

 

“무슨 병, 병입니까?”

 

간호원은 대뜸 얼굴이 굳어졌다.

 

“혈변이 심했어요.”

 

(오- 화장실에서 대변을 봤지. 불을 켜지 않아 혈변을 본 건 몰랐지? 그저 설사를 했는가 했지.)

 

이때 담당 녀의사가 들어왔다. 하얀 위생모를 쓴데다가 안경 밑까지 마스크를 딱 끼여 얼굴모양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외까풀 눈 눈귀를 보아 한 40대 중반은 돼보였다.

 

“이제 위경과 대장경을 해봐야 진단이 나옵니다.”

 

녀의사는 말을 마치자 문걸의 눈까풀을 뒤집으며 동공을 들여다보았다. 딱 구급실에서 그랬다. 동공이 퍼지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녀의사 말소리가 이상하게 좀 귀에 익어보였다.

 

(구급실에서 듣던 목소리?)

 

“지혈이 돼서 위험기는 넘겼어요. 그러나 절대 방심해선 안돼요. 침대에서 힘스레 돌아눕지도 마세요.”

 

(난 돌아눕기는커녕 입도 놀리기 힘든데.)

 

“요즘 혹시 무슨 약을 잡숫진 않았는가요?”

 

문걸은 한참 기억을 더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스피린…”

 

“아스피린?”

 

문걸은 머리도 끄덕이기 힘들어 눈까풀을 끔쩍이였다.

 

눈치 빠른 녀의사는 척 알아보았다.

 

“왜요?”

 

“심장이 좋지 않아서…”

 

녀의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병원에 오기 전 날엔 아스피린을 대개 몇 시에 잡쉈는가요?”

 

문걸은 겨우 기억을 더듬어 띄염띄염 대답했다.

 

“아마 밤 9시 반 쯤에…”

 

그제야 녀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해요.”

 

문걸은 잔등이 결려 견디기 어려웠다.

 

“누가 여, 여길 데려왔습니까?”

 

녀의사는 “120구급차에 실려 왔어요.” 하고 대답하였다.

 

문걸은 녀의사의 왼쪽 가슴에 단 명찰을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명찰을 번져놔 이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링겔병을 쳐다보더니 비닐관을 톡톡 쳐 공기를 뺐다.

 

“됐어요. 쉬세요.”

 

녀의사는 조용히 나갔다.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이 문걸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왔다. 숨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문걸네 옆집 아주머니가 복도에 쓰러진 문걸을 발견하고 120에 알렸다고 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그날 대변을 보다가 쓰러진 일로, 아침에야 정신이 들어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수 없었던 일로, 살겠다고 최후발악을 하며 벌벌 기여 문을 간신히 열고 복도에 나간 일을 간신히 떠올렸다.

 

“다행이예요. 120구급차에 실려 병원 구급실에 왔을 때는 완전히 혼미상태였죠. 휠체어에 싣고 달릴 때는 혈압이 엄청 떨어져 쇼크가 올 직전이였어요.”

 

“휠체어, 누가?”

 

간호원은 문가를 눈짓했다.

 

“저분 의사와 제가 휠체어에 싣고 구급실에 달렸지요. 그때 우린 다 사망했는가 했어요. 그러나 심장맥박이 가늘게 뛰더군요. 진짜 생사선에서 구급됐어요.”

 

“오-”

 

(왜 집에서 쓰러졌을 때 핸드폰으로 120에 알릴 궁리를 하지 못했을가?)

 

아마 출혈이 심해 아무런 궁리도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한발자욱이라도 바깥에 나가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안해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문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났다.

 

(내한테도 안해가 있는가?)

 

그는 아픈 마음을 쓸어내리고 한참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 미국에 가, 가서 오지 못합니다.”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과 초롱초롱한 깜장눈에는 놀라움과 더불어 동정의 잔물결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간호원은 허리를 굽히더니 문걸을 안아 모로 눕혀 주었다. 결리던 잔등이 들리자 살 것 같았다.

 

“자녀들은요?”

 

순간 문걸은 그때만큼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가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여 한참이나 눈을 감고 묵묵히 누워 있었다.

 

간호원은 기대에 찬 눈길로 문걸의 입을 바라보았다.

 

문걸의 입에서 한참 만에 이런 말이 간신히 새어나올 줄이야.

 

“아무도 없습니다.”

 

“네?”

 

간호원은 너무도 놀라 뒤로 물러섰다.

 

“미안해요.”

 

그녀는 다가와 문걸의 손도 주물러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구급환자이기에 옆에서 간호할 집식구가 있어야 하는데요. 조카나 친구라도 좋아요.”

 

문걸은 친인처럼 살뜰히 간호하는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코마루가 시큰해나며 저도 몰래 뜨거운 눈물을 눈귀로 주르르 흘려 베개 잇을 적셨다.

 

(글쎄, 정호한테 알리면 올 수도 있지.)

 

문걸과 정호는 죽자살자하는 한 고향 친구이자 사촌동서간이였다. 문걸은 정호를 내놓고도 도와준 친구와 동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나 동료들한테 손을 내밀기 싫었다.

 

(아들딸한테도 알리지 못하면서 친구한테 알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먹어라, 쓰라 할 땐 좋다 하지만 아플 때 알리면 부담을 주게 될게 아닌가? 더구나 퇴직한 후엔 단위 동료들도 하나, 둘 떠나가지 않았는가.)

 

문걸이 간호원한테 눈길을 돌리며 간신히 부탁했다.

 

“간, 간병원 찾, 찾아주세요.”

 

마스크 끈이 툭 풀리면서 간호원의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이 다 드러났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유빛얼굴에 짙은 눈섭, 어글어글한 쌍까풀 깜장눈이 이뻤다. 그러나 쌍까풀 깜장눈에는 의아한 물결이 세차게 흘렀다.

 

“간병비 엄청 비싸요. 하루 24시간에 250원 내지 300원이래요.”

 

“간병비 근, 근심마시오.”

 

“치료비도 금방 나간 의사가 먼저 댔는데요.”

 

“네? 명함은?”

 

“김춘희 의사는 일본 도꾜의과대학 박사예요.”

 

“김춘희?!”

 

문걸은 너무도 놀라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몸을 까딱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럼 안돼요. 내장에서 출혈할 수도 있어요.”

 

간호원은 그를 안아 되 눕혔다.

 

“김춘희 의사를 알아요?”

 

문걸은 머리를 가늘게 가로 저었다.

 

(세, 세상엔 같은 이, 이름도 많으니깐.)

 

“아차, 깜빡 잊었네요. 명함과 출생 년, 월, 일 어떻게 돼요?”

 

문걸은 목구멍으로 기어드는 목소리로 겨우 띄염띄염 말하였다.

 

“리문걸, 60세…”

 

간호원은 병지에 일일이 받아쓰며 물었다.

 

“단위는요?”

 

문걸은 “건축설계원” 하고 대답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퇴직한 후엔 단위에 손을 내밀기 싫었다. 더구나 단위에서 알고 영희한테 알리면 더 큰 일이였다.

 

간호원은 더 묻지 않고 병실에서 나갔다.

 

점심에 간호원은 중년녀성을 데리고 병실에 들어섰다. 간병원이였다. 그제야 문걸은 안도의 한숨을 후- 길게 내 쉬였다.

/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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